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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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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강 사무엘하 20 ~ 24 장

 

Ⅰ. 하나님의 백성

 

1.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이스라엘의 태도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모든 나라와 같이’, ‘다른 나라들 같이’되기를 바라며 왕을 요구하여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됨을 취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왕을 세운 것은 이스라엘의 요청대로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들과 같이 여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특정한 체제(국가, 정치 등)가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왕정 제도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의도를 안타까워하셨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워주신 것은 이스라엘의 요구를 인정, 수용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도하는 방식이든, 이스라엘의 요구하는 방식이든 동일하게 하나님을 알리는 계시가 되게 하십니다.

 

2. 다른 나라들 같이

이스라엘은 왕을 세웠지만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세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름부은 사람을 차기 왕으로 세웠습니다. 다른 나라들과 같은 국가적 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보다 더 견고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와주셨기 때문이요, 이 일에 쓰임받은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대와 다르게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들과 같이 만든 장본인이 바로 다윗입니다. 왕권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이 아니라 왕을 중심으로 한 나라를 만들었고, 성전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백성이 아니라 왕의 뜻을 관철시키는 나라를 만들었고, 삶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에 대하여 어떠한 하나님의 가르침도 행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고, 민심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서로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혈연과 지파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실제로 다른 나라들과 같아져 버렸습니다.

 

3. 악순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다윗입니다. 왕권을 보장받았다는 특혜가 아니라 왕이 될 수 없는 상태에서 왕이 되는 과정을 거치며 하나님을 배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불순종하는 백성들이나 악을 행하는 자녀들,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윗의 일련의 행동들이 사람들의 눈에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다윗부터 하나님을 고려하는 모습이 없었기에 모든 백성들의 행동에도 하나님을 고려하는 모습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들과 같이 힘있는 자가, 기회있는 대로 모든 것을 해버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Ⅱ. 세바의 반란 (삼하 20장)

 

1. 민심이 천심?

사울이 죽은 후에 이스보셋과 다윗이 각각 왕이 되어 이스라엘이 분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할 때 사울의 족속은 다윗을 조롱하였지만(16:8). 다윗이 왕궁으로 돌아올 때에는 적극적으로 모셔오고자 했습니다(19:10). 이때 다윗은 유다 장로들을 선동하여 앞장서게 함으로 이스라엘과 유다가 서로 대립하도록 만들었고(19:11) 결국 사울이 속했던 베냐민 지파 출신의 세바가 반역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20:1). 압살롬의 지극히 개인적인 반역과는 차원이 다르게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바를 지원했습니다. 기존의 왕을 중심으로 ‘반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원래 이스라엘에는 왕과 백성의 구분이 없으며 특정한 왕족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특정인을 강제로 왕이 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2. 어이없는 실패

다윗은 압살롬이 반역할 때 무작정 도피할 때와는 정반대로 유다족속을 소집하여 세바를 잡으러 보냅니다(20:6). 이 또한 신앙적 행동이 아니라 왕의 정치적 행동에 불과합니다. 왕이 개인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기에 요압도 개인적 판단에 따라 왕의 다른 장수인 아마샤를 죽여버립니다. 왕과 장수에게서 하나님을 고려하는 모습이 없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지파가 함께했던 세바의 반란은 아벨성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20:22). 하나님은 세바를 징계하고 다윗만을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다윗과 온 백성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계시입니다.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패하는 것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인간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거듭되는 반란으로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의 왕권이 유지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의 나라가 아니며, 다윗은 영원한 왕이 아닙니다.

 

3. 여인들의 역할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을 분열시킨 것과는 다르게 하나님은 모든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이방인 출신인 기브온 족속과 맺은 언약에도 불구하고(수9:3)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한 열심이 그들을 죽인 일이 있습니다. 기브온 족속은 사울로 인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윗은 사울의 후손 중 일곱 명을 내어주어 죽게 합니다. 시신을 방치하고 있을 때 아야의 딸 리스바의 행적이 다윗에게 보고되고 다윗이 그 뼈들을 장사지냅니다. 성경은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니라’고 합니다(21:14). 기브온 족속의 원한을 풀어준 후가 아니라 리스바의 인간 존중의 행위가 있은 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원수를 갚아주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동일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리는 인간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헛된 열심으로 이스라엘에 삼근 기근이 임하게 하였는데 연약한 여인의 행동은 기근을 멈추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안정은 직위와 신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에 있습니다.

