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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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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강 민수기 26 ~ 30

. 하나님의 은혜

 

1. 변하지 않는 은혜 (26)

하나님은 인간의 죄인 됨을 아시고 죄인을 치유하고 죄인의 삶을 행복의 삶으로 회복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하나님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의 죄된 행동에 영향 받아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변경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죄된 행동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보장, 새로운 공급, 새로운 확증 등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가르치십니다. 우상숭배로 인한 염병사건이후에(25)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인구조사를 명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참회하거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부해진 것이 아닙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인구조사를 통하여 저들의 갖은 배반과 죄로 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백성을 어떻게 지켜 오셨는가를 백성의 숫자를 통하여 확인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행동의 결과대로라면 이스라엘은 전멸되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숫자가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2. 이스라엘의 인구조사 1/ 603,550, 2/ 601,730(-1,820)

지파

인구증감

지파

인구증감

지파

인구증감

르우벤

46,000/43,730(-2,770)

잇사갈

54,400/64,300(+9,900)

베냐민

35,400/45,600(+10,200)

시므온

59,300/22,200(-37,100)

스불론

57,400/60,500(+3,100)

62,700/64,400(+1,700)

45,650/40,500(-5,150)

에브라임

40,500/32,500(-8,000)

아셀

41,500/53,400(+11,900)

유다

74,600/76,500(+1,900)

므낫세

32,200/52,700(+20,900)

납달리

53,400/45,400(-8,000)

 

3. 기업을 주소서 (27)

성경이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성경에 가부장적 내용이 담겨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원리가 아니라 죄인들의 원리입니다. 죄인들이 남성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는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원리를 적용하심으로 아무도 소외되고 억압받는 일이 없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아버지는 죽고 아들이 없어 기업이 사라지고 집안이 종족 중에서 삭제될 위기에 처했음을 호소하고 기업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다고 하시며 아들이 없으면 딸들이, 딸이 없으면 가의 형제에게, 형제도 없으면 아버지의 형제에게,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가강 가까운 친족에게 주도록 하십니다. 강자가 독식하는 죄의 원리, 뺏을 수 있으면 최대한 뺏는 죄의 원리, 상대의 불리함을 나의 유리함으로 악용하는 죄의 원리대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인정하고, 보존하여 주는 평화의 원리입니다.

 

4. 하나님의 책임

가나안 땅의 분배는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실시해도 전혀 늦지 않지만 하나님은 아직 가나안에 도착하지도 않은 시점에 이미 땅을 분배하여 주십니다. 땅의 분배는 가나안에 입장한다는 보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에 땅의 분배는 가나안 입성을 당연한 결과로 전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과 하나님의 원리에 대하여는 모든 것을 다 가르치셨기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백성들의 신뢰가 기대되는 시점에 백성들의 요구에 합당한 땅을 보장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땅의 분배에 사용된 방식은 제비뽑기입니다. 수가 많은 자에게 많은 기업을, 적은 자에게 적은 기업을 줄뿐 사람들이 관심 갖는 비옥한 땅과 척박한 땅, 물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나안땅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땅,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땅이기에 제비를 뽑아 어느 곳, 어느 장소가 뽑혀도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동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에 제비뽑기가 사용되는 이유는 어느 장소, 어느 인물이 뽑혀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비뽑기는 하나님이 적합한 사람(장소)을 뽑는다는 뽑기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책임지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 영이 머무는 자

 

1. 영이 머무는 자

이스라엘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계획을 세운 적이 없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한 사람을 세울 것을 중보하며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27:17)도 하나님의 목자 되심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말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충분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요구를 들어주시며 여호수아에 대해 친히 영이 머무는 자’(27:18)로 소개하며 세워주십니다. 여호수아가 영을 소유한 대단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며,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제사와 절기에 대하여 가르칠 것을 명하십니다. 즉 이스라엘은 사람목자에게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고 의지해야 하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 지도자, 책임자는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하나님은 죄인 중에 사람을 선발하지 않습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일을 행할 능력을 가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 스스로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하여 준비, 훈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을 주시지 않는 한 죄인이 하나님의 영을 소유할 수단과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에 초청되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의 수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우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의 개인적 성향, 자질, 특성, 능력을 일체 언급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 사람이 행한 업적을 높이지도 않고,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한 보상, 상급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도 준비된 사람이 아니며, 가나안에 입성할 때에 일체의 실수없이 오직 신실하게 하나님의 감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선택하고, 제사장들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는 등 일련의 과정은 오직 인간들의 기준에 맞추어진 것일 뿐입니다.

