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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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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강 사무엘하 15 ~ 19 장

 

Ⅰ. 압살롬의 반역 (삼하 15장)

 

1. 다윗의 실패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대하신 것은 나라를 강건하게 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안이 깨지는 것은 상황 때문이 아니라 죄의 마음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평안은 인간이 줄 수도 없고, 인간에게서 받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으로 죄의 마음을 이길 때에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으로 해야 할 역할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원리대로 사는 것,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도 공평과 정의를 행하지 않았고, 암논과 압살롬의 범죄를 공평과 정의로 처리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원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왕이라는 신분으로, 통치자요 지도자로서의 역할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자로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한 실패입니다.

 

2. 마음 도적질

다윗의 실패가 확인되는 장면이 압살롬이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내가 정의를 베풀기를 원하노라’고(15:4) 말함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려 했고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고(15:12), 이스라엘의 인심이 압살롬에게 돌아간 것입니다(15:13).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기에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당장의 문제에 집중하게 되어있고, 해결자가 누구인지, 해결의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 갖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묵상하라고 권고하는 이유는 본질과 핵심을 늘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다윗도, 압살롬도, 백성도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죄의 원리를 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적 안정에도 불구하고 왕과 백성 모두에게 평안이 없습니다.

 

3. 반역을 시도함

압살롬의 반역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변질된 증거입니다. 사울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세워졌고, 비록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잠시 왕이 되었으나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되었으나 압살롬은 하나님의 부르심과는 아무 상관없이 스스로 왕이 되려는 반역을 시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국가’가 되었고, 왕은 ‘정치가’가 되어 누구든 백성의 마음을 얻기만 하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음모에 대하여 하나님이 막으실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 등에 의해 반역이 일어나는 것,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다윗을 따라가려는 모습 등이 이미 여호와 신앙이 정치에 사로잡혔고,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4. 준수한 청년

압살롬은 용모가 준수하였고(14:25), 가족 사랑이 애틋하였고, 지혜와 모략이 뛰어났고, 열정과 용맹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역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인간의 자격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받을 수 없으며, 인간의 조건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습니다. 압살롬은 외모로나 동생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에서 보듯 행동으로도 다윗보다 더 훌륭한 인물처럼 보입니다. 아마 압살롬이 왕이 되었다면 다윗보다 통치를 잘 하고, 나라를 번성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왕이나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보호하십니다. 압살롬은 뛰어난 자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다윗을 추적하던 압살롬은 말을 타고 가던 중 상수리나무에 매달리게 되고 요압의 병기 맡은 소년 열 명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과 다윗에게 도전하는 사람의 죽음치고는 매우 어이없습니다.

 

 

Ⅱ. 도망가는 다윗 (삼하 16~18장)

 

1. 전혀 다른 피난

다윗은 예전에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막무가내의 맹종이 아니라 지혜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살기를 무시하고 창을 던지면 죽겠다는 객기가 아니라 피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것이 바른 행동입니다. 백성을 위해 전쟁에 나가 승리했고, 사울의 통치를 위해 충성을 다했음에도 억울한 상황에 처했기에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시 18편). 다윗의 피난이 하나님의 훈련, 연단,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또 다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시 3편). 하나님을 업신여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나 보복이 아니라 공평과 정의를 행하지 않은 결과일 뿐입니다. 사울 때가 하나님을 배울 때의 모습이라면 지금은 하나님을 배운 후의 모습인데 더욱 성숙한 모습이 아니라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2. 빗나간 가족 사랑

