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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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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 에스겔 8 ~ 13

. 예배 or 멸시 (8~9)

 

1. 여호와에 의한

하나님이 창조를 통하여 모든 관계의 기준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관계성에는 사랑이 존재할 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인격적 존중을 바탕으로한 사귐이 있을 뿐 상대방을 예배, 경배하지 않습니다. 인간 상호간의 관계도 함께 행복을 누릴 뿐 다스림(지배)과 사모함(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숭배와 의지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배하지 않으며 인간은 하나님께 종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명령하지 않으며 인간은 하나님께 복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며 인간은 하나님께 굴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며 서로 사랑하는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의 발로이며 인간 사랑의 모습입니다. 인간이 여호와를 예배, 경배하는 것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 원리와 방식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위한어떤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에 의한인간의 삶입니다. 인간의 행동으로 여호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역으로 인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속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인간이 여호와의 복락을 누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2. 여호와의 영광

하나님은 창조 후에 인간에게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구약 성경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에 의하여 인간에게 나타났고 인간들은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신약 성경 특별히 복음서에서 하나님께서 치유와 이적을 행하셨을 때 백성들이 여호와께 영광을 돌렸다고 합니다. 즉 여호와의 영광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나타나는 행위인 것이다. 이사야(6), 에스겔(8:4)도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표현하지 자신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할 뿐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해 행한 어떠한 것도 자랑하거나 나타내는 것이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도 자신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한 목적으로만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예배 받고, 영광 받고 싶어하시는 어떠한 요구도 기대도 없습니다.

 

3. 여호와 멸시

죄인들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없고 하나님께 예배는커녕 은혜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반응조차도 보인 적이 없습니다. 달리 하나님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행동을 하는 것보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합당하게 응답하지 않는 것이 여호와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응답해야하는 것을 엉뚱하게 우상하게 행하는 것이 가증한 일, 악한 일’(8:6, 9, 13, 15, 17)입니다. 질투의 우상을 세우고(8:5),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모든 우상을 그리고 향을 피우고(8:10),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보지 아니하고 버리셨다고 말하고(8:12),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8:14), 약 이십 오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고 있습니다(8:16).

 

4. 죄인의 삶

우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상과 경쟁하지 않으시며,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금하시는 것은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의 미련하고 헛된 행동을 막아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인간에게 멸시받지 않으시며, 인간은 여호와를 멸시할 수 없으며, 다만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할 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원리대로 사는 것을 종교로 규정하지 않고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삶의 원리로 권고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미신적 종교행위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이 행하는 가증한 일, 헛된 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환상 가운데에서보고 있고(8:3, 5, 14, 16, 9:2) 이번에는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은 여섯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여호와가 이 땅을 버리셨고 보지 아니한다’(8:12)라고 하매 그 말대로 이루어 주시겠다는 선언이 9장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행한 대로 갚으시면,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면’(9:5, 10) 바로 이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잔인한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긍휼로 인간을 대하여주신 것입니다. 반면에 인간의 역사에는 이 예언보다 더 간악한 학살이 수차례 반복되었습니다. 죄의 잡힌 인간들의 악행의 결과입니다.

 

 

. 새 영, 부드러운 마음 (10~11)

 

1. 떠나는 영광

여호와의 전이 온갖 우상으로 뒤 덥혀 있기에 여호와의 영광(10:4, 18, 19)이 성전을 떠납니다(10:19). 이렇게 떠난 여호와의 영광이 새 예루살렘의 환상 속에 성전으로 돌아올 것입니다(43). 엄밀한 의미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다, 영광이 돌아온다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특정한 장소에 머물러 있거나 이러저리 이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의 행동에 근거하여 인간을 떠나거나 포기하는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만큼 인간의 삶에 신령한 영역이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초청할 만큼 거룩한 삶을 살아내지도 못할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측면에서 하나님을 떠날 뿐 하나님은 언제나 임마누엘이십니다. 다만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복을 상실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조치

백성이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11:3)하니 하나님은 칼이 임하게 하고 대신 성읍 가운데서 백성을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넘김으로 백성의 예상과는 다르게 행하셔서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11:3~10), ‘이 성읍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에 고기가 되지 아니할지라로 행하셔서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11:12)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조치는 특정 행위로 지정되지 않고 매우 다양하게 행해집니다. 특징은 죄인들의 사고(기대, 예상)와 다르다는 것이며, 목적은 하나님의 조치를 통하여 자신들의 생각과 말이 틀렸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됨을 봄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11:15)고 하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11:16)고 하십니다.

 

3. 한 마음, 새 영

성경 전체의 핵심은 인간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중에 유일하게 변한 것이 인간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새롭게 하실 것도 유일하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인이 된 것을 아시고, 죄인이 죄에 사로잡힌 것과 죄만 알고 행할 수 있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구약에 허다한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모든 것은 계시를 위한 수단적 사건일 뿐입니다. 구약의 결론은 죄인은 존재가 변하지 않고는 어떤 계시도 배울 수 없고, 어떤 은혜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인간을 변화시켜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죄하는 듯한 말씀, 돌아오라고 권면하는 듯한 말씀들의 참된 의미는 죄인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결국은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11:19)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실 때에야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가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시는 이유는 이미 하나님은 그들은 내 백성이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4. 여호와를 알라

세상의 교훈은 모두 인간이 행할 일을 강조하는 선동이고,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리는 선포이고,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사역을 통하여 힘써 여호와를 알라입니다. 여호와 신앙은 종교가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위한 사역을 행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백성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을 배워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으로 죄의 마음과 심정을 이김으로 본인이 하나님의 복락을 누리며 동시에 인간 상호간에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으로 행하여 서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기대하신 것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18:19)이며, 이사야의 예언에 의해 강림할 자가 와서 행할 것도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을 띠를 삼으리라’(11:5)입니다.

 

 

. 상징들 (12~13)

 

1. 상징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나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12:1)고 하신 하나님이 특별한 반응을 기대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열심히 다양한 계시 사역, 징조(12:6)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라’(12:3)고 하십니다. ‘호위하는 자와 부대들을 다 이방인 가운데로 흩음으로’(12:15), ‘이방인 가운데에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함으로’(12:16)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입니다. ‘인자야 너는 떨면서 네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네 물을 마시며’(12:18)의 상징적 행위로 사람이 거주하는 성읍들이 황폐하며 땅이 적막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12:20)입니다.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12:3)입니다.

 

2. 속담과 묵시

이스라엘에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12:22)는 속담이 파다하자 하나님은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12:23~24),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12:25)고 하십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그가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나 그가 멀리 있는 때에 대하여 예언하였다’(12:27)고 하기에 하나님은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아니할지니 내가 한 말이 이루어지리라’(12:28)고 하십니다.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13:2),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13:3),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그들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내가 말한 것이 아닌 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13:2~7)내가 너희를 치리라’(13:8, 9)를 통해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13:9)입니다.

 

3. 이미 주어진 계시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13:10, 16)고 백성을 미혹하는 회칠하는 자들’(13:11)을 무너지게 하심으로(13:14),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13:17)의 손에 백성이 사냥물이 되지 않게 하심으로(13:21), ‘다시는 허탄한 묵시를 보지 못하고 점복도 못하게’(13:23)하심으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입니다. 이미 인간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원리를 하나님이 충분하게 계시를 주셨기에 어떤 묵시, 점괘, 복술이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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