 

3. 절기 예물 (28, 29)

율법의 내용에는 유독 예물과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이미 레위기에서 절기와 제사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는데 민수기에서 또 다시 절기와 예물이 반복됩니다.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중요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 종교의 양식에는 다양한 예물법이 강조됩니다. 다소 복잡하고 섬세한 법칙을 통해 자신들의 종교를 보존하고 지속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도 마치 절기와 제사법을 준수하면 여호와 신앙이 잘 전수될 것처럼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이렇게 강조해도 죄인들이 종교 양식을 지키지 않으며, 이러한 종교법으로는 여호와 신앙을 이어갈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입니다.

 

4. 하나님께 서원 (30)

타 종교와는 달리 여호와 신앙에는 인간이 하나님께 자원하는 개념이 없습니다. 인간이 먼저 하나님께 나아오지도 않으며, 인간의 것 중에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에게 유익이 되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서원을 요청하거나, 서원의 자격과 조건과 기준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는 것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습니다. 단지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30:2) 즉 사람이 자의적으로 서원을 하였을 뿐입니다.

서원은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계획을 갖거나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려고 다짐하는 것으로 철저하게 본인이 본인의 일과 마음에 대하여 결정하는 것일 뿐 아닌 다른 사람을 제어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을 정하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본인이 결정하였어도 주변과 관련된 사항일 경우 주변에서 동의해주지 않으면 그 서원은 효력을 발생하지 못합니다. 일상보다 서원이 우선하지 못하고,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보다 개인의 서원이 우선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 광야 생활

 

1. 은혜받은 이스라엘

출애굽부터 가나안입성의 전 과정은 전적인 하나님의 계획이요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도전과 모험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자유와 안식과 행복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평화와 자유와 안식과 행복을 누리려면 이스라엘의 할 일이 많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할 일이 많습니다. 미래의 평화와 안식을 미끼로 당장에는 고난과 역경과 수고와 애씀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나의 노고의 대가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있을 때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을 통해 자유를 얻었고 애굽에서 알고 있던 죄적, 이방적, 우상적 인식체계와 다른 하나님의 인식체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분도 하나님,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도 하나님,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의 준비

시내산에서 십 개월을 머물면서 하나님은 성막이 세워지게 하셨습니다. 성막 위에 구름이 머물러 한 순간이라도 안 보이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시내산에 머무르는 동안 계속하여 만나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고 식량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풍성하게 공급하십니다. 식량과 고기와 물 등 모든 필요한 자원을 이스라엘 백성이 비축하여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적절하게 보급하여 주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은 한 순간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사는 동안 모두가 애굽의 법에 통제받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노예이었기에 정당한 대접을 받아 보지 못했고 자유민의 신분과 역할을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인간뿐만 아니라 신의 통제도 받지 않으며, 모두가 동등한 자유민으로서 인간의 행복을 유지하며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보장과 하나님의 원리(토라)를 배우고 가졌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머물기 위한 진영과 이동하기 위한 진영이 모두 갖추어 졌으며, 이동 중 성막을 담당하고 봉사할 책임과 역할과 순번도 모두 정하여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인의 봉헌을 통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확증되었기에 광야에서 잃어버림이나 버림받음이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받은 것입니다.

 

3. 광야생활

시내산을 출발하는 이스라엘은 갈 곳 없는 유랑민이 절대로 아닙니다. 비록 출애굽은 하였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한 상태가 아니라. 이미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어있던 가나안이 있고, 출애굽 때에 분명하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를 것이 확인되었습니다(3:8, 17, 13:5, 33:3, 20:24). 가나안은 전쟁을 통해 정복해야만 하는 막연한 소망의 땅이 아니라 들어가서 차지하면 되는 땅이기에 광야의 여정은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이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향해 나아가는 흥분되고 신나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평안과 행복가운데, 하나님을 모르면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광야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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