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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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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강 열왕기하 11 ~ 16 장

 

Ⅰ. 이스라엘 지파들의 관계 (왕하 11장)

 

1. 이스라엘의 지파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을 시조로하여 야곱의 두 부인과 두 첩에 의해 출생한 열 두 아들에 의해 열두 지파로 구성되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민족을 이루게 하신 사역을 제외하면 이스라엘은 다른 지파들, 민족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아주 사이좋게 살았던 것이 아니라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경쟁하며 심지어는 형제 중의 하나인 요셉을 죽이기로 계획했었고 결국 이민족에게 팔아넘기기도 하였습니다. 가나안으로 이동할 때에 지파 중 일부는 가나안 지역에서 형제들과 함께 살기보다는 비록 약속의 땅이 아닐지라도 자신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땅에서 형제들과 떨어져 살기를 원해서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나뉘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하여 각 지역에 흩어진 살게 된 이후로도 열두 지파는 각별하게 결속력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사시대에 지파 중 일부가 이방의 압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군사를 파견하여 함께 위험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던 시기에는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주도되었고, 다윗은 처음에는 유다지파만의 왕이 되었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죽고 세력이 약해진 다음에야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며 유다지파에게 최대한의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2. 분열과 연합

솔로몬이 죽은 후에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에 다윗의 유다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들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 왕국을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은 한 조상의 후예로서 통일을 유지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고, 나라가 분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았고, 가능한 빨리 다시 통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도 없었습니다. 북 왕국과 남 왕국은 마치 전혀 같은 민족이 아닌 것처럼 서로 대적하고, 이방을 동원하여 전쟁을 치르려고 하며, 철저하게 죄의 원리에 따라 관계를 운영하였습니다. 북 왕국의 아합의 시대가 강력하여 당시 남 왕국의 여호사밧은 자기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결혼하게 하여 두 나라의 동맹을 맺었습니다. 원래 한 민족, 한 나라, 한 족속이었던 이스라엘이 결혼을 통해 동맹을 맺어야 할 정도로 별개의 민족, 족속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여왕

예후가 오므리 왕조의 마지막 왕 여호람(요람)을 살해하며 왕조를 진멸하는 과정에서 유다의 왕 아하시야와 그의 형제들도 모두 죽였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예후에 의해 자기 아들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고 이스라엘의 최초이자 최후의 여왕이 되어 칠년을 통치합니다. 오므리 왕조는 예후에 의해 멸절을 당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가족의 일원은 남쪽으로 이주하여있어서 멸절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예상 밖으로 오므리 왕조의 일원에 의해 아하시야 왕의 일족이 모두 멸절을 당하여 왕조가 끝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압제를 당하고 살해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나 저주가 아니라 인간 삶에서 반복되는 현상이고 도리어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위기상황에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Ⅱ. 변질된 사역 (왕하 12장)

 

1. 변질된 제사장 사역

아달랴가 왕족들을 진멸하며 왕이 될 때에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구출하였고,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에 육년을 숨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세워 ‘여호와의 신앙’이 아닌 ‘왕의 종교’를 세웠을 때 이미 종교의 중심은 ‘왕’이었고, 제사장은 정치세력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또 다른 정치세력인 백부장들과 언약을 맺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요아스를 인도하여 내어 왕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여 왕의 만세를 불렀습니다. 요아스가 칠세에 왕이 되었으니 왕권의 행사는 여호야다의 손에 있었고,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을 지도하여 여호와와 언약을 맺게하고 바알의 신당과 제단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제사장을 죽이는 개혁을 행하였습니다.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의 행동은 비록 여호와의 성전에서, 안식일에, 율법책과 함께 진행되고 있지만 여호와 신앙과는 무관한 종교행위나 권력행위일 뿐입니다. 아달랴는 여호야다의 행동을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단지 반역으로 취급하였고, 결국 여호야다는 반역자와 같이 아달랴의 세력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역할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방법을 제안할 때 하나님만이 유일한 방법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참 의미를 깨우쳐 주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대행자가 아니며,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위임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어느 위치에 있을지라도 권력을 의지하지 않아야 하며 자신이 권력이 되지도 않아야 합니다.

