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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 14] ‘부르심을 받은 자’
Ⅰ. 대제사장
권세자 하나님
인생 살면서 리얼하게 알게 된 것이 ‘그놈이 그놈이다’, ‘말린다고 말려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역사를 통해 절대로,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 등입니다. 연세가 있고 경륜이 있고 지식이 있는 많은 분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한다고 여기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훈수를 두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을 하지만 듣는 사람은 잔소리로 여길 뿐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면에서 진리이시고 모범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단순히 종교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게 가장 적절하고, 가장 유익한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권세자라고 높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모든 인간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세자가 맞습니다. 하나님은 권세가 있으신 정도가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분이요, 더 나아가 무소부재하시고 영원무궁하시기에 단순히 권세자 정도가 아니라 절대 지존이십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은 본인의 권세를 주장한 적도 없고, 인간에게 권세를 부리신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서 그런 권세를 느끼십니까? 하나님에게서 위압감을 느끼십니까?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절이십니까?
2. 하나님의 모범
기독교의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시기 때문, 하나님이 가장 잘하시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시다는 분이 팔짱끼고 계시면 됩니까?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 그것도 열심을 다해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대신 하나님이 하지 않으시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지,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심지어는 죄인들조차도 막지 않으십니다. 나이로 치면 인류에서 가장 오래 존재하신 분이고, 경험으로 치면 동서고금에 비교할 대상이 없는 분이고, 힘과 권세로 치면 출중함을 넘어 유일무이하신 분이시기에 잔소리를 가장 잘 하실 수 있는 분, 가장 많이 하실 수 있는 분, 가장 정확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인데 하지 않으십니다. 죄인에 대해, 인간에 대해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는 자는 하나님처럼 하는 것입니다. 경험이 있는 자는 하나님처럼 하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자는 하나님처럼 하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자는 하나님처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죄인에 대해 정확히 아시니까 죄인을 이해하셨고, 죄인을 배려하셨고, 죄인을 용납하셨습니다. 죄인을 다그치지 않았고, 죄인을 추궁하지 않았고, 죄인을 문책하지 않았고, 죄인을 징계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죄인을 위해 수고하셨고, 죄인을 위해 일하셨고, 죄인의 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권세를 사용하신 유일한 대상은 ‘죄’입니다. 기독교의 권세는 사람을 통제하는 힘이 아니고,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권력이 아니고 오직 죄를 물리치고, 죄를 이기는 권세입니다.
3. 대제사장
기독교의 구원자가 이름은 ‘예수’, 직분은 ‘그리스도’, 우리와의 관계는 ‘주’이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복음서에서 요셉과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아들이 태어날 것인데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런 저런 사역을 하고 다니시니까 사람들이 예수에게 와서 ‘네가 그리스도냐?’라고, 예수의 신분이나 역할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교회라는 연합체로 하나가 되어서 우리를 책임지신다는 의미로 ‘주’라고 고백합니다. 히1장에서는 ‘아들’이라고 소개했고, 3장부터는 ‘대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소개하는 곳은 오직 히브리서뿐입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유대교의 대제사장이 언급될 뿐이고, 대략 20개가 넘는 서신서 어디에서도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Ⅱ. 부르심을 받은 자
1. 하나님이 하셨다
우리들은 늘 사람의 입장, 사람의 역할에 주목을 하기에 대제사장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히5:1),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5:3)에 익숙합니다. 신약에 복음서가 4권이 있는데 등장인물이 같고, 주요 사건이 같고, 핵심 내용이 같습니다. 하지만 네 권을 통해서 예수에 대해 더 많이, 더 풍성히, 더 다양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혹은 신약 성경도 혹은 히브리서도 같은 패턴입니다. 예수에 대해 설명하는데 특별히 히브리서는 대제사장으로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에 대해 ‘아들’, ‘그리스도’, ‘대제사장’으로 소개할 때 공통적 강조점은 ‘하나님이 하셨다’입니다. 하나님이 옛적에도 일하셨고 마지막 날에도 일하셨고,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서도 일하셨고 아들을 통하여도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아들을 통하여 일하시려고 구약에서 약속하셨고, 예언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아들을 이 땅에 강림하게 하셨고, 그 아들로 하여금 십자가와 부활 사역을 행하게 하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아들을 구원의 창사지가 되게하셨고, 구원받은 성도가 아들과 한 형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2. 부르심을 받은 자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소개할 때도 강조점은 ‘하나님이 하셨다’로,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선택받은 사람이나 부름받은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신 하나님, 부르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인간의 자격, 인간의 수준, 인간의 조건을 언급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시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분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분들, 기독교나 교회에서 목사라는 직분을 받았다는 분들이 하나님의 권세든, 능력이든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마치 본인이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또는 하나님의 역할을 대행하는 것처럼 위세를 부리면 꼴불견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4. 왜곡된 종교
구약에 하나님이 선택하고, 부르고, 세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족장들, 출애굽기부터 여호수아까지 지도자나 장군, 사사기에 사사들, 왕정사에 왕들, 예언서에 선지자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 중에 자기가 선택받았다고, 부름받았다고, 세움받았다고 의시대는 사람 봤습니까? 거드름피는 사람 봤습니까? 하나님에게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억지부리는 사람 봤습니까? 잘난 척 하는 사람이 없고, 나는 특별하다고 허세부리는 사람이 없고, 나를 하나님 섬기듯 하라고 허튼 소리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이 순진해서, 겸손해서, 착해서가 아닙니다.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선택받았다는 의미를 모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중함을 모르고, 하나님에 의해 세움받았다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택함받은 인물들은 겨우겨우, 마지못해 합니다. 신약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에 의해 열두 명이 제자로 선택받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중에 자기들이 예수님에게 오는 사람을 막아서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누가 더 크냐가 논쟁을 하기도 하고, 자기들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고도 하고, 심지어는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하겠다고 하니까 하지 말라고 예수님을 호통치고 말리기까지 합니다. 구약과는 자세와 태도와 반응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에 유대교가 생겨났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이스라엘이 유대교를 만들면서 타종교와 유사한 수단과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준행하는 자는 거룩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라는 ‘자기 공로’가 도입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인간의 사역으로 변질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