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2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예배날짜 2025-11-23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8ufaacain9o

 

 

 

 

 

 

 

 

 

 

 

 

[창세기 강해 20] ‘고통, 저주, 수고

 

. 내가 누리는 복음

 

1. 기쁜 소식

기독교의 성도는 수행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수행하는 사람은 수행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는 자들이니까 아직 이루어진게 없는 것이고, 당연히 누리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타종교의 소식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기쁜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소식또는 기대소식일 뿐입니다. 이 희망과 기대가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데 수행은 당연히 고생을 근본으로 합니다.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무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타종교에서 업적을 이룬 분들의 일대기는 말 그대로 고생담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내가 고생한 이야기,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수가 고생한 이야기, 예수가 심한 박해를 받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는 고생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사역을 하다가 졸지에 체포를 당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는 시련을 겪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사역을 순적하게 행하셨고, 그 결과로 성도는 은혜를 받아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수행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내용은 전적으로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2. 내가 누리는 복음

세상에서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좋은 말을 교훈이라고 하는데 교훈이 결과를 소개하는 경우는 없고 대체로 좋은 목표를 소개하거나, 유용해 보는 수단과 방법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미 하나님이 사역을 하셨고, 예수님이 사역을 하셨고 그래서 그 결과가 나타났고, 열매가 맺혔기에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믿지 않으면 벌 받는다고 상대를 협박하는 것이 아니고, ‘한 번 믿어보라고 권면을 하는 것이 아니고, ‘믿으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전도자더 나아가 증인’, ‘산증인이라고 합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 기쁜 소식이 얼마나 기쁜 내용인지, 얼마나 복된 소식인지 내가 직접 체험하고, 현재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도는 절대로 수행자가 아니라 증인, 누리는 자입니다. 혹시 사도행전을 읽으실 때 제자들이 안스럽습니까? 마음이 저립니까? 서신서를 읽으실 때 가슴이 먹먹해 지십니까? 측은하고 애잔하고 불쌍하고 그렇습니까? 사도행전이나 서신서에서 제자들이나 사도들의 투정이나 불평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든 견디려고 몸부림치면서도 터져 나오려는 원망을 참아내려고 입을 틀어막는 듯한 모습이 있습니까?

 

. 고통, 저주, 수고

 

1. 반드시 죽으리라

2:17절에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가 나오는데 여자와 남자가 모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지만 그 즉시, 그 자리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숨어있는 사람을 찾아오셔서 대화를 하셨는데(3:8~13) 진상이 밝혀진 것인가요? 누가 잘못했는지,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누가 더 잘못했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났나요? 이제 하나님의 심판과 처벌만 남은 것인가요? 하나님이 뱀에게(3:14~15), 여자에게(3;16), 남자에게(3:17~19) 하신 말씀에는 죽음과 관련된 단어나 표현이나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당사자인 아담과 하와, 반드시 죽으리라의 대상인 아담과 하와도 죽음과 관련된 단어나 표현을 하나도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담과 하와는 이 다음 장면에서(3:20) 죽음이 아니라 도리어 아내의 이름을 하와 즉 생명이라고 부르고, 아내에 대한 소개를 모든 산자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고,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고 말했고,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는데 누구의 말대로 된 것입니까? 과연 하나님이 말씀하신 죽으리라는 무슨 의미일까요?

 

2. 상반된 내용과 상황

사람들은 하나님이 법을 정하시고(2:17) 인간이 죄를 범하자(3:6) 하나님이 심문하시고(3:7~13) 형벌을 내렸다(3:14~19)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와 대화하는 장면(3:7~13)에는 누가 잘못했는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얼마나 잘못했는가에 대해 판결에 관한 내용이 없고, 남자에게는 어떤 징계를 내리는지, 여자에게는 어떤 처벌을 내리는지에 대한 선고가 아직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심판(3:15~19)에는 하나님이 뱀에게, 여자에게, 남자에게 선고가 정확하게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아직 선고가 내려지지 않은 7~13절에서 아직 하나님이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기에 사람에게는 어떠한 증상도 나타나지 않아야 정상인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의 준엄한 징계, 처벌, 형벌이 선포된 14~19절 다음에는 인간의 반응이 극명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정작 아직 어떠한 징계나 형벌도 내리지 않은 7~13절에는 인간에게 닥친 상황이 있고,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징계가 명확하게 선포된 14~19절 다음에는 인간에게 닥친 어떤 상황도 없고, 당연히 인간의 반응도 없습니다. 대신 상황과 맞지 않게 20절에서는 아담과 하와는 전혀 징계를 받지 않은 것처럼 어떠한 처벌이나 형벌도 받지 않은 것처럼, 설령 징계나 처벌이나 형벌을 받았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해맑은 모습으로 이름짓기 소꿉장난을 하고 있고, 하나님도 직전에 인간에게 어마무시한 징계나 형벌을 내리신 것과는 딴판으로 21절에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3. 고통, 저주, 수고

