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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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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강 출애굽기 1 ~ 4 장

 

Ⅰ. 생육하고 번성하여 (출 1:1~22)

 

1. 민족들과 하나님

창세기부터 여호수아까지 이어지는 주제는 ‘인간의 문제는 죄이고, 인간이 죄를 이기고 행복을 누리는 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네 명의 족장들을 통해 하나님이 계시되었고, 출애굽기부터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 집단을 통해 하나님이 계시됩니다. 성경은 단지 개인이나 특정 민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체적 삶의 현장인 역사를 통해 인간의 실체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대로 이스라엘의 가족이 애굽에 정착하였고(창 46;3, 출 1:1)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일개 부족에서 민족으로 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이 선대하든,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일어나서 학대하든, 고역을 더욱 시키든, 산파를 통하여 죽이려고 계획하든 계속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창대해집니다(1:7, 12, 20).

 

2. 하나님의 역사

애굽이 특별히 악한 것이 아니며, 이스라엘이 특별히 선한 것이 아닙니다. 애굽의 바로는 죄인의 전형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죄인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알거나 신앙 교육을 전수할 수 없습니다. 요셉이후로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기에 이미 애굽에서 수백 년을 생활한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모르고, 히브리 산파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산파가 도착하기 전에 히브리 여인들이 이미 해산을 하게 하심으로 바로 왕의 명령을 어김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보존하게 하십니다. 자신(애굽)의 안위를 위해 타인(유아, 이스라엘)을 살해하는 죄의 원리와 대조하여 하나님은 생명을 보존하고 풍성하게 하십니다. 죄는 인간을 상대적으로 대하며 경쟁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인류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인간이 평화와 안식과 행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성경의 사건들을 통해 죄의 원리와 하나님의 원리가 대조됨을 보고, 하나님의 원리이어야 인간이 행복할 수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Ⅱ. 내가 하리라 (출 2:1~3:12)

 

1. 기억하시는 하나님

역사(歷史)는 말없이 흐릅니다. 마치 신의 계획도 신의 섭리도 없는 듯, 강자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한 사람이 장가들고 아이를 낳고 시대의 압박에 따라 자녀를 버리고, 누군가가 주워가고, 노예의 아들에서 왕자가 되기도 합니다. 장성한 모세는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살해하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책망하는 등 민족심을 보여줍니다(2:13). 그러나 같은 히브리 민족으로부터 책망 받고, 바로에 의해 살해위협을 받자 왕궁을 벗어나 도망가고, 광야에서 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여 애 낳고 양을 치며 살아갑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고된 노동으로 탄식하고 부르짖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고’(2:24), 이스라엘을 돌보십니다.

 

2. 찾아오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탄식하며 부르짖을 뿐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청원을 하지 않고,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인식도 없고, 출애굽을 위한 지도자 양성도 없고, 어떤 준비도 없습니다. 조상들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신 분도 하나님,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으로 갈 계획을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 이 모든 과정을 위해 준비와 진행을 하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사건을 감당하기에 필요한 인간의 준비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요, 모세의 왕궁 수업과 광야 생활이 필수적인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은 모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미디안에 살던 모세는 출애굽을 소망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3:2).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먼저, 친히 행하시는 분입니다. 모세를 찾아오셔서 자격도 능력도 헌신도 충성도 정직도 신실함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모세를 점검하거나 검증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요,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사람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합당한 사람, 준비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그냥 쓰십니다.

 

3. 내가 or 내가

떨기나무를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반가워한 것이 아니라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인간에게 떠넘기지 않으시기에 모세에게 출애굽을 홀로 감당하도록 명령하지 않으셨고, 모세에게 어떠한 과업도 숙제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조상의 하나님’임을 밝히시고(3: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계심을 알리시고(3:7), 친히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3:8)을 선언하십니다. 모세에게 과중한 책임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친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3:10)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리를 모르는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모세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니이까’를 묻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개념이 없고, 자신이 일해야 하는 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신이나 타종교의 신 중에 친히 인간을 위해 일하는 존재가 없습니다. 신이 수고해서 인간을 자유롭게, 존귀하게 해 주는 사례가 없습니다. 신은 언제나 지배하는 자, 명령하는 자, 영광을 받는 자로 존재해 왔습니다. 이런 이방적 신개념속에 살아온 모세가 ‘내가 일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Ⅲ.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 3:13~4:9)

