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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5] ‘하나님의 형상대로’
Ⅰ. 하나님의 배려
1. 창조론, 진화론
기독교가 혹시 비난을 받는다면 절대로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잘못 말하신 적이 없고, 하나님이 잘못 행동하신 적이 없고,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내용 중에 인간에게 안 좋은 것, 불편한 것, 부담스러운 것은 일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모습을 잘 보고 배워서 하나님이 하신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이론, 두 가지 주장, 창조론과 진화론이 있습니다.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질문을 해 보면, 두 이론 모두 다 객관적 증명이나 과학적 입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느 하나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라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설명과 어떤 물질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설명 중에 어느 것이 좋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주장이 훨씬 품격이 있고 가치가 있고, 존중이 담겨있는 것 같은데 허다한 사람들이 창조론을 거부하고 도리어 진화론을 따라갑니다. 진화론이 더욱 설득력있고 친근하기 때문이 아니라 창조론을 따랐을 때의 불편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 하나님의 배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어떤 피조물도 특별하거나 탁월하거나 우월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서로 경쟁하거나 우열을 다투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조화하고 연합하고 각각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화목하고 풍성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어떤 피조물의 특정한 힘에 지배당할 이유가 없으며 동시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느 장소나 어느 시간, 어느 것을 신성화하지 않았기에 인간이 어떤 특정 지역의 영향력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되고, 특정한 시간이나 물건의 신령한 기운의 도움이나 제한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상 종교, 이방 종교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선적, 이기적 조치가 아니라 인간에게 어리석은 일, 쓸데없는 일, 무익한 일, 헛된 일을 하지 않게 하려는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정말 하나님이 걱정하셨던 우상 숭배가 등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의 하나에 불과한 하늘이나 달이나 별 등을 섬기는 것입니다(신17:3, 왕하17:16, 렘7:18 등). 창세기에 ‘일월성신을 섬기지 말라’는 금기 조항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시는 분, 베풀어 주시는 것이지 결코 무엇을 제한하고 금지하고 통제하는 분이 아닙니다. 애초에 피조물 어디에도, 일월성신에도 구별하여 섬길만한 특성을 부여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섬기지 말라’고 금지할 이유도 없습니다. 창조 기사 어디에도 인간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말씀이나 사역이나 조치가 없습니다. 창조이야기의 핵심은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Ⅱ. 하나님의 형상대로
1. 하나님의 계시
사람들은 성경에 인간 창조에 대해 자세한 내용, 풍성한 내용, 디테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인간이 궁금해 하는 것, 인간이 알고 싶은 것을 모두 해소해 줄 수 있는 명쾌한 설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세상에서는 우주, 지구, 인간의 기원과 관련하여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 이론을 주장하고, 나름의 근거를 제공하고, 이에 관련된 논문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내 놓았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더 설득력있는 이론을 주장하기 위해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창세기에 불과 몇 절 기록된 것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에 아연실색하며, 학문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연구의 근본도 없는 단순히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말 그대로 ‘주장’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고 폄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창조에 대하여, 세상의 기원, 인간의 시작, 우주의 원리 등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합니다. 그것들 중에 많은 것들은 사람들이 연구해서, 조사해서, 다양한 수단과 방법과 각각의 시도와 절차와 과정을 통해 알아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알아 낼 수 있는 것을 굳이 하나님이 성경에 다 기록해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대신 인간이 알아야 할 내용인데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은 하나님이 알려 주셔야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장 중요한 것, 가장 본질적인 것, 가장 핵심적인 것, 가장 결정적인 것을 계시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성경이 알려주는 내용은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학문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학문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해 낼 수는 없습니다. 인간도 알 수 있는 것을 굳이 하나님이 구구절절이 소개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시는 것이고, 대신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은 친히 하나님이 선포로, 계시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창조에 관한 기사가 빈약한 것이 하나님이 선택과 집중을 아주 현명하게 잘 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아주 지혜롭게 분별해 놓으신 것입니다.
2. 같은 용어, 다른 의미
창1:27~28절에서 인간에 대해 성경이 알려주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의사들이나 학자들에게 물어보시면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대신 인간은 누가 창조했나, 인간의 모델, 인간의 원형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성경이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인간의 모델, 인간의 원형은 하나님이시라고 대답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대답에 세상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무식하거나 무례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을 만드실 때에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내용, 오직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만 나오는데 내용이 26절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와 27절의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입니다. 일상에서 낯선 단어나 표현이 나오면 궁금해 하고 질문하기에 오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신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던 단어나 표현이 성경에 나오면 궁금해 하거나 질문하지 않고 평상시 알고 이해하고 활동하던 방식으로 대하기에 오해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사용하던 단어와 성경에 나오는 단어가 같은 단어이지만 의미, 개념, 내용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죄인’입니다. 세상에서도 기독교에서도 아주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요 똑같은 ‘죄인’이라는 용어이지만 내용, 의미, 개념은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에서 ‘죄인’은 법을 어긴 사람이지만 기독교에서 ‘죄인’은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죄인이 나쁜 사람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죄인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죄인을 잡으러 오지만 기독교에서는 죄인을 찾으러 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죄인에게 ‘형벌’이 주어지지만 기독교에서는 죄인에게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3. 자기 형상
성경의 줄거리가 첫째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이 타락하였다는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것이고, 넷째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온전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때 동일한 내용, 의미, 개념에 대해서 구약과 신약이 서로 다른 용어,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고 표현하는 것을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영을 주어 창조하셨다’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이 타락한 것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상실하였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내용을‘새 영, 새 마음을 주신다는 것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주신다’교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