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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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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1-4

. 이스라엘의 종교

 

1. 하나님이 예언과 성취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자원하여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부는 하나님을 섬기자고 주장하고 일부는 우상을 섬기자고 주장하는 종교로 인한 갈등이 발생한 적이 없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지어진 이후에는 여호와 신앙이 왕실 종교로 왜곡되었고, 왕들은 정치적 판단에 의해 종교적 변신을 반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진 것은 오직 하나님이 선지자를 세우시고 사역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하게 하신 예언들 중에 이스라엘과 관련된 것은 유다의 패망과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예언을 듣지 않아 패망과 포로가 이루어졌고, 하나님이 예언대로 행하서 귀환과 성전 재건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2. 이스라엘의 갈등과 종교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3:2~6)입니다. 불순종으로 나라가 패망한 것이 주전 586년이고 귀환한 것이 주전 538년이기에 불과 5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스라엘이 종교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하나님 편을 들고 나선 사례, 여호와 신앙을 주제로 백성들 간에 갈등이 발생한 사례가 포로귀환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바사의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은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되어 그 땅 백성들과 성전을 짓는 과정부터 충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전이 재건된 이후에는 바사의 총독으로서 예루살렘으로 파견되어 온 에스라가 중심이 되어 종교 정화작업을 진행합니다. 모세의 율법을 유대지역의 통치법으로 활용하여 사로잡혔던 자들의 모임을 중심으로 종교 정치를 형성해 갑니다. ‘유대교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로 이스라엘에 모세의 율법을 기초로 한 종교가 세워져갈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말라기는 유대교가 진행된지 100여년 정도 되는 시점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입니다.

 

3. 종교적 변론

패망 전에 유다에서 여호와의 성전을 중심으로 종교 행위가 진행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왜곡된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1:11~13)입니다. 대신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1:10),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1:17) 하시며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에게 요청하신 것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1:18)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일체 변론에 응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예언도 듣지 않았습니다. 귀환자들이 모세의 율법을 중심으로 종교를 갱신하였지만 정치화 되었을 뿐 여호와 신앙에서 변질되어 말라기에서 하나님과 변론, 논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변론 (1~2)

 

1. 누가 옳은가?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1:2)고 하시고 이스라엘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1:2)라고 반박합니다. 하나님은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일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1:6)고 하시고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1:6),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1:7)라고 반박합니다. 누가 옳은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종교 행위에 대해 멸시, 경멸’(1:6, 7), ‘악한 것’(1:8)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더러운 떡을 드리고’(1:7),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고’(1:8),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고’(1:8)입니다. 바사의 총독도 받지 못할 정도(1:8), 여호와는 더더욱 받지 못할 정도(1:8), 헛된 일로 차라리 성전 문을 닫는 것이 나을 정도(1:8, 10)였습니다.

 

2. 너희가 말하기를, 너희가 행하기를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1:12),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1:13)라고 말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고(1:12),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고(1:13),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드리기’(1:14)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유다의 종교를 책망하신 것은 종교 행위만 있을 뿐 여호와의 뜻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라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종교 행위 자체가 악하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거나 왕실 종교로 변질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그나마 지극정성이라는 기본적 종교성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결정한 종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라기 시대에는 우상이 아니라 여호와를 섬기는데 종교의 기본이 상실되었습니다. 유대교에 참여하는 백성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선택한 종교가 아니고, 도무지 신뢰할 만한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종교 행위를 해야만 하는 강요된 종교, 의무화된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3. 여호와가 이르노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멸시를 당하셨으나 하나님은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 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1:11),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1:14)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표현상으로는 저주같은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2:3),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회복인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2:4)를 선포하십니다.

 

4. 하나님의 사역, 이스라엘의 사역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2:5~6)은 실상은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의 열매입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을 거스르게 하는도다’(2:7~9)가 이스라엘이 행한 일입니다. ‘거짓을 행하였고,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고’(2:10~11),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고’(2:13), 하나님의 반응에 대해 어찌 됨이니이까’(2:14) 등의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합니다(2:17).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식으로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고 있습니다.

 

 

. 내 사자를 보내리니 (3~4)

 

1. 깨끗하게 하리라

여호와는 내 사자를 보내리니’(3:1)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제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3:3~4)를 행하셔서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는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3:6)를 이루실 것입니다. 물론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3:5)도 행하실 것입니다.

 

2. 돌아오라

이스라엘의 실상은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3:7)이고, 유대교가 시작된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십니다. 물론 백성이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합니다. 질문이 아니라 반문 즉 왜 돌아가야 합니까’, ‘이미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고 하시자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 즉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하였습니까라고 반박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절기를 지키고 예물을 드리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지적에 단 한 번도 수긍하지 않고 계속하여 주께서 어떻게’, ‘우리가 어떻게라며 대들고 있는 것입니다.

 

3. 시험하라

이스라엘이 성전을 중심으로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말 그대로 종교생활, 종교정치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3:9)고 지적하시고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3:10)고 하십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3:13),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3:14)고 교만을 떨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미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를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3:16~17,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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