 

1. 모세의 질문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 상태는 모세의 태도를 통해 확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있는 모세가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떨기나무에 불이 붙게 하시고, 들을 수 있도록 부르시고, 기억할 수 있도록 조상들의 하나님이심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에게 알리시지 않으시면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기뻐하지 않았고, 당장에 애굽으로 가겠다고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도 자신을 보내신 것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3:13)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애굽의 우상 종교에는 신이 먼저 인간을 찾아오는 것, 자격 없는 도망자를 찾아오는 것, 친히 신이 일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 배울 곳도 없었고, 배운 적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모세는 애굽적 사고방식, 종교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동일한 마음으로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를 질문합니다. 이것은 신의 이름을 물은 것이 아니라 신의 정체를 물은 것입니다. 당시의 신 개념에는 신은 계보(서열)가 있고, 각자의 영역이 있고, 담당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과연 모세에게 나타난 신은 누구인가를 물은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대답

하나님은 모세와의 대화중에 단 한마디의 책망도 없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나님의 정체성, 애굽의 신들과는 다른 존재임을 알리신다(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애굽(우상)의 신개념과는 달리, 신의 계보에 등장하는 ‘어떤 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느 지역, 어느 기능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너희 조상의 하나님’으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임을 알리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단 한 번도 조상의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출애굽을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약속을 기억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보셨고, 드디어 출애굽을 통해 약속을 성취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애굽 그리고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원리, 개념, 가치, 기준,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3. 설득하시는 하나님

모세는 여전히 백성들을 핑계 삼아 자신의 믿지 못하겠음을 드러냅니다(4:1). 하나님께서는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시고, 뱀이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심으로 ‘그들로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고 모세를 향한 확증을 보여주시고, 모세의 손을 품에 넣어 문둥병이 발하게 하시고 다시 온전하게 하시어 표징이 되게 해 주십니다. 모세의 불만을 다 받아주시며 모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출애굽이나 가나안 입성이 아닙니다. 아브람과 약속한 세 가지 사항은 죄인에게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죄인들은 믿지 못함을 책망하지 않고 더 많은 은혜와 계시 사건을 통해 기어코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동원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Ⅳ. 내 아들, 내 장자 (출 4:10~31)

 

1. 가서 말하라

하나님께서 모세하게 명하신 것은 ‘가라’(3:9), ‘말하라’(3:15, 18)뿐입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여호와의 나타나심과 말씀하심을 ‘말하고’, 그 다음엔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가서’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셨음과 여호와께 제사를 위해 출애굽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의 계보에도 없는 존재인 여호와가 자신에게 나타난 것과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 바로에게 출애굽을 요구하는 것 등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출애굽을 위한 무기도, 전략도, 지도자도, 병사도 없이 단지 ‘말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고 한 것은 출애굽이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임을 항변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4:12),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4:15)고 하십니다. 아론이 모세와 동행하는 것이 해법이 아닙니다. 아론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차원에서 준비가 더 잘되면,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지면, 조건이 조금 더 충족되면, 누군가가 도와주면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하실 일에 모세와 아론이 초청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행하실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2. 내 아들, 내 장자

마침내 더 이상 변명할 것이 없는 모세는 출애굽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들이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고 애굽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4:18),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애굽에 돌아가기를 두려워한 원인인 바로의 죽음을 알려주십니다. 또한 모세로 하여금 바로에게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4:22), 애굽에 대하여는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고 선언하게 하십니다. 바로가 스스로를 태양신의 아들로 자처하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 장자로 선언하시며 이제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과 장자를 지킬 것이고, 바로의 장자를 죽일 것이니 바로의 신들, 애굽의 신들이 바로의 아들들 즉 신의 아들을 지켜보라고 선언하십니다. 진짜 신은 자신의 아들과 장자를 지켜낼 것이고 거짓 신은 지켜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적은 재앙이 아니라 계시 사건이 될 것입니다. 열 가지 이적사건은 하나의 이적으로 불가하기에 추가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것이 의도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일하거나, 상황에 따라 불가항력적으로 사역을 행하시는 경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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