 

2. 변질된 왕의 사역

요아스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여호야다의 도움을 입어 왕이 되었을 때 칠세였고, 장성하여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 즉 30세쯤 되어서 나름 왕권을 인식하였을 때에 제사장 세력과 충돌을 하게 됩니다.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라고 지시하지만 제사장들은 수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 들어오는 수입을 자신들의 재산으로 생각할 뿐 성전 수리비용으로 사용하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사장 여호야다는 별도의 궤를 마련하여 일정 금액이 모이면 일꾼을 불러 성전을 수리하게 하고 비용을 지불하게 했습니다.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자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의 금을 가져다가 하사엘에게 조공으로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왕과 제사장간의 권력과 금전의 경쟁과 대결이 있었던 것입니다. 왕이나 제사장에게 여호와의 성전은 여호와 신앙의 중심지가 아닌 권력투쟁의 장소였을 뿐입니다. 왕도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3. 변질된 방법

요아스는 신복인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에 의한 모반을 당하여 밀로 궁에서 암살을 당합니다. 아달랴가 가족들을 죽이고 왕이 된 것처럼, 제사장 여호야다가 아달랴를 몰아내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 것처럼 이제 신복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왕을 세우기 위해 모반과 암살을 자행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 왕, 신복들 모두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뿐 어디에도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이 없습니다. 열왕기서가 주로 북왕국을 중심으로 기록되었고 중간에 남왕국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양식입니다. 북왕국은 우상을 숭배하고 죄의 원리를 행하고, 남왕국은 여호와를 의지하고 율법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두 나라에서 전혀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동일하게 죄의 원리를 따르는 ‘모든 나라와 같이’ 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뿐입니다.

 

 

Ⅲ. 예후 왕조 (왕하 13, 15장)

 

1. 이스라엘의 자업자득

북 왕국은 여호아하스가(11대) 왕이 되어 여로보암의 죄를 좆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행을 계속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악행은 특정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자신의 권력기반을 자신이 구축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왕들이 취한 선택은 동맹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시대에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동맹은 강자일 때만 유용할 뿐 조금이라도 세력이 약해지면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압제로 돌변하게 됩니다. 여호아하스 시대에 이스라엘도 아람 아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압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가 하나님없이 승리하는 모습을 거의 기록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

이방의 학대에 견디다 못해 여호아사스는 여호와께 간구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이 곤경에 처할 때에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간구할 것이 아니라 죄의 길을 떠나 하나님의 마음과 뜻으로 행동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으로 변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도움만 구하고 있고, 이러한 행동은 신앙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요 하나님의 도움으로 압제를 벗어난 다 한들 동일한 패턴이 반복될 것이 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간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자를 보내주시어 이방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게 해주십니다. 모든 상황을 통해 이스라엘을 가르치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악행을 계속하며 사마리아의 아세라 목상을 여전히 두었고 결국 아람 왕에 의해 큰 피해를 받게 됩니다. 신앙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원리의 변화입니다.

 

3. 하나님의 신실하심

요아스(12대) 왕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여로보암 2세(13대) 왕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스가랴(14대) 왕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결국 예후 왕조는 ‘네 자손이 사 대 동안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하신 대로 되었고, 살룸의 반역에 의해 예후 왕조가 멸절을 당하였습니다. 살룸(15대), 므나헴(16대), 브가히야(17대), 베가(18대) 왕들도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에 따라 반응을 보이시는 분이 아니시다. 도리어 하나님은 인간의 배반과 악행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약속을 꾸준히 지키시며 인간을 도우시기를 중단하지 아니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입니다. 인간의 소망은 인간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Ⅳ. 유다의 왕들 (왕하 14, 16장)

 

1. 계속되는 불신앙

남 왕국의 왕 아마샤(9대)는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고, 아사랴(웃시야, 10대)는 나병환자가 되어 죽는 날까지 별궁에서 지냈으며, 요담(11대)에 이어 아하스(12대)가 왕이 되었으나 앗스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스스로 앗수르 왕의 신복임을 고하고 아람 왕과 이스라엘의 손에게 구하여 주기를 청하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예물로 바칩니다. 또한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그 곳의 단을 보고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매 제사장이 그대로 단을 만들어 여호와의 단을 옮기고 새 단을 여호아의 전에 두고 그 단에 제사를 드리고, 기타 제단의 기물들을 모두 옮기고 앗수르 왕을 위한 낭실을 여호와 전에 만들기 까지 합니다.

북 왕국의 계속되는 반역들은 자신이 왕이 되면 이전 왕보다 나을 것이라는 교만의 산물이며, 북과 남왕국의 계속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옳은 것으로 오해하는 어리석음입니다. 북 왕국과 남 왕국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것은 왕들 중에 나름 신실한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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