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Extra Form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0ot-MMrewtE

 

 

 

 

 

 

 

 

 

 

[히브리서 강해 13]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

 

 

. 섬길 자를 택하라

 

 

종교 다원주의

기독교는 타종교들에게서 배타적,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종교 다원주의에서는 등산할 때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다양하듯이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수단이나 궁극적 행복에 이르는 방법이 다양하니 각 종교의 수단과 방법을 서로 인정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때 기독교는 아니다, 오직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다라고 저항할 것이 아니라 아주 관대하게 각자의 종교 방식에 따라 신을 찾아가세요. 대신 기독교에 대해서 바로 알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종교가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찾아오는 종교입니다.’라고 대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수단과 방법을 모두 통제하는 분이 아니라 그것의 무용함을 아시고 예수라는 새로운 길을 직접 내어주시는 배려적인 분, 관대하신 분입니다.

 

 

2. 종교의 자유 선언

하나님이 출애굽부터 광야여정과 가나안 입성까지 모든 약속된 일을 다 이루어주시고 난후에 이스라엘에게 여호수아를 통해 선포하신 말씀이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무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24;15)고 종교의, 신앙의 자유를 선언해 주십니다. ‘혹시 다른 신을 섬길 놈들은 알아서해!’라고 하지 않고 친히 다른 신을 알려주시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상들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관대함입니다. 백성들이 우상을 섬긴다고 하나님이 질투하고, 삐지고, 보복하지 않으십니다. ‘나만 섬겨라, 다른 신을 섬길 놈들은 내 땅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이 변경되지 않고, 인간의 자세, 인간의 태도에 따라 하나님의 맹세를 뒤집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서 나가라고 쫓아내신 적이 없습니다. 사사기에서 그렇게 자주, 그렇게 쉽게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은 백성들을 몰아내지 않으셨습니다.

 

 

3.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타종교에서 보면 기독교는 매우 이상한 종교입니다. 신의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의 신은 매우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힘이 있고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는데 신이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신이 수고하는 이야기, 신이 고난받는 이야기, 신이 열심을 다해 일한다는 이야기는 신화에도 동화에도, 그 어디에도 없고 오직 기독교의 신만, 만왕의 왕이라는 하나님만 일을 하시는데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누가 요청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자청해서 이렇게 하십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의 인간은 매우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고 강조하고, 인간은 수고도 하지 않고, 자격도 없으면서 은혜를 받고, 복을 받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의 관점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기에 기독교는 죄와 비교하여 다르다, 즉 거룩한 하나님, 거룩한 종교, 거룩한 성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죄인의 기준에 맞게 설명하면 그 결과는 죄인들이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왜곡되고 변질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교회를 죄인들의 원리를 따라 운영하면 죄인들이 많이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타종교와 같이 지는 것입니다. 죄의 내용으로 진리를 설명할 수 없고, 죄의 수단과 방법으로 은혜를 얻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인에게 복음을 알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입니다(19:26).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

 

 

1. 백성들의 행동

3:14~19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격노하셨다고, 그래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4:2),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4:5~6),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11)고 합니다. 이 구절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않았다고 책망하는 구절이 아닌 첫 번째 이유는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한 것이 율법을 어긴 것이라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100%을 지켜야 하는데 어느 죄인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2세대는 율법을 지켜서 들어간 것이 아니고 1세대는 율법을 어겨서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맹세입니다.

 

 

2. 아들, 구원자

세상의 모든 세대에서, 모든 분야에서, 모든 지역에서 심지어는 대부분의 종교에서도 똑같이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이 문제이고, 인간이 변화되어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타종교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구원자입니다. 구원자가 존재할 이유도 없고, 존재할 명분도 없기에 누구에게 감사할 것도 없고, 누구를 찬양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사람을 볶아대고, 인간들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자가 있습니다. 구원자는 말 그대로 문제로부터 구원해 주는 자, 다른 표현으로 하면, 해결사입니다. 구원자가 직접 일하고 수고해서 노력하고 열심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죄로부터 구원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자의 역할, 구원자의 수고, 구원자의 책임입니다. 세상에는 구원자가 없고, 타종교에도 구원자가 없어서 아무도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기독교에는 구원자가 있는데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말 심오한 설명, 정말 웅대한 설명, 정말 엄중한 설명이 왜 여기에, 왜 이 문맥에 등장할까요? 만약 앞에 언급된 것처럼 백성이 믿지 않아서, 순종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한다면, 성도가 믿어야 하고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면 이 내용은 성경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이 문제이고, 인간이 변화해야 해결할 수 있다면 이 구절은 필요없습니다.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수준인가, 어떤 능력이 있는가, 어떤 권세가 있는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구약부터 지금까지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이 모든 인간의 상태, 수준에 대해 하나님은 정확히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문제를 다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백성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성도들을 다그치거나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셔서 하나님이 해결할 것이니까 하나님은 다 알고 있다, 하나님은 다 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4.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

 

 

하나님의 해결책이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4:14~16)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문제를 아시고, 하나님이 인간의 필요를 아시고,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어느 날 불쑥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옛적부터 지금까지 잘 계획해서, 순서대로, 절차대로, 계획대로 잘 진행해 오셨습니다. 이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고,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 맹세하신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여러 번 언급한 이유는 그들이 불순종해서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고, 하나님의 맹세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불순종해서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또 다시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기어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더 확대되어 이방인이었던 우리 성도들까지 안식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이 하신 맹세는 인간이 어떻게 반응할지라도 기어코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덕분임을 알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