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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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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 역대하 8 ~ 16

. 왕들의 업적 (대하 8~9)

 

1. 부귀영화의 삶

사람들이 기억하는 솔로몬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건축자, 정치가, 지혜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부귀영화는 삶을 살아가는 상황, 조건, 방식일 뿐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재산의 다소, 신분의 고하, 자녀의 유무, 건강의 상태 등을 행복의 조건으로 여겨서 개선시켜준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노예로 생활할 때에는 불행하다가 가나안에서 자유인으로 생활할 때에는 행복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지리적 차원에서 가나안을 정복했지만 종교적 차원에서 가나안에 정복당했습니다. 정치적으로 가나안의 남아 있는 족속들을 솔로몬의 공사에 역군으로 삼아 지배했지만(8:7) 이스라엘은 계속하여 가나안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왔습니다. 한편으로 바로의 딸을 데려다 전을 건축하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다윗의 궁은 여호와의 궤가 이른 거룩한 곳이라 하며 머무르지 못하게 하는 것(8:11), 절기를 지키는 것(8:13), 제사장의 직무를 맡기는 것은 전형적인 이방적 종교를 연상하게 합니다(8:14,15).

 

2. 여왕의 관점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온 것은 건축과 지혜일뿐입니다(9:3). 스바 여왕이 어려운 질문으로 솔로몬을 시험한 것(9:1)은 하나님에 대한 것,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며 솔로몬이 다 대답한 것도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지혜를 자랑할 때 스바 여왕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9:8). 물론 여왕이 말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아니라 당시 정치와 종교가 합쳐진 시대에 나라를 다스리는 왕을 세운 신에 대한 경배일 뿐입니다. 특히 특히 당신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려고 당신을 세워 그들의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라고 정작 솔로몬이 고백해야 하는 말을 여왕이 합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의미는 사사시대에 사람들이 요구한 왕에 대하여 자신들이 기대했던 사울왕의 실패에 비하여 하나님이 세우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왕의 모습을 비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자 하나님이 여왕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3. 왕들의 실패

왕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택한 제도였습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두 실패자입니다. 사울은 백성의 마음에 합하여 왕이 되었기에 백성의 생각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신체적 조건과 전투 경험에 근거하여 전쟁에 이기기도 하고 패하기도 하였을 뿐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의 욕망을 채워주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도 못했습니다. 다윗은 백성들의 마음에 합하지 못했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백성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부국강병을 이루어 나라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그러나 다윗 또한 자신이 입지가 구축된 후에는 백성을 위한 왕이 아니라 자신의 왕권을 위한 조치들을 강화하여 하나님의 기대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덕분으로 견고한 나라를 이어받아 경제적 번성함과 문화적 풍요를 이루었으나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죄의 원리로 사용하여 백성들은 외화내빈의 삶을 살게 되었고 하나님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왕을 세웠으나 왕들은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실패했습니다.

 

4. 인간의 행복

성경은 사울, 다윗, 솔로몬의 세 왕 모두가 백성들의 기대와 하나님의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신체적 조건(), 다윗의 온유한 성품(), 솔로몬의 지혜() 등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도 백성들을 행복과 평안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모범적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불멸의 장수, 사무엘을 영성의 대가로 추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원리(율법) 외에 어느 누구도, 어떤 원리도, 어떤 방법도 추가될 것이 없습니다. 가나안이 정착한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이스라엘에게 평안, 행복(샬롬)이 없었습니다. 단지 평온’(3:30, 5:31, 8:28), ‘태평’(대하 20:30), ‘평안’(대하14:5, 6) 즉 다툼, 전쟁이 일시적으로 그친 것, 잠시의 휴식(15:15)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인간이 죄의 원리로 행하면 죄의 결과를 맞이하고, 하나님의 원리로 행하면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 왕국 분열 (대하 10~12)

 

1. 인간의 요구

솔로몬의 번성함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삶은 왕이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에 힘겨웠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백성들이 나와 요구한 것은 매우 간단하게 가볍게 하소서입니다(10:4).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할 때는 왕으로 자신들을 다스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삼상8:5). 그러나 지금은 왕의 다스림은 고사하고 고역과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수준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역을 힘들어하며 아우성치던 모습과 같습니다. 왕을 요구한 것이 얼마나 미련한 행동이었으며 결국은 하나님이 결과를 알려주신 대로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삼상8:17).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죄인의 한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고역과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가 응답된다고 삶이 평안할 리가 없습니다. 동일한 죄인인 왕이 백성의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고, 왕이 백성을 위해줄 리가 없고, 하나님의 원리가 아닌 이상 어떤 상황과 조건과 관계에 처할지라도 인간이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여전히 백성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2. 죄인의 마음

백성의 요구에 대해 원로들은 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10:7)라고, 젊은 신하들은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10:11)고 권고하고 결국 왕은 젊은 신하들의 말을 따릅니다. 백성, , 원로, 젊은 신하들 모두가 서로의 입장을 고수할 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의 시대에 왕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각자 자신의 생각과 기준대로 행동한 결과입니다. ‘온 이스라엘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아니함을 보고왕을 버립니다. 이스라엘은 인간들의 세력 경연장이요, 서로의 주장만이 있을 뿐이고 힘 있는 자의 세상이 되었고, 구별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였습니다.

