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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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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 레위기 23 ~ 27

. 여호와의 절기

 

1. 여호와의 절기 (23~25)

절기, 성일

날짜 및 기간

세 부 사 항 (규례)

안식일

매주 1(일곱째 날)

무슨 일이든 하지 말고 있는 곳에서 성회로 지킴

유월절

정월 14

7일간 무교병을 먹음, 첫날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모임, 노동을 금함

무교절

115-21

7일 동안 화제로 드림

초실절

117

보리의 첫 이삭 묶음을 지방 성소에 가지고 가서 수확 개시를 축하하는 것. 축제가 끝날 때까지 새로운 곡식을 먹을 수 없다.

오순절

(칠칠절)

첫 이삭 절기에서 7주후

밀 갈이를 마치고 저장한 것을 축하하는 제사

나팔절

71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날(안식일)로 노동을 금하고 화제를 드림

속죄일

710

스스로 괴롭게 하며 노동을 금하고 화제를 드림

초막절

(장막절)

715일부터 8일간

첫날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모이고 노동을 금함, 7일간 화제로 드림

안식년

7년째 해

칠년마다 휴경, 빚 면제, 일부 노예의 해방

희년

50년째 해

휴경, 토지()의 반환, 빚 면제, 노예 전면 해방

성경에는 등장하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절기가 아닌 이스라엘이 스스로 정한 절기로는 부림절이 있고, 성경과 무관하게 이스라엘이 자체적으로 성전의 회복을 기념하는 절기로는 수전절’(10:22)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수고를 기억하는 날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 인격,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복을 누렸기에 어떤 종교적 제도가 없었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모든 날을 의미하고 특별히 절기로 지키도록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성막, 제사, 절기 등은 모두 본질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이스라엘(죄인)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신 후에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다음 세대에 전승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제도가 필수요소임을 인정하신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유인일 때(창조)와 죄인일 때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약의 종교제도가 죄인일 때 주어졌다면 인간이 구원되어 죄인의 상태를 벗어날 때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계시와 구속) 사역을 진행하고 계시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의 과정에서 종교제도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구약의 종교제도는 죄인들의 원리와 방법의 무용성을 직접 경험하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핑계치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모두 여호와의 절기즉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하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을 고백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으면 하나님의 토라가 주어질 수 없고 토라가 실제적일 수 없는 것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으면 여호와의 절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고, 유월절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시작을 기억하고, 무교절을 통하여 광야에서 생명의 연장됨을 기억하고, 초실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억하고, 오순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기억하고, 나팔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안식케 하심을 기억하고, 속죄일을 통하여 자신들을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초막절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모든 물산과 손을 댄 일에 복 주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3. 은혜 받은 자만이 행할 수 있는 것

여호와의 절기의 특징은 조건이 아니라 결과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는 것이 수행의 방법이거나, 축복의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교제도가 조건이라면 하나님의 선택, 은혜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고, 은혜라는 개념이 없으면 감사와 찬송이라는 개념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인간을 축복하시는 행위가 전제되며,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은 자 만이,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자만이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감격을 모르면서 어찌 유월절을 지키며, 광야의 하나님의 공급을 모르면서 어찌 칠칠절을 지키며, 죄의 두려움과 죄사함의 행복을 모르면서 어찌 속죄일이 반가우며, 초막보다 나은 삶이 아니라면 어찌 초막집이 추억이 될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절기의 핵심은 절기를 지키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지킬 만한 절기의 의미를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4.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여호와의 절기에서 계속 반복되는 핵심 규정은 절기 기간 중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휴식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근원이 인간의 수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사람은 자신이 일한만큼 밖에는 얻을 것이 없고 일하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철저하게 인간의 행위에 근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소산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소산을 얻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토라에 대한 순종을 기대하시며 하나님이 다시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 언약입니다. 이미 주어진 은혜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입니다. 순종하면 은혜를 누리고 안식할 것이요 불순종하면 땅이 안식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미 결과는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상태에서 토라에 대한 순종이 강요되는 것이 아니며, 행여 불순종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상실되거나 취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자유와 선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하고 하나님은 언약을 폐하지 않으시고 그 약속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감사한 마음이 있고 절기를 기쁨으로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자손들은 자신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지 못하기에 절기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기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절기를 지키는 방식이 한편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교병과 쓴나물을 급히 먹고, 장막에 거하고입니다.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이 처했던 원래의 모습을 기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모습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 인간을 위한 절기 (26~27)

 

1. 차별이 없는 날

여호와의 절기는 여호와의 행하심이 강조되는 날입니다. 즉 여호와의 일하심이 강조될 뿐 인간의 수고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은혜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기에 절기에는 인간의 차별과 우열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들어낼 수 없고, 남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인정하는 자라면 이스라엘 사람도, 이방인도, 주인도, 종도 다 함께 여호와의 은혜와 복을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절기는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요구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인간이 행복을 누리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시지 않으면 인간들은 절기를 잊는 것뿐만 아니라 절기의 의미 즉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인한 인간의 행복, 어떤 인간적 차별도 없으므로 모두가 동등하게 여호와의 은혜를 누린다는 개념을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죄의 원리에 사로잡힐 때에는 하나님의 모든 의도는 무시된 채 귀찮은 종교적 행사로 전락해 버리고 말게 될 것입니다.

 

2. 안식년과 희년

안식일은 인간이 쉬는 날이고, 안식년은 땅이 쉬는 해입니다. 안식일에는 인간의 수고를 쉬게 함으로 인간의 삶이 인간 스스로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라면 안식년은 인간의 삶이 자연의 공급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임을 입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연 숭배나 농경을 위한 어떤 우상 숭배도 다 어리석은 것임을 고백케 하는 것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경고가 우상숭배의 금지로 연결되는 이유입니다.

희년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의 본질을 재정립하는 절기입니다. 희년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모든 채무를 변재해 주고, 종을 자유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기본관계인 하나님의 공급과 인간의 누림을 확립해주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동등한 은혜를 받아, 동등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입성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함을 얻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터전을 얻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삶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의 본토에서 민족이 형성되거나, 애굽에서 머물러 살게 되었다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대신 인간의 여러 유형의 기득권과 차별이 존재해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식년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 해를 농사를 짓지 말아야 하며, 희년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 해를 농사지울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여호와께서 제 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 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절기를 지키도록 준비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충분하게 공급하셔도 인간이 부족하게 느끼면 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명령이 아니라 인간을 설득하기 위한 헌신입니다.

 

 

. 인간의 기억과 하나님의 기억

 

1. 순종과 불순종

순종과 불순종에 관한 권고는 중립의 상태에서 선택사항을 제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은혜를 주셨기에 은혜를 받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상태를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면 주어진 은혜를 계속해서 누리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지 않으면 따로 또 재앙이 오지 않아도 이미 인간의 삶은 재앙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원리가 인간 행복의 원리인데 그 원리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인간 상호간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실행치 않고 죄의 원리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원리는 원리 자체에 인간의 갈등과 투쟁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선순환(善循環)되고, 죄는 악순환(惡循環)되는 것입니다.

 

2. 언약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인간 스스로 땅으로부터 버림받아 떠나게 되고 땅은 황폐함을 통해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대적의 땅에 거할 때에 내가 싫어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여 나의 그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열방의 목전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그들을 위해서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26:44-45)입니다. 이 여호와의 기억이 인간의 유일한 힘입니다. 언약을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 기억하시는 분도 하나님, 지키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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