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9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예배날짜 2025-08-24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OMq3J5x2N-M

 

 

 

 

 

 

[창세기 강해 8] ‘일곱째 날에

 

. 일곱째 날에

 

1. 복되게 하사

육일동안 창조의 계획된 일들이 다 진행되었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졌고,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일곱째 날과 관련하여 특별한 내용이 나오는데 첫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대하는 자세, 하나님이 모든 생물과 인간에게 하시는 말씀의 성격이 입니다(1:22, 28).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다음에 복의 내용’, 앞으로, 장차 이런 복을 주겠다, 저런 복을 주겠다는 구체적인 항목이 소개되어야 하는데 본문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세상의 차이로서, 세상은 먼저 주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에게나 주지 않고, 공짜로 주지 않기 때문 즉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복을 준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네가 수고하면 수고에 상응하는 몫을 주겠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는 이제, 앞으로, 장차, 미래에 복을 주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복을 주셨습니다. 생물들이나 인간이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과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것과 생육하고 번성하고 창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에 특정한 복에 대한 내용이 없는 이유는 이미 모든 복을 다 주었기에 따로, 추가로, 더 주실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복을 주셨고, 이미 복 주신 내용이 실제로 작용하도록, 구체적인 열매와 결실이 드러나도록 책임을 지시는 분입니다. ‘전적으로 내가 보장한다, 모든 것을 다 책임진다, 내가 말한 모든 것, 내가 행동한 모든 것, 내가 베풀어 준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예정된 결과에 나타도록 주관하고 성실하게 나의 역할을 다 할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2. 하나님이

기독교는 을 강조하는 종교이고, 기독교가 전하는 내용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복을 기원하는 종교, 복을 기대하는 종교, 복을 기다리는 종교가 아닙니다. 복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복을 주시고 시작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복을 주시기에 그 원리를 은혜라고 표현하고, 기독교에는 이렇게 하면 복을 받는다는 복을 받는 수단과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은혜와 인간이 수고와 노력을 통해 얻어내려고 하는 수단은 기독교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면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만약 인간에게 수단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독교의 표현 방법, 하나님의 표현 방법이 아주 독특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리가 세상에는 없는 패턴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에 대해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 주도권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선택받을 수 있는 자격, 조건, 능력, 인성, 경험, 준비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결코 그 사람의 장점에 대해 결코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까?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백성이 되려면 무슨 준비,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선포,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11:45)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보탬이 될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마음을 먹으셨고,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는 수고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이 결정하고,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권위를 강조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독선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너는 내 것이라고 선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겠다, 보장하겠다,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약속, 맹세하는 것입니다.

 

3. 일곱째 날에

일곱째 날과 관련하여 둘째, ‘거룩하게 하셨으니입니다. 날에 대해서 특정한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창1장뿐으로 첫째 날, 일곱째 날이라고 부르는데 특별한 이름, 명칭을 부여한 것은 아니고 단지 하루가 지나간다는 설명을 한 것입니다. 첫째 날부터 각각의 날에 각각의 창조가 이루어지고 여섯째 날에 창조가 완성되었기에 일곱째 날은 그 이전의 여섯 날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사는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따로, 특별히 일곱째 날만을 거룩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거룩하게 즉 구별되는 것입니다. 일곱째 날은 창조와 관련하여 모든 것이 완성된 날, 하나님이 하시던 모든 일을 마치신 날, 그리고 안식하신 날입니다. 그리고 여덟째 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시 첫째 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가 완성된 일곱째 날이 계속, ,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곱째 날 하루가 아니라 창조가 완성된 모든 날을 복되게 하신 것이고,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진 모든 날을 거룩하게 하신 것이고, 하나님이 모든 날을 주관하시고, 모든 날을 책임지시고, 모든 날을 즐거워하시고, 모든 날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 것하루가 아니라 창조된 세상, 완성된 세상, 시작된 역사의 모든 것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 안식일

 

1. 안식일은 쉼이 아니다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는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 새 날, 인간의 첫째 날이 일곱째 날입니다. 창조가 이루어진 세상에서 눈 뜬 날, 천지와 만물이 다 완성된 세상에서 살게 된 날이 바로 일곱째 날입니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쉼과 안식, 재충전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준비하신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곳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날을 안식일로 정하시고, 안식일과 관련된 규정을 주신 적도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만끽하며, 행복을 누리며 즐겁고 신나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안식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일주일이라는 형식자체도 없었고,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창조에 근거해서 7일 주기로 생활했다는 흔적이 없습니다.

원래 없던 안식일을 하나님이 광야에서 제정하신 이유는 일곱째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일주일 중에 하루라도 인간을 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최소한 그날만은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만약 6일 동안 인간이 삶의 노동에 시달려서 심신이 지치고 피곤해서 안식을 주고 재충전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가 아니라 애굽에 있을 때 즉 백성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이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식일을 제정하실 때에는 애굽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노동에 대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안식일을 제정한 시기 또는 장소가 광야입니다. 단순하게 장소만을 기준으로 하면 광야는 생활하기에 매우 힘이 듭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차원이 다릅니다. 얼마 전까지 애굽에서 심한 노동에 시달렸지만 애굽에서 나와 아무 일도, 어떤 노동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일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그들에게 요구되는 노동량, 노동과업이 없고 감독자도 없습니다. 백성들의 인생에서 가장 편안할 때이기에 어느 누구도 힘들다, 지친다, 피곤하다고 투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쉬라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재충전하고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일, 수고로 살아간다는 죄의 원리와 가치 대신에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안식일의 의도입니다. 안식일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하나님으로 인해 자유와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