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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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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 출애굽기 16 ~ 19

.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15:22~27)

 

1. 하나님의 사역방식

출애굽을 기점으로 하나님의 사역 방식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계시 사역을 시작하실 때부터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등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을 먼저 말씀하시고 친히 행하시는 말씀(공지, 약속)-성취의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은 모두 이루어졌고(민족형성, 출애굽), 장차 이루어질 것입니다(가나안 입성). 인간(죄인)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반응(비웃음, 거부, 반대, 원망 등)을 모두 수용하시면서 계속하여 하나님을 알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애굽을 벗어나 광야로 들어선 순간부터 하나님이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하여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충분히 알리셨기에, 이제는 하나님을 알만한 상태라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운 자에게 하나님을 아는 반응을 기대하시기에 시험하신다’(15:25, 16:4, 17:2)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출애굽 전에는 애굽과 애굽의 신들을 상대하는 것이기에 주로 하나님의 권능이 계시되고, 홍해사건 후에 광야에 들어온 후에는 이스라엘과의 동행하는 것이기에 주로 하나님의 자비가 계시됩니다.

 

2. 인간의 요구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 창 3장 이후에 소개되었습니다. 죄인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죄인의 삶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12장부터 계시를 진행하셨습니다. 계시가 진행되는 동안 죄인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에게 계시나 치유, 회복을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이 되었음을 알지 못하기에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구하지도 않은 채 단지 죄의 결과인 두려움과 불안, 삶의 어려운 형편들을 피해갈 궁리만 할 뿐이었습니다. 광야에 들어서면서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지 않으시기에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가 등장합니다. 계시를 통해 인간 문제의 본질인 죄와 해결책인 하나님에 대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요구는 계시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도리어 자신들의 필요를 요구하고 하나님이 해결하면 하나님을 믿어줄 의향이 있는 것처럼 교만을 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인간의 변명, 핑계거리를 없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3.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이스라엘은 열 가지의 이적을 보았고, 홍해를 건너면서 애굽 군대가 수몰되는 것을 보았고, 이제 애굽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행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또한 장차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들어가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한 채 마라에 이르렀으나 써서 마실 수 없게 되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물이 쓰면 자신들이 다른 곳을 찾아볼 수도 있고, 우물을 파볼 수도 있고, 출애굽을 행하시고 가나안 입성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정중하게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당면한 문제 앞에 일말의 여유가 없습니다. 본질을 알지 못하기에 모든 문제에 절규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불평을 받아주시며 마라의 쓴 물을 고치시며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물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불신의 마음을 고치시는 것이다.

 

 

.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 (16:1~36)

 

1. 죄인의 어리석음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에는 음식에 대해 불평합니다. 애굽에서 경험한 여러 계시들에는 다양한 영역과 기능이 포함되어 있었고, 마라의 경험도 있기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일하심을 기다릴 만도 하지만 죄인에게는 절박함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해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온 회중을 주려 죽게 하는도다’(16:3) 등의 억지 주장을 합니다. 정작 애굽에서는 고된 노동으로 탄식하며 부르짖었는데, 광야에서는 애굽을 칭송하고 애꿎게 여호와를 원망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을 괴롭힌 애굽의 신들과 바로에게는 한마디도 못하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는 험한 비난을 가하는 것이 전형적인 죄인들의 술수입니다.

 

2. 이것이 무엇이냐

원망하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반응은 원망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망하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고 인간의 원망거리, 불평거리를 해결하심으로 아예 원망이 없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저녁에는 메추라기, 아침에는 떡으로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일용할 것을 거두게 하시고 이 일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음을 알게 하시고,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아마 백성은 소정의 식량을 기대했겠지만 하나님은 이후 40년간 양식인 만나를 주십니다. 언제나 인간의 기대를 넘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줄 알아야 합니다. 백성들은 만나를 보고 이것이 무엇이냐고 말합니다. 만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인간은 이것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이분이 누구이신가를 궁금해 하고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3. 여호와께 안식일

