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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날짜 2025-11-30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Dq7OkNRe6yI

 

 

 

 

 

 

 

 

 

 

 

[창세기 강해 21] ‘되었으니

 

. 심판, 은혜, 회개

 

1. 거룩한 하나님, 거룩한 기독교

하나님은 어떤 측면으로도 인간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시고, 인간에게 어렵고 힘든 일을 시키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본인이 직접 일을 하시며, 본인이 모든 면에서 책임을 지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내라고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로서 보여주고 알려주시고 말씀하여 주시고 기록하여 주시고, 반복하여 읽으라고, 대대손손이 말하고 설명해서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동안 기독교가 하나님에 대해 설명해 온 것 중에 가장 치명적인 잘못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저 으로만 소개해서 신화들에 나오는 신, 동화에 나오는 신, 타종교들에 나오는 신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강한 자로서, 권력자로서, 능력자로서 하나님의 파워를 무기삼아 인간에게 명령하고, 불순종하는 자를 엄하게 징계하는 너무나 뻔한 존재로 소개할 뿐이었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소개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상과 벌을 주는 것으로 소개할 뿐이었습니다. 그 시작이 창2:17절을 하나님의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었고, 3:14~19절을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징계로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나 사울 왕이 특혜를 받아서 징계를 비켜간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서 제자들이나 베드로나 바울이 특혜를 받아서 심판이나 형벌을 피해간 것이 아닙니다. 원래는 모두 다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외가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법. 징계라는 제도가 없었던 것입니다.

 

2. 심판, 은혜, 회개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으신다는 말을 동의하지 못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그러면 세상이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라는 염려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신다는 주장이 인간의 죄를 억제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는데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으신다고 해 버리면 아무나,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죄를 지을 것이기에 세상이 무법천지가 되고, 죄인들이 날뛰는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이미 사도행전 시대에도 있었던 염려로, 바울이 계명 대신 은혜를 강조하면서 롬5: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설교하니까 사람들이 6:1절에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더 큰 죄를 짓자라고 억지를 부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바울이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큰일 날 것 같다. 역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는 꼭 필요한 것 같다. 은혜가 좋기는 하지만 은혜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계명은 꼭 필요하다. 심판과 징계는 필수다!’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징계와 관련된 또 다른 반응이 회개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 징계가 임하는데 징계가 임하기 전에 회개하면 용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약 어디에서도 하나님은 회개하면 용서를 받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또 실제로 이스라엘이 회개해서 용서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지은 자를 징계하신다라고 말해 놓고는 어떻게든 은혜를 설명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정의로우신 분으로서 죄에 대해 징계하시지만 다른 한편으로운 자비로우신 분으로서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주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중인격자로 변질시키는, 더더욱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설명에 불과합니다.

 

. 되었으니

 

1. 죄와 벌

기독교 역사에서 창3:16~19절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나님이 내린 형벌이라고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법이 있고, 법을 어기면 죄이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가장 일반적인 죄와 벌의 패턴입니다. 죄를 지었고 벌을 받았고 그러면 끝입니다. 하나님이 법을 주셨고,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형벌을 내렸고, 인간이 형벌을 받았다고 하면 인간은 죄값을 치룬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도와준 것이 없고, 인간이 은혜를 받은 것이 없고,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할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각자 갈 길을 가면 됩니다. 이러면 기독교에서 예수가 오셨다는 설명도 필요 없고,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설명도 필요 없고, 예수를 우리의 구원자라고 부를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권위자로서 심판자로서 말 그대로 공평과 정의로 형벌을 내렸고, 인간은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죄값을 치른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 인식구조에는 인간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내용을 복음이라고 부르지 못할 것입니다.

 

2. 형벌 대속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해서 예수님이 우리가 받아야 하는 죄를 대신 감당하고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형벌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는 설명을 들어보셨을 텐데 신학적인 전문용어로 형벌 대속설이라고 합니다. 죄와 벌이라는 패턴은 똑같은데 다만 죄가 훨씬 크다는 것이고 벌도 훨씬 중하다는 것입니다. 형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해진 형기를 다 채우고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 나오는 것입니다. 즉 내가 받아야 하는 벌이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내 벌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풀려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감옥에 있으니까 해결할 방법이 없는데 하나님이 나 대신 예수를 보내셔서 예수가 내 대신 벌을 받고, 그 덕분에 나는 더 이상을 형벌을 받지 않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수가 우리를 죄를 위하여 죽으시사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라 죄를 지은 것에는 반드시 벌을 주셔야 하는 것이고, 벌을 주셨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그냥 벌을 취소해 버리면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벌을 내렸는데 인간이 그 벌을 다 받으면 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대신 에수님이 우리 벌을 대신 받고 우리는 그 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하나님의 공의도 살고, 우리도 살고, 예수님은 죽었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려내서 결과적으로 모두가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3. 용서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징계만큼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용서의 사전적 의미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줌.’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때는 잘못을 했는데 아직 벌을 받지 않았을 때, 상대방이 나에게 징계나 형벌을 내리기 전입니다. 잘못했다고 고백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고,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충성을 다 하겠다고 맹세를 하기까지 하며 용서를 구하는 이유는 벌을 받지 않으려고, 징계를 당하지 않으려고, 죄값을 치루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용서를 구했을 때 상대가 징계를 내리지 않고, 어떠한 형벌도 내리지 않으면 그게 용서한 것이고, 그래서 내가 어떠한 죄값도 치루지 않아도 되면 내가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용서는 죄에 대한 징계나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벌을 내리거나 내가 벌을 받으면 이미 용서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더니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하여 형벌을 내렸다고. 인간이 형벌을 받았다면 죄값을 치룬 것이기에 용서가 등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4. 되었으니

하나님은 법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이 징계하지도 않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죄에 대해 아무 상관하지 않으셨다거나, 죄를 짓거나 말거나 방관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어떤 징계나 형벌을 내리지 않아도 인간의 행동에 대한 값을 치루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심판이나 형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 세상에서는 전혀 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주목하고 반드시 강조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변화, 존재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이 창세기 1, 2장에 나왔고, 3장에서 인간의 행동에 의해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으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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