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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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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강 창세기 10 ~ 12 장

 

Ⅰ. 인류의 역사

 

1. 동일한 존재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셨고, 인류가 다 같이 범죄하였고 모두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창조 때의 자유인에서 죄인으로 인간의 소속, 정체, 속성, 원리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인류가 죄인이라는 동일한 차원, 동일한 수준, 동일한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 중에 다른 사람과 구별될 수 있는 근거도 방법도 존재도 없습니다. 아담에서 셋, 에녹, 노아, 셈으로 이어지는 경건한 계열이나, 아담에서 가인, 라멕, 멸절당한 자들, 함으로 이어지는 불경건한 계열의 구분이란 없습니다. 홍수의 자멸에서 노아와 가족이 보존을 받은 것은 노아 일행의 거룩함이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인류를 멸절에서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 자격, 조건에 근거하여 반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은혜로 인간을 대해 주십니다.

 

2. 동일한 삶

홍수에서 유일하게 생명을 보존한 노아와 일행은 방주에서 나와 땅에서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노아와 일행은 홍수 이전과 비교하여 이후에 죄인으로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죄인에서 의인이 된 것도 아니고, 불경건한 계열에서 경건한 계열이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에서 살아난 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홍수 이전에 사람의 계획이 항상 악하고 행위가 부패하여 멸절당한 것과 같이 홍수 이후에도 사람의 계획과 행위가 동일하여 멸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죄인으로서 인류는 시대에 따라 더 악해진 것도 아니며 더 선해진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 맹세하신 대로 생명을 보존하고 계시기에 인류가 지속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의 멸절을 막아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인류의 존재와 지속과 보존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3. 대조되는 원리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었고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았고(범하였고) 두 형제들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고 보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아들들의 행동에 근거하여 함과 가나안에게는 저주를 퍼붓고 셈과 야벳에게는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노아의 치부를 들어내거나, 형제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은 차원과 수준과 원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근거하여 반응을 결정하는 노아를 통해 죄인의 원리와, 인간의 행동과 무관하게 오직 하나님의 속성에 근거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대조하여 주는 것입니다. 죄의 원리로는 인간이 불행하고, 하나님의 원리이어야 인간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Ⅱ. 인간의 전략

 

1. 가인의 자기 보호

인간은 죄인이 된 순간부터 신, 인간, 피조물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행했습니다. 아담은 신으로부터 도망하였고,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자신을 가렸으며, 가인과 아벨은 종교행위를 하였고, 상대방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죄인들의 자신을 보호하려는 수단이 상대를 파괴하는 죄의 악순환이 될 뿐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후 생명에 대한 위협을 느껴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구체적 전략으로 ‘성’(마을, 두려움)을 건설하였습니다(4:17). 그러나 가인은 성을 통해 보호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표를 주사 죽임을 면하게 하심으로 생존하였습니다. 가인이 성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홍수 사건이 일어났음으로 성은 인간의 보호 수단이 되지 못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인간 문제의 본질인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간이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2. 죄인의 자기 보호

홍수 이전과 이후의 죄인이 똑같습니다. 인류가 죄인이라는 동질성을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라고 표현했습니다(11:1). 같은 생각을 가졌기에 같은 대책을 세웠고 같이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인류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죄로 말미암은 하나였습니다. 홍수 이후에도 죄인은 삶에서 만나는 문제들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가인이 했던 것과 같이 ‘성’을 건설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위대해지고자 하는 바람으로 ‘탑’을 건설하였습니다(11:4). 흩어짐 즉 부서짐, 산산이 깨어짐, 괴롭힘을 면해보고자 가인은 개인의 성을, 인류는 인류의 성을 세운 것입니다. 홍수 후의 인간이 가인과 동일한 행동을 반복함으로 홍수 사건이 있었을지라도 죄인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동시에 이들의 자기 보호 수단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임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인간 문제의 본질이 죄임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성과 탑’을 건설하는 것 이외의 대책이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은 죄인들의 수고가 헛것임과 죄인들의 연합함이 결국 멸망을 자초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을 괘씸하게 여기지 않고 불쌍하게 여기십니다. 죄인들의 헛된 행동을 막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서로 언어가 다르게 함으로써 죄인들이 함께 악을 도모하는 것과 악의 관영함과 인류의 자멸에 이르는 것을 막아주시기 위한 은혜였습니다. 그 결과 노아의 후손들, 인간들은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10:5, 20, 31).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모두 인간을 도우시는 것이요,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요,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Ⅲ. 하나님의 구원