 

3. 왕국의 실상

이스라엘의 분열에 대해 이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10:15, 11:4)고 합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나라를 팔아넘기거나(2:14) 분열시키지 않습니다. 모두 인간들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지만 이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기에 마치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처럼 표현하는 것입니다. 두 나라 중에 정통성이 있는 나라, 하나님의 뜻에 합한 나라,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나라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은 분열되고 민족 간에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성읍들을 견고하게 하고, 서로 경쟁하지만 남 유다가 북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할 때에 하나님이 막으시고 보호하십니다. 어느 나라가 강성하였는가, 어느 왕이 지혜로웠는가가 아니라 두 나라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목적은 왕국이 아니요 번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행복이다. 인류를 대상으로 하여 이스라엘을 견본으로 삼으셨기에 여러 상황과 환경을 간섭하셔서 때론 남 왕국을, 때론 북 왕국을 도우시며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언제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복에만 매달립니다. 하나님이 행하신기적과 역사는 수단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수단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부하니 당연히 이방 애굽의 왕 시삭의 침입이 있고 이스라엘은 큰 어려움을 겼습니다(12:1) 그러나 이때에도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신 후, ‘여호와께서 그들이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로 저들이 돌이키는 듯한 흉내만 내도 저들을 칭찬하시고 도우시고 축복하십니다.

 

. 아비야, 아사 (대하 13~16)

 

1. 아비야

죄의 종이 된 죄인이 죄를 이기지 못하는 한 죄의 마음과 죄의 행동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부족시대이건, 왕정시대이건, 분열시대이건 외형이 아무리 달라질지라도 목적과 수단과 과정과 방법과 결과가 뻔한 것입니다. 열왕기서는 남 왕국의 왕과 북 왕국의 왕을 순서적으로 등장시켰지만 역대기는 주로 남 왕국의 왕의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시대에 외부와의 전쟁보다 이스라엘 민족끼리 전쟁으로 더 많은 백성이 죽었던 것과 같이, 왕국이 분열되어 민족끼리 전쟁이 발생하여 남쪽은 용맹한 군사 40, 북쪽은 큰 용사 80만이 대진합니다. 아비야는 북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책망하고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그 결과 숫자적 열세였던 남 왕국이 승리하매 이는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13:15-18)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2. 아사

유다 3대왕 아사는 여호와 보시기에 선하고 정의를 행하여 산당을 없애고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합니다(14:2-5). 그 결과가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화를 주셨고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었습니다. 58만 군사가 있지만 구스 사람 세라가 침공하였을 때도 하나님께 간구하매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아사랴에게 말씀을 주어 아사를 가르치고 훈계하고 아사는 더더욱 순종하고 하나님은 그 사방에 평안을 주십니다. 아사의 행적은 아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은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음이니라’(15:9)고 기록하여 하나님이 아사와 함께 했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21:22), 이삭(26:28), 요셉(39:3), 사무엘(삼상3:19)과 함께 하신 것과 동일한 패턴입니다.

   은혜를 받은 아사는 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침략에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전 곳간의 은을 취하여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고 지원을 청하고, 하나님은 선견자 하나니를 보내 아사의 불신앙을 지적하고 그 결과로 많은 전쟁이 있을 것을 알리십니다(16). 이스라엘이 의지하려고 했던 아람이 이스라엘의 손에서 벗어나 도리어 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연약할 때는 자신에게 방법이 없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자신이 강건하여지면 자신에게 방법이 있기에 자신을 의지하려는 죄인의 한계가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은 먼저 은혜를 주십니다. 15:2, 16:8~9절 등은 표현과는 달리 조건이 압니다. 여호와는 늘 백성과 함께 계시기에 백성이 여호와를 찾으면 백성이 여호와와 함께 있는 것이 되며,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면 백성이 여호와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일 뿐입니다. 백성이 여호와를 의지하면 여호와의 도움의 은혜를 입는 것이고, 백성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능력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여호와는 인간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이 반응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인간이 반응하길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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