하나님은 먹을 만큼만나를 거두라고 하십니다. 일정량을 제한함이 아니라 또, 매일 주실 것이므로 인간이 저정하고 보관하는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입니다.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해주십니다. 성경의 절기는 언제나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인간은 행한 일이 없기에 자축할 수 없고, 하나님이 행하셨지만 어떠한 예물도 요구하지 않으시기에 성대한 축제를 벌일 수도 없습니다. 안식일은 여호와의 안식일입니다. 식량을 위해 일한 것이 없는 백성에게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일용할 양식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자신들의 거두는 수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시키는 방식입니다. 일은 죄인에게는 생산의 수단이요, 성도에게는 누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백성들은 음식을 남겨서 썩게 하고, 안식일에 나가서 헛걸음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불평과 헛된 수고를 하게 되고, 하나님을 알면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여호와 닛시 (17:1~18:27)

 

1. 여호와와 다투는 백성

여전히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마라에서의 불평, 신광야에서의 원망을 넘어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께 대하여 명령합니다. 계속 하나님을 따라 갈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17:2). 모세는 당황하지만 하나님은 일체의 불평없이, 책망없이 저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십니다. 백성들의 시험을 받으며, 백성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하나님이 수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적 권위로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고 좋으신 하나님, 인간을 위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받으시려고 애쓰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인간이 행복한 것을 알게 하십니다.

 

2. 이스라엘을 위해 다투시는 하나님

광야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계시가 진행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과정에서 애굽과 직접적인 충돌이나 대결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싸울 때에 하나님은 애굽 때와는 다르게 모세는 산에, 여호수아는 전쟁터에 나가게 하셔서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방식에 제한 받지 않으심을 보여주십니다. 모세가 손을 들은 것이 핵심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 핵심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움직이고 조종하고 동원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 외에 단지 개인적 목적을 이루어주기 위한 어떤 응답도 없습니다. 여호와가 행하셨기에 모세나 여호수아가 사역의 대가로 상을 받는 것이 없습니다. 모세는 전투에서의 승리가 여호와의 은혜임을 알고 여호와 닛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3.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제도

하나님은 인간제도를 세우시는 분이 아니며,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도 지도자나 리더로서 민족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며, 천부장 제도도 통치나 지배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드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제도가 등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원리를 잘 몰라서 발생하는 분쟁을 판단하기 위해서일 뿐이고, 하나님의 해결책은 더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리를 정확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19:1~25)

 

1.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출애굽 후 삼 개월이 되던 날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아브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하여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변의 나라들과 비교하여 이스라엘이 선택을 받고, 특혜를 받을 만한 아무런 업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자격이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19:5)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이스라엘만 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계시를 행하셨고, 이스라엘은 계시를 위한 샘플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배타적행위가 아니라 도리어 배려적행위입니다.

 

2.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19:6)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이스라엘의 역할 등은 모두 하나님이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 준수여부에 따른 조건적 사항이 아니라(19;5) 이미 아브람을 부르실 때부터 약속되고, 계속하여 선포되고(3:17), 출애굽의 전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입니다. 제사장 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유일한 나라, 가장 우월한 나라가 아니라 모든 나라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와 같게 하는 중재자, 연결자, 안내자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이 자발적으로, 주도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라는 역할을 의식적으로 행할 것이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배타적 선민의식이 없다가 후기에 유대교에서 변질되게 됩니다.

 

 

 

3. 수단이 아니라 수혜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을 수단과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하여 행할 일이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도리어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일하심, 여호와의 임재, 여호와의 영광을 이스라엘이 보는 것입니다(16:7, 10, 19:1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샘플이 되어, 하나님이 모든 인류에게 주시는 은혜를 가장 먼저 체험하는 존귀를 받은 것입니다. 자신이 행한 것이 없이 은혜를 받았기에 하나님께는 감사함을 고백하고, 타인을 향하여는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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