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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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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강 사무엘상 13 ~ 18 장

 

Ⅰ. 사울의 성공, 실패 (삼상 13~14장)

 

1. 하나님의 부탁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왕을 요청하였을 때 하나님은 왕을 세워주셨지만, 사울을 왕으로 기름 부을 때에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를 설명하였을 뿐, 사울에게 왕이 될 것에 대한 징조를 주셨을 뿐 사울이 행할 일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사울에게 블레셋을 물리치고 국태민안을 이루라고 책임을 지우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원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아무 것도 명령하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해야 할 과업, 사명,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쉬운 것이며 영광입니다. 모든 책임은 어차피 하나님이 지실 것이기에 결국 되어 질 일을 맡아 먼저 누리는 것입니다.

 

2. 왕이 된 사울

하나님이 먼저 사울에게 지도자로 기름을 부으셨고(10:1), 백성들이 사울을 왕으로 뽑아 왕의 만세를 불렀습니다. 아직 백성들에게 왕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암몬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하자 사무엘의 요청에 의해 백성들은 다시 사울을 왕으로 삼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도우신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으나 백성들은 사울을 강조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에 의해 세움받은 왕의 역할을 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라’고 고백한 것이 전부입니다. 사울의 역할은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왕이 된 사울은 철저히 자신의 자신됨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두 번 전쟁에서 승리함을 통해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백성들의 호응에 따라 하나님의 앞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였습니다.

 

3. 사울의 실패

사울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바로 군대를 조직했습니다(13;1). 블레셋과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은 기한 정한에 오지 않고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자 사울은 스스로 번제를 드립니다(13:9). 심지어는 하나님의 궤를 전쟁터로 가져오기까지 합니다(14:18). 아직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결국에는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사무엘은 ‘왕이 망령되어 행하였도다’,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사울에게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생각은 없고 자신의 전략으로 싸운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적군이 약하고 이스라엘이 강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사무엘이 와서 제사를 드리기 전에는 절대로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에 스스로 나간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역할을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사울은 열심히 싸웠다고, 결국은 승리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열심이나 인간의 승리를 기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고 선포합니다.

 

 

Ⅱ.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삼상 15장)

 

1. 쓰임받는 것과 버림받는 것

사울이 평범하게 살다가 하나님께 불려 왕으로 쓰임 받았다가 불순종하자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일이 없고 버릴 일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면 되고, 저 사람이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원천적으로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받거나 버림받는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일의 도구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복을 누리다가 불순종으로 그 복을 상실할 뿐입니다. 직분과 위치와 사역의 종류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2. 들으소서

사울은 백성들이 기대한 왕의 역할을 잘 했습니다.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불러 모았습니다(14:52). 전쟁을 대비하고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딱 한 가지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요청합니다(15:1). 하나님에게 왕은 ‘말하는 자’, ‘일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이어야 합니다. 아말렉과 전쟁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라고 전쟁의 결과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승리하신 증표로 아멜렉을 진멸하고 전리품을 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사울이 모은 군사 이십일만 명이나 사울의 전략이나 사울의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을 통해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다’는 고백을 하게 하십니다.

 

3. 사울의 기념비

사울은 각양 좋은 것은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였고(15:9), 갈멜에 기념비를 세웠으며(15:12), 사무엘을 만났을 때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15:13, 15)라고 합니다. 사울은 자신이 승리하였고 많은 것을 획득하였기에 승자, 강자, 부유한 자의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도리어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말을 청종하였음이라’입니다(15:24).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았음을 지적받고, 여호와께서 새로운 왕을 세운다는 계획을 들었지만 사울은 왕위에서 물러날 기색이 전혀 없고 도리어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계속 왕으로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제사하는 것마저 백성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15:30).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왕에만 집착합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해야 사울과 이스라엘이 평안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수고를 늘 자랑하며, 자신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극복했으며 얼마나 힘든 일을 성취했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기독교는 그 모든 어려운 일은 하나님이 행하셨다고 선언하고 인간에게 그 결과를 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Ⅲ.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삼상 16~18장)

