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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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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강 사무엘상 19 ~ 26 장

 

 

Ⅰ.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삼상 19~21장)

 

1. 하나님의 책임

하나님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른 다윗을 선택했기에 이제부터 바빠지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뽑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능력도 실력도 인기도 기대도 없고 도리어 주변사람들의 걱정이 늘어나고 불만이 늘어납니다.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 좋아하기는 했지만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어떤 시도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고 백성들에게 왕으로 추대할 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선택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백성들의 기대에 합당하게 만들어 가야하고, 동시에 백성들의 불만도 풀어주어야 합니다. 게다가 이 과정을 통해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야 하는 삼중적 역사를 펼치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이 과정을 위해 의도적으로 인간의 삶을 간섭하거나 고난과 역경으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인간의 의지, 자유, 선택을 제한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강요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을 선용하시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 받기 위해 시험을 받고 연단 받는 일은 없습니다. 오직 인간이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뿐입니다.

 

2. 선용하시는 하나님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알려집니다. 하나님은 어느 순간 갑자기 기적 같은 일을 펼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고 당사자도 모르는 중에 이미 삶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다윗이 목동으로 양을 치면서 했던 일들이 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개인적으로 왕에 대한 야망을 가진 적이 없고, 왕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한 적이 없고, 양을 치는 생활이 전쟁에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한 적도 없습니다. 사울과의 대화 속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의 모습이(17:37) 등장하고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가는 출사표 중에(17:46~47절) 다윗의 역할이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실함이거나 겸손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주사 이스라엘의 신앙의 교육자로 세워가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다윗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울과의 갈등에서 다윗이 맡겨진 모든 일을 잘 감당함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18:14).

 

3. 도와주는 손길들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사울의 신하가 되었고, 사울의 요청에 의하여 사위가 되었습니다.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였지만 결과는 사울의 대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18:29, 30).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위해 사울을 설득하고(19:4, 20장), 사울의 딸 미갈은 아버지의 살해위협을 알고 다윗을 창에서 달아내려 도망가게 해 줍니다(19:12). 다윗이 사무엘에게로 피신했을 때 사울이 전령을 보내자 이번에는 하나님의 영이 다윗을 보호해주고, 사울이 직접 다윗을 찾아 왔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막아줍니다(19:19~24).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러 허기졌을 때에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거룩한 떡을 제공하여주고, 골리앗의 칼도 줍니다(21장). 한편으로는 다윗의 삶이 더욱 곤고해져 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도무지 예상하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예상하지 못한 도움을 받아 생명을 이어갑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다윗은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울과 다윗을 계속 교차적으로 등장시켜 불신앙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을 비교시켜 줍니다. 사울은 정권의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세우심의 목적을 상실한 죄인의 모습이요, 다윗은 비록 기름부음을 받았을지라도 매순간 하나님께 의뢰함으로 자신의 자신됨이 하나님을 나타내며 하나님만이 자신과 이스라엘의 인도자요 왕이심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믿고 의지할 만한 탁월한 지도자를 제공하시는 것이 아니며, 다윗에게도 나라를 다스릴만한 능력과 인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알도록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Ⅱ. 죽이는 자, 살리는 자 (삼상 22~24장)

 

1. 제사장마저

사울은 이스라엘의 안녕과 백성들의 평안을 철저하게 자신의 공로라고 주장합니다. 다윗이 백성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협박합니다(22:7). 그때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음식과 칼을 준 것을 알려 주었고, 사울이 아히멜렉을 불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반역을 시도하였다’고 협박합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은 충실한 신하요, 왕의 사위요, 왕의 호위대장이요, 왕실에서 존귀한 자’임을 강조합니다. 사울은 에돔 사람인 도엑의 말은 듣고, 이스라엘 사람이요 제사장인 아히멜렉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사울에게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고, 민족이 중요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중요하지 않았고, 하나님조차도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왕위만이 중요했습니다. 사울이 아히멜렉과 그 집안을 죽이려 할 때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하였고, 에돔 사람 도엑이 제사장들을 죽입니다. 이스라엘이 ‘에돔’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히멜렉의 아들이 아비아들인데 후일에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작성한 살생부에 포함되어 살해를 당하게 되는 아이러니의 대상이 됩니다.

