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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 4] ‘아름다운 이름, 아들’
Ⅰ. 하나님이
1. 종교와 신앙
성경의 핵심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왜 그 일을 하시는가? 왜 그 때에 하시는가? 왜 그 사람과 하시는가? 왜 그런 방식으로 하시는가?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구약의 경우 대략 4천년 정도의 기간에 정말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그 사건들 중에 어떤 사람이 계획하고 시행한 일, 어떤 집단이나 민족이 구상하고 실천한 일, 어떤 나라가 장기적 목적을 가지고 진행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는,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연약한 인간이, 삶을 살아갈 때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이 있는 인간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서, 어딘가로 도피를 하거나 아니면 삶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위로나 격려를 받기 위해 신을 찾고, 신의 도움을 받기 원하여 만든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 주장에 의하면 당연히 인간이 먼저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 등장하는 신들의 속성이나 원리들은 인간의 기대와 바람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로 신에게 투사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종교학 이론을 기준으로 한다면 기독교는 전혀 설명이 안 되고, 맞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이 먼저 시작하지도 않고, 또 사람들이 예상하는 방식으로 전개가 되지도 않고, 또 사람들이 기대하는 결론이 맺어지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호와 종교, 여호와 신앙 자체도 사람들이 예상하고, 기대하는 그런 결론, 매우 성대한 종교가 되고, 매우 강력한 권위가 있고 인간으로부터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종교, 그래서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종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자신이 가장 강한 신으로 모든 인간의 경배를 받고 있는 신이 된 것도 아닙니다.
2. 선지자들을 통하여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브리서를 읽어보면 선지자들과 아들이 사역이 나올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선지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1장부터 온통 아들에 관한 이야기, 예수에 관한 이야기,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로만 꽉 차 있습니다. 복음서는 당연히 예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전반부에는 베드로가 나오고, 후반부에는 바울이 나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바울이 누구 이야기를 합니까? 구약에 등장했던 허다한 선지자들이나 인물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나 요한이나 빌립이나 바울이 사역하는 내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설교를 했는데 그들은 선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구약 인물에 관한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그 후에 바울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유다 등등이 각 교회들에 편지를 써서 성도들에게 복음을 다시 설명하고, 신앙을 돈독히 할 것을 권고하는데 그 편지들에도 온통 예수에 관한 내용들이 가득 차 있을 뿐 구약의 인물들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3. 하나님이
1:1~2절의 강조점, 히브리서 전체의 강조점, 성경 전체의 강조점, 기독교 전체의 강조점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사역하셨다’입니다. 성경 인물들에 주목할 필요가 없고, 인물들의 출신, 인성, 자세, 태도, 삶의 모습 등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기독교의 사역자는 하나님이고, 기독교의 일꾼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언제나 하나님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가치, 하나님의 원리,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능력 등 온통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각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각 사람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오해이고 왜곡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그 사람이 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Ⅱ. 아름다운 이름, 예수
1. 자랑 or 소개
누군가를 언급할 때 상대방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 아무 유익이 없고, 어떤 혜택도 제공되는 것이 없는데 일방적으로 이런저런 장점을 늘어놓았다면 아주 천박한 자랑질입니다. 대신 누군가를 언급하는 것이 상대방과 직접 연관이 있고, 상대가 받게 될 유익, 혜택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면 소개, 안내입니다. 히1장이 1~14절까지 아들에 대해 자세하고, 풍성하게, 섬세하게, 다양하게 언급하는 것은 아들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자기를 소개하고 계시하신 이유, 의도,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자랑을 하는 분이 아니고, 백성에게 하나님께 합당한 대우를 하라고 요구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정반대로 하나님은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거룩한 여호와니라’ 그래서 내가 너도 거룩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지은 창조주다’ 그래서 내가 너를 온전히 책임지고, 너의 보호자로서,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누가 세고 강한지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영광받고 존귀받고 찬양받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 앉아서 대접받으며 신선놀음하는 한량이 아니십니다. 우리 성도들부터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소개할 때 하나님의 크고 높고 강함을 자랑할 것이 아니고, 그 하나님 앞에 복종하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해 주시고 수고해 주신다고 친절하고 바르게 소개하고 안내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아름다운 이름, 아들
복음서의 방식이라면 ‘예수’라고, 서신서의 방식이라면 ‘주’, 또는 ‘그리스도’라고 소개하는 것이 익숙한데 히1장은 ‘아들’이라고, ‘아들’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성품, 같은 속성, 같은 권위, 같은 거룩, 같은 존귀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입니다. 하나님을 계시한 목적, 성경 전체를 기록한 목적, 히브리서라는 서신을 기록한 목적,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행하시든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목적은 인간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 주고, 인간이 불안해하는 것이 있으면 평안하게 해 주고,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담대하게 해 주고, 인간의 의심하는 것이 있으면 확실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ㅇ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십자가와 부활 사역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간을 위한 최상, 최고, 최적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목수인 요셉의 아들이요, 십자가는 처형당한 것이요, 부활은 본적이 없기에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죄인들이 예상하고, 기대하고,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역을 행하셨는데, 하나님은 이미 구원을 이루셨는데, 정작 구원받은 사람들은 ‘내가 구원받은 것 맞나?’, ‘예수가 당한 일들이 죄 문제를 해결한 것 맞아?’라고 의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대답이 히브리서입니다. 한 마디로 하면 ‘내가 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아들이 했다’입니다.
3. 아들에 관하여는
5절부터는 아들에 대한 소개 일곱 개가 이어집니다(1:5a, 5b, 6, 7, 8~9, 10~12, 13). 왜 이렇게 다양하게, 왜 이렇게 장중하게, 왜 이렇게 거창하게 아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일까요? 이 아들이 너를 위해 사역을 했다, 이런 아들이 너희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분명하다, 정확하다, 확실하다, 그러니 믿을만하다, 신뢰할만하다. 그러니 평안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담대하게 평안하고 자유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히브리서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를 위해 충성하라, 아들을 위해 희생하라’가 아니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