 

1. 사무엘의 순종

사울의 기세에 눌렸는지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 대신 새로운 왕을 세우신다는 말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때문에 탄식만 할뿐 새로운 왕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도리어 새로운 왕을 세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울을 두려워합니다(16:2). 모든 것을 다 가진 사울과 비교할 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무엘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사울은 백성을 두려워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았지만, 사무엘은 사울을 두려워하면서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합니다. 백성들의 관점에서 사울과 사무엘 중에 공적을 쌓은 사람, 많은 일을 한 사람은 사울입니다. 실제로 사무엘은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인간 사무엘이 탁월한 영성이나,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감이나, 백성을 이끌어가는 리더쉽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이 존경받아야 할 근거가 없습니다. 사무엘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였을 뿐입니다.

 

2.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

백성들은 여전히 사울 왕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왕의 불순종을 문제삼지 않으며, 새로운 왕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사울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사울대신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13:14)을 지도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용모와 키를 보지만(16:7) 하나님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입니다. 다윗에 대해 ‘양을 지키나이다’(16:11),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16:12), ‘수금을 탈 줄 알고, 구변이 있는’(16:18)등의 표현은 칭찬이 아니라 왕답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백성들에게 왕은 자신들을 위해 대신 싸워줄 사람이기에 키와 용모가 중요한데 다윗은 백성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았고, 심지어 아버지조차도 다윗에 대해 기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신 할 사람, 하나님께서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기준과 전혀 다른 사람을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성경은 장수 사울과 목동 다윗을 대조시키고, 악령에 시달리는 사울과 여호와의 영이 임한 다윗을 대조시킵니다. 사울이 전쟁을 위해 진을 치고 전열을 벌였으나 사울보다 더 크고 강한 장수의 등장에 무기력함을 대조합니다. 기껏 세운 대안이 적장을 죽이는 사람에게 재물과 딸을 주고 세금을 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키가 크고 놋 투구를 썼고 비늘 갑옷을 입고 놋 각반을 찼고 칼을 든 골리앗과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돌 다섯을 준비한 다윗을 대조합니다. 전쟁에 능한 사울조차도 ‘용사와 소년’의 대결은 싸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인정할 정도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골리앗의 보기에도 다윗은 군사가 아니라 예쁘장한 소년에 불과하여 업신여김을 당할 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무엘, 사울, 골리앗의 기준이 모두 동일합니다.

골리앗은 자기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고 선포합니다. 성경의 강조는 다윗의 용맹함,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달랑 돌을 던지는 것으로 골리앗을 죽이고 골리앗의 칼로 그를 죽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와주신 것입니다.

 

4. 누구의 아들이냐?

골리앗이 죽었을 때 이스라엘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온통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17:55, 56, 18)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온데간데없고 모두 다윗이 전투를 잘 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당연히 사울은 뛰어난 장수를 얻었다는 듯이 다윗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고 아예 군대의 장으로 삼으매,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깁니다. 다윗이 승리를 거듭하자 백성들도 다윗을 칭송하고 사울은 민심을 의식하고 다윗을 시기, 질투하게 됩니다. 다윗이 전쟁을 잘 할지라도 사울에게는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질 뿐이기에 창을 던지 죽이려하고(18:11), 다윗이 지혜롭게 행할수록 더욱 두려워하고(18:15, 29), 딸을 미끼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기를 기대합니다(18:17, 25). 사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심, 다윗을 왕으로 세우심,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알았지만 다윗이나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다윗을 제거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기에 여호와의 계획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행보는 여호와를 제외하면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윗은 진즉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도리어 거듭된 살해 위협에 처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울이 죽이려해도 다윗은 죽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셨기에 동행하시며 지키시며 기어코 왕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증명해 내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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