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조회 수 67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6 강 민수기 31 ~ 36

. 전쟁과 땅 (31~32)

 

1. 사람의 전쟁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저주를 계획하였던 미디안을 향하여 이스라엘의 원수’(31:2)라 명하시고 정복하게 하시어 이스라엘은 군사를 동원하여 미디안의 다섯 왕과 브올의 아들 발람을 죽이고 엄청난 재화를 획득합니다. 이 전쟁은 가나안 입성 직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제 광야의 여정이 끝나고 가나안에서의 삶이 시작될 것이므로 그곳에서의 삶을 살기위한 준비작업인 셈입니다. 그 동안은 전쟁을 치르지 않았고, 전쟁 중에서 재물을 몰수하지 않았었지만 이번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물심양면의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사실 진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얻는 전리품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훨씬 소중하고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쟁에서는 이기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일에는 졌습니다. 브올에서 바알에게 이스라엘을 부속시켜 이스라엘로 하여금 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 미디안 여자들을 남김으로(31:15, 16) 아직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원리를 알지 못하고 죄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 세대와 동일하게 이 세대도 죄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가나안 정복의 상황과 가나안 입성의 삶을 이미 예상할 수 있게 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은 정작 가장 중요한 신앙의 싸움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싸움

하나님은 전쟁을 좋아하시는 분도 아니요, 전쟁을 통해야만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의 삶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가르치시는 것일 뿐입니다. 이번 전쟁은 완벽한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제사장 비느하스가 선봉에 섰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나팔을 들고 나갔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단 한사람도 축이 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의 승패가 아니라 모든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땅 분배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가나안 땅의 우상의 훼파와 가나안 거민의 진멸입니다. 미디안 정복 시에 행한 것처럼 불순종하면 반드시 남은 거민이 화근이 되어 이스라엘의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되어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될 것을 알리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죄가 되고,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 낼 줄 알라’(32:23)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의 독선이 아니며, 위협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권고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가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요단강 동편

이스라엘 지파 중 르우벤, , 므낫세(1/2) 지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아닌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동쪽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 후 가축에 적당한 곳인 줄로 여겨 남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아마도 자신들의 생각에 예전 정탐 때 보았던 가나안의 장대한 부족들을 대하기가 두렵기도 하고, 동편은 이미 정복한 땅이기에 안전하고 빨리 정착할 수 있고, 가축들을 통해 번성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단 강 동편에 남아있는 지파들은 가장 미련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온 백성이 가나안에 입성하여 정복하고 있는 기간 동안 이 지파들의 가족들은 일행들과 떨어져 불안한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또한 삶의 행복은 가축의 번성함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느냐에 달려있기에 하나님을 떠난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들은 애굽에서도 살았고, 광야에서도 살았고, 노예로도 살았고 유랑민으로도 살았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안과 자유와 행복이요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려지는 것인데 이들은 가축에 적당한 곳을 고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이 끝날 때까지 동행한 후 돌아오기로 약속하여 수 22장에서 귀향합니다.

 

4. 하나님의 자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은 단 한명도 빠짐없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 외에는 단 한명도 섞여서는 안 된다고 제한하지도 않았습니다. 광야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단 한명도 애굽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광야를 불편해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할 때에 계속하여 더 큰 은혜를 주심으로 애굽보다 하나님을 의지함이 더 유익함을 알게 하셨을 뿐입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대신 요단강 동편에 살기를 선택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반드시 가나안에 들어가서, 오직 가나안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후로 단 한 번도 인간의 행동을 제한, 통제,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판단, 선택, 결정을 인정하고 수용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인간의 의지가 꺾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절대로 힘과 권세로 인간을 통제하지 않으십니다. 광야생활 내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요단 동편의 세 지파도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사랑은 철저하게 인간을 존중하며, 인간을 위해서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배려 (33~36)

 

1. 고생길 or 여행길

광야를 어떻게 지냈느냐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에 달려있었습니다. 조상 아브라함부터 약속되었고, 출애굽을 통해 확인되고 재천명되었고, 광야 기간 내내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을 선언했기에 하나님을 알았다면 매 순간 즐거운 여행이었을 것이요, 하나님을 모르면 날마다 불안과 두려움의 고행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행하시는 분으로 백성들이 구하기 전에 먼저 백성들의 필요를 모두 채워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께 떼를 써서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을 얻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이방인과 교류하여 더 좋은 것을 얻은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결국에는 화근이 될 것을 얻었을 뿐입니다.