 

1. 새로운 은혜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의 은혜를 베푸셨고,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죄인이 된 후에도 이미 하나님이 베푸신 복 중에 단 하나도 철회하거나 소멸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죄인이 자멸하는 중에 생명을 보존하는 은혜를 베푸셨고, 보존된 죄인들이 또 다시 자멸의 길로 행하는 것을 막아주시는 은혜도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죄인인 이상 보존의 은혜는 죄를 막을 수 없고 죄인의 동일한 현상이 반복될 뿐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죄인들의 자기 보호 전략과는 전혀 다른, 죄인들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시기 위한 사역을 진행하십니다. 이미 노아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과 원리와 죄의 속성과 원리가 다름을 대조하여 보여주셨듯이, 죄인의 문제를 풀어가는 죄인들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을 대조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가 시작됩니다.

 

2. 계시의 은혜

하나님의 창조 중에 인간이 죄인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는 죄인을 변화시키는 것에 초점에 맞추어지게 됩니다. 죄인은 존재적으로 죄의 종이요, 내용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의 구원은 존재적으로 죄로부터 해방, 그리고 내용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계시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하나님을 알리실 때 사건(상황)을 사용하십니다. 죄인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전달될 수 없기에 사건(상황)에 대한 죄인들의 인식과 다른 하나님의 인식을 보여주심으로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앞으로 계시는 사람들이 불가능하게 여기는 사건, 인물, 방법을 통해 전개될 것입니다. 죄만 알아 죄만 행하고 있는 죄인이 하나님을 배우면 죄보다 더 좋은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죄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열매를 맺고 누리게 해 주십니다.

 

3.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자신을 위한 계획이 없으시고, 세상은 완성되었기에 세상을 위한 계획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오직 인간에 대한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계획이기에 하나님이 진행하시고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어떤 일이나 과업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시도할 수 없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도 없는 오직 하나님이 계획하고 진행하고 완성하는, 전적인 하나님의 책임 하에 있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죄인 중에 하나님께 계시를 구하는 자가 없어도, 하나님이 먼저, 은혜로 사역을 진행하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완성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실 것이며, 어느 세력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방해하거나 막아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배우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분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Ⅳ. 아브람을 부르심

 

1.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은 계시를 위하여 한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실 것이지만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한 사람을 선택해, 죄의 원리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대조하실 것입니다. 이때 선택된 사람, 인류의 샘플이 아브람이고 아브람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과 계시는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고, 아브람에 받는 은혜와 복도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주어질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아브람이 선택받은 이유는 없습니다. 강조는 선택받은 아브람이 아니라 죄인을 선택하신 하나님입니다. 인간 중에 선택받을 만한 어떤 자격, 조건, 근거, 이유를 갖춘 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계시를 진행하신다는 하나님의 사역이 중요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포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러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고 선포하십니다. 아브람에게 지시나 명령이 없이 하나님이 하실 일, 아브람에게 되어 질 일을 선포하십니다. 실제로 아브람의 생애에 아브람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나 과업을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고 일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민족, 복, 땅’의 세 가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시어 인간에게 주신 은혜였으나 인간이 죄인이 되어 상실한 것을 온전히 회복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유인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이 되었기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공급의 은혜로 사는 땅에서 인간의 수고로 생명을 유지하는 땅의 삶이 되었기에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류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어 복을 누리는 못하는 삶이 되었기에 하나님이 인간과 동행함으로 복을 누리는 삶이 되게 하시겠다는 선포입니다.

 

3. 아브람의 행동

아브람이 하나님을 향한 어떠한 행동도 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죄인으로서 자격과 조건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선택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초점이 ‘부름받은’ 아브람이 아니라 ‘부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부름 받고 선포도 들었는데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이동하고, 자신의 생명을 위해 아내를 주저없이 내어주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민족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자신의 아내를 지켜야 한다는 일말의 모습도 없습니다. 아브람이 선택받을 만한 특별한 믿음, 거룩, 의로움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바로로부터 사라를 구해주심으로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심을 증거해 주십니다. 아브람이 기근으로 말미암아 애굽으로 이동하였기에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바로에게 후대를 받아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게 하십니다. 행여라도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떠날 명분이 생기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보장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도와주시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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