 

4. 다윗의 관리들

세바 사건을 통해 다윗이 하나님을 배우지 못한 것을 성경은 절묘하게 표현합니다. 세바의 반란을 제압하는데 단지 여인 한명으로 충분했지만, 모든 공로는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에게 돌려졌습니다. 그리고 세바 사건 다음에 다윗의 관료 명단이 나옵니다. 왕이 하나님보다 국가의 관료체제를 더 의지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에 삼년 기근이 임한 것이 리스바의 자비로운 행동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 사건 다음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들의 활동과 장군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계시 사건과 다윗의 반응이 얼마나 상반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이 군대를 형성하고 좋은 장수를 길러내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인간이 할 일을 방치하고 하나님만 쳐보다는 것은 맹신일 뿐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이 자신의 보장이라는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원리가 아니면 자신이 길러낸 후계자가 자신의 경쟁자가 되고, 자신의 보호자가 자신의 암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형식, 제도, 전략,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도 됩니다. 단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원리로 행할 때 유익이 됩니다.

 

 

Ⅲ. 다윗의 행적 (삼하 22~24장)

 

1. 성경의 패턴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역패턴과 더불어 문학적인 구조 또는 배치의 패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외에 인간적인 측면이 부각되면 앞뒤에 인간의 실패가 묘사됩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계시하는 책이기에 당연히 하나님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성품이나 사건, 가문, 조직 등이 소개되는 것은 하나님이 이외의 것이 결국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장치들입니다. 하나님이 주도하는 사역에서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간의 특징과 결과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왕정 시대에는 인간의 출신, 조건, 정황 등이 자주 언급됩니다. 다윗의 행정제도, 솔로몬의 부귀에 대한 언급들은 칭찬이 아니라 조롱이며, 열매가 아니라 화근입니다.

 

2. 다윗의 찬양

기독교의 찬양은 인간이 신을 높이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신에게 복을 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역을 통하여 인간에게서 찬양이 나오도록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는 인간에게 찬송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과 역할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찬양의 동기, 찬양의 내용, 찬양의 행동 등을 모두 하나님이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22:1)입니다. 인간의 행동(찬양)을 통해 하나님이 칭송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인간이 은혜를 받고, 자신이 깨달은 하나님을 고백함으로(찬송의 내용) 자신의 신앙이 더욱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3. 다윗의 마지막

다윗의 마지막 말(23장)과 행동(24장)은 다윗의 자화자찬이고 이어질 열왕기에서 이스라엘이 과연 얼마나 ‘다른 나라와 같아졌는가’를 보게 될 힌트입니다. 이미 다윗의 용사들이 소개됨으로 다윗의 강성함이 드러났는데 다윗은 기어코 인구조사를 하고 싶어합니다. 무명의 목동에서 거대한 왕국을 달성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왕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의 번성은 ‘왕의 수고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의 행위, 왕의 통치를 기준으로 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자기 백성을 도우셔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는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심복들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인구조사를 실시하였고 이스라엘 80만, 유다 50만의 강국임을 확인합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 범죄 함을 깨달은 후 죄의 결과를 당할 때에도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고 백성 칠만 명이 죽임을 당하게 합니다. 그때에야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단순히 다윗의 실수로 인해 무죄한 백성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다윗만큼 은혜를 받은 자가 이러한 행동을 한 다면 백성들의 불신앙은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반란의 결과로 인한 살육이든, 블레셋과의 전쟁을 통해서든 더 많은 살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인구조사 사건은 죄의 결과로 드러나는 현상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계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과 사람

성경은 어떤 사람도 영웅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셨기에 그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죄인임에도 사람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죄인에게 직접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그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배역함에도 용서하시고 더욱 친절히 가르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은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쉽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신만을 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죄인의 한계를 발견하고 예수가 왜 오셔야하고, 왜 죄에게서 놓임을 받아야 하는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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