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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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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강 사사기 6 ~ 9 장

 

Ⅰ. 사사들

 

1. 사사의 의미

사사(판관, Judge)의 강조점은 사사로 세움 받은 사람이 아니라 사사를 세우는 하나님입니다. 사사는 당사자가 어떤 내용이나 현상을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당사자나 주변인 또는 제삼자로 하여금 사사를 보고 상황, 사건, 내용, 의미를 판단할 수 있는 역할을 맡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사사는 특정한 사람이나 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특정한 정치, 행정, 종교 체제를 지정하신 적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원리인 토라를 주셨을 뿐입니다. 사사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아무 특징이 없습니다. 사사는 지도자도, 통치자도, 새로운 입법자도, 군사적 리더도 아닙니다. 적군을 몰아내고 태평을 만들어내고, 백성들의 평안한 삶을 책임지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사사는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에 쓰임 받은 사람일 뿐입니다. 사사의 위대성, 탁월성, 용감성 등을 운운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적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 인간의 조직체에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요, 탁월한 리더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교훈이 실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사의 사역

사사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선택되거나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한 구원자를 세워’(3:9, 15) 또는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3:10, 6:34)입니다. 여호와가 강조되는 이유는 사사의 사역이 인간의 힘, 수단, 능력, 지혜, 조건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면 이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을 세워도 가능하고, 이 방법뿐만 아니라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사사에 대한 사전 소개 즉 사사의 출신, 능력, 성품 등 사사의 등장을 통해 이스라엘이 신뢰, 안도감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사를 통하여 행하신 사역의 열매는 이스라엘의 평온함입니다(3:11, 30, 5:31, 8:28). 영토확장이나 부국강병, 새로운 지도체계 구축이 전혀 아닙니다. 각각의 사사는 각각의 지역에서, 각자에 해당되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사역이 종결됩니다. 사사기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나 말씀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사들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기도나 간구도 없고, 여호와에 대한 일체의 언급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와 축복이 온전히 주어졌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 전쟁이야기

구약의 사건들의 대부분은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고,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성경은 유독 전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삶의 다양한 요소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건들의 본질은 같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삶의 현상들이 발생하는 원인과 해결은 원론적으로 동일하기에 각양의 경우를 다 다루는 것이나 한 가지 문제를 다루는 것이 같은 의미입니다. 각 분야를 한 번 씩 다룰 경우 각 상황의 독특성을 빌미로 성경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에 성경은 당시 상황에서 가장 비중 있게 여겨지는 전쟁을 통해 인간의 모든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신약은 질병과 귀신 이야기를 많이 다룹니다. 신약시대에 특별히 귀신의 활동이 활발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약에서 이미 전쟁을 대표적으로 다루었기에 신약에서는 또 다른 유형의 대표로 귀신의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4. 신앙 이야기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각자의 신이 있고 세계관이 있고 원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계시하고 하나님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다른 신과 싸우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다른 신을 정복함으로 그 신을 섬기던 백성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은 다른 종교의 무익함을 드러내고, 그 무익함도 하나님의 유익함을 통해 밝혀질 뿐입니다. 다른 것에 대한 상대적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앞장서 우상을 멸절하여 이스라엘이 우상을 찾지 못하도록 막지 않으십니다. 우상은 실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종교적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사들의 활동을 통해 이스라엘이 평온함이 누려질 뿐, 하나님의 사역의 대가로 예배와 제사와 찬송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와, 하나님을 알아 하나님의 원리로 사는 인간의 삶입니다.

 

 

Ⅱ. 시험 받으시는 하나님 (삿 6~8장)

 

1. 인간의 죄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행한 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사기의 구조상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기본적 태도가 1~2장에 소개되고, 이스라엘의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3~16장까지 소개되고, 이스라엘의 악행이 17~21장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삿 17~21장에 나타난 백성들의 죄는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지독히 인간적인 것입니다. 인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공의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순한 인권존중이나 정의사현구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이 인간이며, 하나님의 원리가 정의인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죄의 결과는 미디안에게 정복을 당하는 것이고, 당연히 나타나는 부수적인 현상들은 경제적 피폐, 살인, 갖가지 악행, 약탈, 불신 등이 수반되고 결국은 인간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아니라 죄의 현상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으셔도 죄인은 죄의 결과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