다윗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이면서 동시에 죄인입니다. 피난을 가면서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궁에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합니다(15:16). 자녀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행하지 않았던 다윗, 자신의 부하장수이지만 헷 사람이었던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한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에도 왕의 본분에 맞는, 하나님에 의해 세움받은 사람의 역할을 행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족은 피난길에 오르게 하고 후구든 위험한 상황에 남겨둔 것입니다. 사울이 행여 요나단에게 가야할 왕권이 다윗에게 갈까봐 시기하며 살해하려는 모습이나, 다윗이 가족에 집착하는 모습은 동일한 원리입니다. 가족을 행해 아버지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모두를 복되게 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은혜를 입으면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지만 예루살렘이 아닌 헤브론에서 왕으로 등극하였고, 다윗에게는 용맹스런 장수들이 있고, 예루살렘에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피난을 떠납니다. 제사장들이 옮겨온 하나님의 궤를 도로 예루살렘으로 메어가게 하며(15:29)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기를 구하고(15:25), 자신의 모사 아히도벨에 대하여 ‘여호와여 원하옵건데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15:31) 간구도 합니다. 인간은 연약할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강건하게 되었을 때에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연약할 때 순종하는 것은 믿음이기보다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요, 강건할 때 순종하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모습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부르셨기에 결국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면 스스로 왕위를 지킬 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압살롬을 왕으로 세우셨는지 알 수 없기에 막아서지 못하고 피난 길을 떠나며,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왕위를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4. 비난과 도움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의 행동이 어떠했으며 이스라엘의 어떻게 분열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윗의 도피여정 속에 여러 사람이 나아와 혹은 도와주고 혹은 저주를 퍼붓기도 합니다. 사울에게 속한 사람 중에 다윗의 은혜를 입었던 므비보셋의 종 시바는 다윗을 공궤합니다(16:2). 사울의 친족 중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하며 다윗이 왕이 된 것을 반역으로 간주하고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가 돌리셨도다’고 합니다(16:8). 다윗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모든 백성을 하나로 만들거나 하나님의 심정으로 대하지 못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고(16:11) 수용하며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고 호소합니다(16:12). 다행히도 하나님은 다윗을 긍휼히 여기셔서 압살롬의 진영 중에 아히도벨과 후새의 책략대결에서 다윗의 심복인 후새의 지혜가 채택되도록 하여 다윗을 보호하여 주십니다(17:14).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이렇게 쉽고 정확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5. 압살롬의 영향

압살롬의 행동은 단순히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항거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왕을 물리치고 스스로 왕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인간의 나라를 세우려는 시도였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다윗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왕권의 의미, 이스라엘의 신앙공동체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오직 아비의 심정하나만 남게 된 것입니다. 반역은 제압되었지만 이스라엘은 바로서지 못하고 불신앙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고 허다한 반역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죄인에게서 죄의 원함과 행동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Ⅲ. 돌아오는 다윗 (삼하 19장)

 

1. 왕의 역할

다윗의 귀환은 압살롬을 반역자로 규정하거나 다윗에게 정당성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압살롬의 열정보다 다윗의 경륜이 왕의 통치에 유용한 것도 아닙니다. 다윗의 복귀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은 다시는 반역이 없도록 통치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다윗의 귀환에 대해 이스라엘 즉 사울의 족속과 유다 지파는 서로 충돌합니다(19:9, 41). 이미 이스라엘은 사울이 죽었을 때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세력과 다윗을 왕으로 세운 세력으로 분열된 적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피난에서 복귀하는 사건을 통해 분열된 나라를 화합하며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백성을 독려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솔선하여 자신의 형제요 골육인 유다 지파를 선동하여 나라 분열을 더욱 강화하였습니다(19:11).

 

2. 하나님의 백성

다윗이 피난 갈 때 한껏 조롱하던 시므이는 다윗이 복귀할 때 왕 앞에 엎드려 사죄하고 적극적으로 왕을 영접합니다. 전형적인 죄인의 모습입니다. 므비보셋도 달려나와 영접하고, 다윗이 피난 갈 때 나오지 못한 것을 종의 탓으로 돌립니다. 전형적인 죄인의 모습입니다. 모두가 상황의 전개에 따라 자기에게 유익한 길을 찾아 변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들의 어쩔 수 없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유다지파에 의존하는 것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이스라엘이 국가가 되기 전, 왕이 있기 전인 사사시대보다 결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외형적으로는 강성한 국가가 형성되었지만 민족적으로는 지파간 분열과 갈등이 심해졌고, 정치와 종교와 경제와 국방이 제도화 되었지만 경쟁과 세력 다툼이 치열해졌습니다. 어디에도 하나님으로 인한 평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국가로서는 성장하였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는 것은 나라의 강성이 아니요, 왕권의 강화가 아니라 오직 백성의 평안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에 필요한 것은 부유함, 강성함, 탁월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행동하고, 공평과 정의를 행할 때에 모두가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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