여자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여서 여자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고 하셨다면 임신하지 않는 여자나 해산하지 않는 여자는 벌을 받는 것에서 면제되는 것입니까? 남자에게는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으리라고 하셨는데 여자는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수고해야 소산을 먹고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을 것이라면 하셨으면 하나님이 만나는 왜 주셨습니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남자의 경우는 맞는 말이지만, 여자의 경우는 너는 뼈니 뼈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야 하지 않습니까? 여자와 남자에게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징계라면 반드시 죽으리라대신 이것으로 충분합니까? 이런 벌을 받으면 죽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죽는 것은 원래대로 죽는 것이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또 다른 고통과 저주와 수고라는 보너스를 받은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이중처벌을 하시면 됩니까? 또 남자와 여자에게 하신 말씀이 인간의 죄에 대해 하나님이 내린 형벌이라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죄에게서 구원을 받고 죄짐을 벗어났다면 이제 여자 성도는 임신하는 고통이 없어야 하고 수고하고 자식을 낳는 것이 아니어야 하지 않습니까? 남자 성도는 더 이상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는 것이 아니어야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이 있었어도, 죄에게서 해방되고,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어도 하나님이 내린 형벌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까?

 

4. 죄의 열매

세상 사람들은 법이 있고, 법을 어기면 죄이고, 죄를 지으면 징계, 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법을 준행하면 또는 선을 행하면 상이나 복을 받는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행동이 있고, 그 행동에는 당연한 결과가 있다, 다른 표현으로 열매가 있다고 합니다. 상이나 벌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행동의 결과, 그 행동의 열매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체적으로 병에 걸리는 것이나 경제적으로 망하는 것이나 관계적으로 하려는 일들이 다 어그러지는 것들을 언급합니다. 이런 생각은 성경과 전혀 다르고, 기독교와 전혀 다르고, 하나님과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육체의 일죄의 일’, 사람들이 말하는 죄에 대한 벌, 기독교가 말하는 죄의 결과, 죄의 열매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5:19~21)고 합니다.

 

 


  1. No Image 30Nov
    by 열혈청년
    2025/11/30 by 열혈청년
    Views 22 

    창세기 강해 21 / 되었으니 / 창세기 3:22-3:24

  2. No Image 23Nov
    by 열혈청년
    2025/11/23 by 열혈청년
    Views 27 

    창세기 강해 20 / 고통, 저주, 수고 / 창세기 3:8-3:21

  3. No Image 16Nov
    by 열혈청년
    2025/11/16 by 열혈청년
    Views 61 

    창세기 강해 19 / 네가 어디에, 어찌하여 / 창세기 3:6-3:13

  4. No Image 09Nov
    by 열혈청년
    2025/11/09 by 열혈청년
    Views 50 

    창세기 강해 18 / 피하여, 두려워하여, 숨은지라 / 창세기 3:6-3:13

  5. No Image 02Nov
    by 열혈청년
    2025/11/02 by 열혈청년
    Views 66 

    창세기 강해 17 / 눈이 밝아져 / 창세기 3:1-3:13

  6. No Image 26Oct
    by 열혈청년
    2025/10/26 by 열혈청년
    Views 105 

    창세기 강해 16 / 반드시 죽으리라 / 창세기 3:1-3:6

  7. No Image 19Oct
    by 열혈청년
    2025/10/19 by 열혈청년
    Views 106 

    창세기 강해 15 / 먹지 말라 하시더냐 / 창세기 3:1-3:6

  8. No Image 12Oct
    by 열혈청년
    2025/10/12 by 열혈청년
    Views 128 

    창세기 강해 14 / 간교하니라 / 창세기 3:1-3:6

  9. No Image 05Oct
    by 열혈청년
    2025/10/05 by 열혈청년
    Views 125 

    창세기 강해 13 / 한 몸을 이룰지로다 / 창세기 2:18-2:25

  10. No Image 21Sep
    by 열혈청년
    2025/09/21 by 열혈청년
    Views 146 

    창세기 강해 12 / 돕는 배필 / 창세기 2:18-2:25

  11. No Image 14Sep
    by 열혈청년
    2025/09/14 by 열혈청년
    Views 136 

    창세기 강해 11 / 임의로 먹되 / 창세기 2:15-2:25

  12. No Image 07Sep
    by 열혈청년
    2025/09/07 by 열혈청년
    Views 165 

    창세기 강해 10 / 경작하고 지키게 / 창세기 2:4-2:17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