태평할 때에도 하나님의 원리를 순종치 않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곤고할 때에 하나님의 원리를 순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고통 중에 울부짖는 이스라엘의 행위는 절대로 회개가 아니고 다만 삶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의 아우성일 뿐입니다. 죄인은 회개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원리를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우상을 섬겼다는 말인데, 자신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에는 정작 우상에게 부르짖지 않고 하나님께 외칩니다. 죄인들 스스로도 우상이 얼마나 무용한 것인가를 알면서도 정작 평화가 오면 우상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또 다른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의 존재와 우상 숭배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죄성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범죄는 하나님을 모르기에 발생되는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징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사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계시의 사건을 전개하시고, 그 사건은 모든 사람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인간이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됩니다. 이 때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이 사사요, 기드온입니다.

 

3. 큰 용사여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행하신 일과 이스라엘의 정체성에 대하여 선언하신 후 몰래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기드온이 큰 용사라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기드온도 큰 용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늘 자신이 어떤 존재인기를 묻지만 하나님은 모든 인간은 동일하기에 인간의 능력에 개의치 아니하시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변화될 것을 알리십니다. 기드온은 자신들의 처지가 하나님이 부재하셨기 때문이라고 항변합니다. 이스라엘은 원래부터 가나안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은 유리하는 아모리 사람의 후예였고,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생활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었고 가나안에 정착은 아예 꿈도 못꾸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살게 된 것이 이미 은혜를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 삶의 유지하는 방법도 이미 다 알려주었건만, 자신들이 불순종함은 전혀 개의치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무능함, 하나님의 부재를 원망합니다.

 

4. 하나님을 시험하는 인간

기드온은 자신도 믿지 못하고 하나님도 믿지 못합니다. 자신을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표징을 원하고, 하나님은 지팡이로 예물을 불살라 증거 하십니다. 또한 아비의 집과 이스라엘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 상을 찍어 번제를 드리게 함으로 우상의 무용성을 드러냅니다. 기드온은 또 다시 양털을 통하여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은 두 차례에 걸쳐 철저하게 기드온에게 시험을 당하시고 검증받습니다. 전쟁에 나가기 전에도 적진에 들어가 적군들을 입을 통해 이미 하나님이 미디안을 이스라엘에 손에 붙이셨다는 소식을 듣게 하십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모든 면에서 도와주십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사는 32,000→10,000→300으로 감소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특별한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에는 군사도 적고, 무기도 없기에 도무지 이길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시면 된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 적용됩니다. 농사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되고, 경제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면 인간이 태평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Ⅲ. 어리석음의 극치 (삿 9장)

 

1. 배우지 못하는 인간

기드온은 백성들을 청하여 함께 전쟁에 참여하여 승리에 동참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승리한 후에 에브라임은 기드온에게 시비를 겁니다. 그렇게 담대했으면 전쟁에 나갈 것이지 꼭 승리한 후에 등장하는 것이 죄인의 전형적인 수작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가장 소심한 기드온, 가장 오합지졸의 군사를 동원하였는데 백성들은 모든 기대를 기드온에게 집중시켜 왕이 되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왕이 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기드온은 아무 일도 않했지만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물론 왕이 되어 백성을 책임져야 하는 책임은 회피하고, 은금을 요구하고 에봇을 만듬으로 권리는 챙기는 교활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통하여 계시 사역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전햐 하나님을 배우지 못합니다.

 

2. 아비멜렉

기드온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다시 바알들을 음란하게 섬기고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아비멜렉은 왕에 대한 야망을 품고 기드온의 아들이요 자신들의 형제들인 70명을 몰살하고 세겜 사람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삼년간 통치한다. 삼년 만에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간에 반목이 생겨 서로 싸우던 중 백성들은 아비멜렉에게 진멸당하고 아비멜렉은 데베스 성에서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습니다. 아비멜렉 사건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일반적인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도 사람끼리 나라가 세워지고 통치가 이루어지고 번성할 수도 있지만 핵심은 모든 인간의 행복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평안은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셨고, 인간은 자신이 소유한 행복과 평안을 누리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거듭되는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거나 구원을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행복을 누리는 원리임을 깨달아 순종해야 합니다. 사사기는 죄인의 지속적인 불순종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지속적인 신실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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