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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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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 출애굽기 11 ~ 15

. 하나님의 말씀대로 (11:1~11)

 

1. 알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역은 온전히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인간과 경쟁하거나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 사랑의 행위입니다. 출애굽을 위한 열 가지 이적(계시)은 은밀히, 기습적으로, 충동적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노동을 힘들어 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계획을 알리셨고, 애굽은 이적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미리 이적의 내용과 예방책을 알리셨습니다. 이적의 전개도 하나가 실패하여 다음 것이 추가되는 방식이 아니라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 내용까지 모두 알려주었습니다(4:23, 11:5). 그 동안 아홉 번에 걸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뜻이 명백하게 알려졌습니다.

 

2. 준비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은 구체적으로 조상들의 하나님을 찾거나 출애굽을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출애굽 계획도 선뜻 반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나 모세로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홉 번의 이적이 진행되는 동안에 이스라엘은 애굽과 구별되어 전적인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직 애굽에 머물러 있기에 여전히 애굽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열 번째 이적을 예고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패물을 구하게 하십니다(11:2). 앞으로 광야를 지나갈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요, 하나님께는 아무런 귀중함의 가치가 없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구하게 받게 하십니다. 지금은 왜, 어디에, 어떻게,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후에 성막의 물건들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인간의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준비하고 완성하십니다.

 

 

. 여호와의 절기 (12:1~13:16)

 

1. 새로운 시작

애굽과 이스라엘은 죄인이라는 차원에서 동일합니다. 열 번의 이적은 온 애굽 땅에 임하고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지역에도 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은 보호를 받았습니다. 열 번째 장자의 죽음 사건에서 이스라엘의 장자들도 죽었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사는 방법을 알려주셨기에 살 수 있었습니다(12:13). 피로 말미암아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산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죽은 자 같이 되었다가 새롭게 살게 된 것입니다. 애굽에서 애굽 사람과 동일한 가치와 방법과 원리로 살던 삶을 마감하고 이제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먹거리, 새로운 문화,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계시를 통해 밝혀진 대로 인간을 도우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가치,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원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구원하셨다

죄의 원리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열 번째 기적에서 살아남게 된 인간은 자신을 기준으로 나는 살았다, 나는 구원받았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죽음과 싸워 이긴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공로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나는 살았다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셨다(12:17) 고백해야 합니다. 후일에 자손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물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12:27)고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백을 유월절 절기의 양식에 내포해 주십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살아남았음을 기념하는 절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하셨음을 고백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다음 위험이 닥치는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원하셨음은 다음 위험에도 여전히 구원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3. 여호와의 절기, 여호와의 날

성경에서 하나님이 제정하는 첫 번째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업적이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는 날이기에 이스라엘의 절기가 아니라 여호와의 절기’(12:14)이며, ‘이스라엘의 생명의 날이 아니라 여호와의 날이며 이후로 여호와가 허락하시는 땅에 이르러 영원히 기억해야할 절기입니다. 훗날에 자녀들이 유월절에 대하여 질문할 때에 대답은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입니다(13:14).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목숨을 구한 축제의 날이 아니라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절망의 날이었기에 유월절을 지키는 방식은 거대한 축제로서가 아니라 가장 겸비한 모습으로입니다. 자신들의 수고가 없기에 자축할 명분이 없으며, 하나님은 대접받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기에 화려하고 성대하게 지키라고 명하시지 않습니다. 유월절에는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일체없음을 상징하기 위하여 조미되지 않은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며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백성

출애굽은 이스라엘 민족만으로 제한되지 않고 수많은 잡족’(12:38)이 포함됩니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만의 절기가 아니고 여호와의 절기이기에 이스라엘 민족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살 것을 고백하는 백성이면 모두 참여할 수 있습니다(12:44, 48). 이스라엘은 혈연적, 민족적, 국가적으로 구별되지 않고 하나님이 부르신 백성, 하나님을 배우고 고백하는 백성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고백하는 절기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외형적으로는 출애굽의 상징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새로운 삶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애굽에서 나오는 날이 유월절이고, 성막을 봉헌하고 광야의 삶을 출발하는 날이 유월절이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날이 유월절이고, 왕정시대 하나님의 도움으로 개혁이 시작되는 행사가 유월절이고, 복음서에서 예수로 인한 인간의 죄의 사유와 성도의 새 생활의 시작이 유월절입니다.

 

 

.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13:17~14:31)

 

1. 구름기둥, 불기둥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보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추며 안내하셨습니다(13:21). 이스라엘이 요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자원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임재를 모르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도착한 곳이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이스라엘이 광야에 갇혔다’(14;3)고 생각하고 뒤따라 올 것을 아시고 바로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14:4)고 알려주시지만 이스라엘은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하고 심지어는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14:12)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양하게 이스라엘을 배려하시는 하나님과, 직면한 문제로 말미암아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인의 모습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2.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그 동안 열 번의 기적이 있을 때 단 한 번도 대응을 못하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선 것을 알고 출동을 합니다. 장소가 육지에서 바다로 바뀌었기에 여호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바로와 애굽의 군대가 추적할지라도 이스라엘은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안전했고 갑자기 불안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면 기대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모르면 두려움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애굽의 군대가 아니라 자신들의 하나님에 대한 무지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4:13)고 선포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는 현장입니다.

 

3.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니

여호와의 구름기둥이 애굽과 이스라엘의 진 사이를 막고,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를 건넙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고 병거바퀴가 빠지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바다의 세력을 회복하사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십니다.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을 치는도다라고 이스라엘이 할 말을 대신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습니다(14:30, 31).

 

 

. 여호와께 노래하니 (15:1~21)

 

1. 여호와께 노래하니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라고 명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영광이며,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습니다(14:31).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시고, 일하시고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절대로 인간이 먼저 나설 수 없으며, 도전과 모험과 결단이 아닙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노래(15:1)할 수 있는 내용은 자신들이 보고, 체험한 것입니다. 의심하던 이스라엘, 불평하던 이스라엘, 원망하던 이스라엘을 찬양이 나오도록 변화시키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찬양은 은혜를 입은 자, 영광을 입은 자, 축복을 입은 자의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돌단을 쌓고 그곳의 이름을 지은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신앙은 인간의 충성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신앙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앞에서 두려워하며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14:10). 이스라엘이 불평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불신한다고 하나님의 영광이 축소되거나 권세가 약화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며, 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이 찬양한다고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해지거나 하나님의 권위가 강화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우상 종교는 인간이 신을 위한 행위인 반면 여호와 신앙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일하시고 인간이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로 인해 반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동으로 신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압제 하에서, 열 번의 이적 앞에서, 홍해 앞에서 무기력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매 순간 평안할 수 있고, 하나님을 모르면 매 순간 두려움뿐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으로 인한 나의 삶의 평안과 자유와 기쁨과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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