 

2.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개요

출애굽 기준일자

숙영지 및 주요사건

11.14(12:6)

유월절

11.15(12:51)

출애굽(라암셋), 홍해건넘, 마라, 엘림, 신광야, 백성들의 원망

12.15(16:1)

메추라기와 만나, 르비딤, 아멜렉과 전쟁, 이드로의 내방

13.(19:1)

시내 산에서 십계명, 40일간 산에 머무름(율법, 금송아지)

21.1(40:17)

성막건설. 헌물드림(7:1~83)

21.14(9:3)

유월절

22.1(1;1)

인구조사

22.14(9:11)

늦은 유월절

22.20(10:11)

시내출발, 가데스 바네아, 백성의 반역, 고라 반역, 38년 방황

401(20:1)

가데스 바네아, 미리암 죽음, 므리바의 물, 에돔인의 거절

405.1(33:38)

아론 즉음, 가나안 격파, 불뱀, 발람의 예언, 모압에서 인구조사

4011(1:3, 34;5)

모세 죽음

411.10(4:19)

준비(3:2), 요단강 도하, 길갈 돌단

411.14(5:10)

유월절,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은 후 만나가 중단됨

 

3. 레위인

광야에서 성막 주위에 머물렀던 레위인은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전역에 고루 퍼져 머물게 됩니다. 각 지파에서 분할할 영역마다 레위인의 성읍을 할당하도록 하여 전 민족 가운데 레위인 즉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머물게 함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경배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도록 배려하십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 신앙의 척도로서 하나님을 인정하면 백성과 레위인이 함께 은혜를 누리게 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이 레위인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인을 하나님을 섬기는 지파로 특별대접하며 이스라엘의 신앙과 별도로 생존을 보장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이 레위인의 신실함과 거룩함에 의존하도록 하신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레위인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레위인이 이스라엘에게 영향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레위인이 특별한 직분을 가졌다면 명분으로 백성가운데 권세를 부릴 수 없으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이 책임지십니다.

 

4. 도피성

도피성은 하나님께서 이중 삼중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지은 자는 제사를 통하여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간에 죄를 지었을 경우 하나님처럼 사람 간에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이미 아시고 도피성을 마련하여 보복으로부터 피할 길을 주십니다. 또한 의도적이지 않은 범죄에 대하여 대제사장 죽은 후에는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35:28) 함으로 삶을 회복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행여 금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질서가 파괴되지 않도록 장치를 세우셨고(35:32), 각 지역별로 하나님의 질서가 변질되지 않도록 지역 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이 죽는 것으로 사면의 방법을 통일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함을(35:33-34) 거듭 강조하심으로 하나님의 책임을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5. 아론의 죽음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죽습니다(20:29, 33:38). 그리고 열한째 달에 모세가 신명기 강론을 마치고 죽습니다(1:3, 34:5). 하나님의 사역에서 인간 지도자가 세워지거나 죽는 것은 영향이 없습니다. 모세나 아론 때문에 출애굽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며,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동일하게 모세나 아론이 있어야 가나안 입성이 가능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광야 사십 년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일치단결하거나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합된 것이 아닙니다. 광야 내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고, 가나안 문턱에서 세 지파는 이스라엘과 분리를 선택했으며, 이스라엘의 대표격인 아론과 모세는 죽습니다. 이스라엘과 관련된 사역은 모두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의 사역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일하신 분, 수고하신 분, 헌신하신 분, 충성하신 분, 열심을 내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미지의 길을 간 것이 아니며, 모험의 길을 간 것이 아니며, 좁은 길이나 가시 밭 길을 간 것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빨리 갈 수 있는 것을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징계하사 오래 동안, 힘들고 어렵게 고생하게 가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연단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시험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극복하기 위하여 각양의 노력을 한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가운데 생존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며 헌신한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불순종에도 하나님은 계속하여 은혜와 계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