 

2. 살리는 사람

다윗의 주변에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도움을 받아야 하는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모든 자’가 모였습니다(22:2).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마저 죽이는 사건과 대조하여 이제부터 다윗은 도망다니며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에 급급한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시작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가서 미치광이 노릇을 하기도 했습니다(21:10).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의 보호를 받기도 했으나 선지자 갓의 인도로 유다 땅으로 돌아왔습니다(22:3). 사람들이 블레셋에 의해 약탈을 당했을 때 사울 왕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다윗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다윗을 말릴 때 다윗은 여호와께 묻고 응답을 받아 블레셋을 물리치고 그일라 주민을 구원합니다(23:4).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직위, 소유, 능력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상대를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도움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3. 돕는 사람들

제사장 살해 사건 이후 사울과 다윗의 상황은 완전히 바뀝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상의 권력자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세상의 약자가 전혀 다른 역할을 합니다. 사울 왕은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도외시하고 도리어 신하요 백성인 다윗을 죽이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일행들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합니다.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십니다(23:14).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셨기에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도록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입니다. 사울의 의도는 아들 요나단에 의해(23:16), 블레셋에 의해(23:27) 계속하여 실패합니다. 하나님은 대적의 아들이나 이방 나라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Ⅲ. 하나님을 인정하는 다윗 (삼상 25~26장)

 

1. 여호와께서 판단하사

사울이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을 추적하다 엔게디 광야의 굴에 들어갔을 때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를 가졌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원수를 넘겨 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다윗은 거부합니다. 정황상 참모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지만은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라고(24:6), ‘여호와께서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24:12),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단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게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24:15)라고 합니다. 동일한 유형의 사건이 26장에서 반복되어 다윗이 사울을 살려준 것이 단회적이거나 두려움이거나 동정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인다고 바로 왕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왕이 되는 것이 보장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다윗은 정세의 유리, 불리를 따지기 보다는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울을 세우신 자도 하나님이요, 다윗을 세우신 자도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온갖 살해 위협에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이었기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자신이 보호받고 왕이 될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2. 막아주시는 하나님

성경의 이야기 배열은 매우 의도적입니다. 사무엘에 대해 출생 전의 상황부터 성장과정까지 자세하게 다루었지만(1~3장) 정작 사무엘의 활약은 미스바 사건 하나뿐이고(7장) 후반부는 사울을 두려워하고(16, 19장),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었지만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이나 왕이 된 이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사무엘이 죽으매’(25:1)라는 한 구절로 성경에서 사라집니다. 성경이 강조하려는 것이 사무엘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는 이야기가 24장과 26장에 나오고 중간인 25장에는 다윗에 대한 전혀 다른 모습이 등장합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음을 보여줌으로 다윗의 다윗됨은 다윗 개인의 성품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사역의 결과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던 다윗의 일행은 식량이 부족하여 나발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직접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을 데리고 나발의 집으로 향합니다(25:13). 사울의 기준에서 다윗을 잡으러 다니던 사울의 모습이, 다윗의 기준에서 다윗에게 동일하게 재현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내세우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25:33). 비록 아비가일의 다윗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하였지만 나발의 아내로서 남편을 위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리어 위기의 상황에서 단지 강한 자의 편에 서는 지극히 교활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 사건의 강조점은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일하심입니다.

 

3. 하나님을 알라

사울과 다윗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사울이 왕위에서 쫓겨나거나, 미친 왕에 대해 신하들이 반역을 하거나, 백성들이 새로운 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백성들의 추대를 받지도, 더 이상 도망다니지 않고 일정 지역에 안주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훌륭한 왕을 세워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면 당장에 사울을 폐하고 왕을 등극시키면 됩니다. 그런데 사무엘상의 전개 방식이 바로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상황이 바뀌는 것이 문제해결이 아니라 인간의 원리가 하나님의 원리로 바뀌야 한다는 것이며, 이 원래의 전환 또한 한 순간에 새로운 원리를 채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커가는 것으로 체험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원리에 순종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상황에 대해 고난이나 역경의 시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고난은 상황적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 없고, 하나님의 가르침이 없어서, 아무리 상황이 나아져도 상황을 꾸려나갈 하나님의 원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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