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조회 수 60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 10 강 창세기 39 ~ 45 장

 

Ⅰ.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심 (창 39:1~23)

 

1. 어쩔 수 없는 인간, 어쩔 수 있으신 하나님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았고 형들의 시기에 의해 상인들에게 팔렸고 다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렸습니다. 인간(죄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하나님의 원리대로 행복하게 사는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삶을 역경으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의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는 세상의 원리, 죄의 원리, 죄인의 원리를 배울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계시뿐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계시 이외에 인간을 이용하여 하나님이 이루어야 하는 과업이 없기에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으십니다. 노예 된 신분의 요셉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존을 위해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애굽에 머물러 있는 요셉의 삶에 가장 반복되는 단어는 ‘요셉의 열심, 충성, 지혜, 용기, 인내’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입니다(39:3, 21, 23). 요셉의 주인은 요셉의 행동 대신 여호와의 일하심을 보았기에 요셉에게 은혜를 주었고 가정 총무로 삼고 직무를 맡겼습니다. 요셉의 충성의 결과로 보디발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신 결과였습니다.

 

2. 하나님의 기준

요셉은 비록 노예였으나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가정 총무였기에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유혹을 거절하면 부인에게 죽고 유혹에 넘어가면 장군에게 죽게 되는 진퇴양란의 위기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기준입니다.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39:9)하면서 부인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기준이 없는 죄인의 행동의 평가는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준이 되시면 행동에 이미 하나님의 결과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생사의 기로에서 그동안 자신을 도와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노예로 살면서 자신의 충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가 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후에 총리가 된 것을 성공으로 제시하거나, 순종에 대한 복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의 원리로 사는 것이 이미 하나님의 복락을 삶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선용

요셉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성경은 요셉의 삶을 드라마틱한 인생역전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장군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요셉의 행동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38장에서 유다와 다말의 행동이 자세히 기록된 것과 대조가 됩니다. 하나님이 억지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낸 것도 아니고, 일부러 감옥에 가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요셉이 겪는 다양한 환경에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요셉과 함께 하시고, 인자를 더하시고, 주변인들에게 은혜를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가나안 지역과 야곱의 가족에게 일어날 일을 아시기에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인간에 의하여 발생한 상황일지라도 헛되지 않고 선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요 은혜입니다.

 

 

Ⅱ.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보이심 (창 40:1~41:57)

 

1. 꿈꾸는 자?

요셉은 스스로 꿈을 꾼 적이 없고 부모와 형제들에게 절을 받을 비전을 품은 적도 없고, 자신이 꾼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역경을 견디며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도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꿈의 내용을 요셉에게 과업으로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진행하고 계십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십니다(40:5).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책임’이요, ‘하나님이 이루어내셔야 하는 일’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을 골라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친히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해석은 하나님께

꿈을 꾸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꿈을 해석하는 것이요, 꿈은 자신이 꾸는 것이 아니라 꾸어지는 것이기에 꿈의 해석 또한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주신 자에게서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꿈의 가장 잘 해석하는 방법은 그 꿈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주신 분의 속성, 마음, 뜻, 계획을 아는 것입니다. 요셉은 예전에 꿈을 꾸었었고 그 해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떠벌였다가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팔려왔습니다. 애굽에서 지내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꿈에 대하여 신중하고, 꿈의 해석에 대하여 하나님이 주셔야 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꿈이나 꿈의 해석이 아닌 하나님께 초점을 모아야 합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 바로 왕의 꿈에 대해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40:8), ‘하나님께서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41:16),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41:25)고 철저하게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3. 하나님의 사람

꿈 해석 후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41:38, 39)라는 평가와 함께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만약 애굽을 기근에서 건져주는 것만이 목적이거나 요셉이 총리가 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이런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인간이 죄인이 된 이후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하나 ‘죄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 이삭, 야곱에게 일하신 것처럼 요셉에게도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섭리하는 족장들의 삶을 통해 주변인들도(21:22, 26:28, 30:2, 39:3)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삶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 요셉은 자녀를 낳은 후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하나님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요셉은 꿈 해석을 통해 장차 애굽과 가나안에 임할 기근을 알게 되었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총리로 세웠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신 뜻에 맞게 애굽과 가나안의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해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본질적 목적인 하나님을 알리는 사역을 잘 감당할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께 받은 복은 총리가 된 것이나, 부자가 된 것이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둔 것이 아닙니다. 직분으로는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요셉보다 더 높은 바로 왕이 있고, 부유하거나 가정을 이룬 자는 애굽에도 많습니다. 요셉이 받은 복은 요셉이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기준을 알고 하나님의 원리를 적용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Ⅲ. 나의 나됨을 아는 것 (창 42:1~45:28)

 

1.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원리로 주관하십니다. 즉흥적이고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새로운 일하심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기도하면 그를 위해 풍년을 주고, 누가 불순종하면 그를 위해 태풍을 보내시는 분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으시듯, 자연과 역사를 의도적으로 뒤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는 것이나 상황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리기 위하여 기왕에 일어나는 일을 선용하시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애굽에 흉년과 풍년을 번갈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는 꿈을, 요셉에게는 해석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에 기근이 임했고, 하나님이 세우신 요셉의 덕에 기근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지혜

인간이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인간 즉 죄인을 알아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총리가 되었는데 자신의 형제들이 곡식을 사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정체를 밝히지 않고 여러 차례 형제들을 시험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지만 형제들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모르는 형제들에게 섣불리 요셉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요셉의 변화를 모르는 형제들에게 단순하게 정체를 밝히면 요셉을 두려워하고, 가나안에 있는 아버지나 형제들을 인질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 왔던 시므온이 인질로 잡히고, 요셉의 동생 베냐민이 애굽으로 와야 할 때 야곱은 처음에는 극렬히 반대했으나(42:36~38) 기근이 심하자 베냐민을 포기합니다(43:14). 죄인의 한계와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죄를 이길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배운 요셉은 형제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살려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3. 나의 나됨

형제들에게 자신의 동생과 가족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행한 후에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예상대로 요셉의 형제들이 두려워하자 요셉은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45:5~8)고 합니다. 분명히 형들에 의해 팔려왔지만 요셉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해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고생한 이야기나 죽을 뻔한 위험의 이야기, 자신이 얼마나 수고하고 애쓰고 힘들게 살았는가, 결국 얼마나 성공했는가를 말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자신됨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뿐입니다. 요셉의 삶은 다른 어떤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요셉은 인생에서 위치와 신분과 처지의 변화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느 위치, 어느 신분, 어떤 상황에서 살더라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원리를 적용하며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삶을 보여줍니다.

 

4. 인간의 인간됨

성경은 요셉이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된 영웅으로 만들지 않으며, 요셉의 고백을 특별히 칭찬하지 않습니다. 요셉의 태도나 자세를 본받아야할 모범으로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 하나님께 쓰임받은 수단을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모든 인간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요셉을 통해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요셉의 사건은 좁은 의미로는 야곱의 족속을 보전하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죄의 자멸에서부터 인간을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족속의 멸절을 막으시기 위해 한 사람 요셉을 예비하여 기근에서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시듯 인간의 죄로 인한 자멸을 막으시기 위해 한 사람 예수를 예비하여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에게 은혜를 베푸시듯, 애굽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구약은 죄인의 죄인 됨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기 위하여 언제나 인간 삶의 질곡 후에 하나님이 간섭하십니다. 인간이 세월의 경험이나 고난을 통해서도 결코 진리를 배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본분과 목적과 삶의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성경은 인간의 문제가 죄이고 죄의 해결을 통해 다양한 계시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