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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pFulqEbCbM4

 

 

 

 

 

 

 

 

 

[히브리서 강해 22] ‘우리에게 있다

 

 

. 성막, 성전

 

 

1. 성막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처소가 필요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구약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신 적이 없고, 하나님이 머무는 곳을 하나님의 수준에 맞게, 그 어떤 건물보다 뛰어나게 지으라고 하신 적이 없고, 그 건물에 들어오고 나감으로 사람이 정결해 진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고, 그곳은 거룩하고 신령한 장소라고 강조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하나님과 관련하여 건물을 지으라고 하신 적이 두 번 나오는데 하나는 출애굽 한 후에 광야에서 성막을 지으라고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포로 귀환 이후에 성전을 지으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려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경배를 받으시려고 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지은 후에 성막을 자랑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막이 있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낸 적도 없고 평생소원 중의 하나가 성막에 가보는 것이라는 경외심을 나타낸 적도 없습니다. 그만큼 백성들에게 영향력이 없었고, 관심거리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애굽에서 보았던 신전들과 비교할 때 너무나 작고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방주의 규모가 가로*세로*높이가 300규빗*50규빗*30규빗입니다. 미터로 환산하면 가로 155.58m, 세로 25.93m, 높이 15.558m입니다. 솔로몬이 자기를 위하여 지은 왕궁이 100*50*30이고, 다윗과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지은 성전은 60*30*30입니다. 여호와의 성막이 가로 30* 세로 10입니다.

 

 

2. 성전

다윗이 왕이 되고 거처를 짓고 보니 자신의 거처가 하나님의 거처보다 더 크고 좋았는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성전을 짓겠다고 하는데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대상22:5), ‘내가 건축하려 하는 성전은 크고 화려할 것이니이다’(대하2:9)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생각의 차이 즉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고 뽐내려고 건축을 하고,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화려하게 지었으니 성전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부심 또한 매우 커서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에서 이 성전을 보고 기도하거든이라는 표현을 8번을 합니다. 성전에 의미를 부여하고, 성전에 가치를 부여하고, 성전이 영험한 것처럼, 성전이 만사형통의 통로인 것처럼 강조를 합니다. 후에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유다가 망할 것과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할 때 백성들은 평화로다, 평화로다, 평화로다를 외쳤는데 근거가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너무나 무기력하게 파괴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지으라고 하신 건물 두 번째가 제2성전입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이 바사제국의 왕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백성들은 성전을 지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패망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자신들은 포로 생활, 속국민의 처지가 지속될 뿐 상황을 변화시켜주는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데 갑자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전 지으라고 강요하신 것이 아니고, 백성들에게 어렵고 힘든 일을 시킨 것이 아니었고, 각종 재료를 구하기 위해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바사의 고레스 왕이 성전을 지으라고 보내주게 하셨고, 성전 짓는데 필요한 재료를 모두 제공하게 해 주셔서 성전이 세워지게 하셨으나 사람들의 반응은 감격이 아니라 탄식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비교해도 너무나 작고 초라하고, 얼마 전까지 자신들이 머물렀던 바벨론이나 바사에서 본 이방의 신전과 비교하면 아예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이 지어졌을 때와 같은 자랑이나 자부심과 관련된 표현이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것이 맞고, 하나님이 제2성전을 지으라고 하신 것이 맞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자기 과시용으로 성전을 지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3. 사람들의 반응, 하나님의 반응

죄인들이 하나님을 전혀 배우지 않고 늘 하나님과 엇박자로 행동합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지으라고 했더니 허접하다고 여겨서 삐까뻔쩍하게 성전을 지었고,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이 제2정전을 지으라고 했더니 초라하다고 여겨서 으리으리하게 새로운 성전을 지은 것이 복음서에 나오는 헤롯성전입니다. 2성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헤롯 성전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가득차서 예수님을 향하여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13:1),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21:5)라고 자랑합니다. 하나님이 지으라고 해서 지어진 성막과 제2성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전혀 감동을 하지 않았고 자랑도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자신들의 의지로 지은 솔로몬 성전과 헤롯 성전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대단했고 자랑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든 신약에서든 사람들이 성전을 자랑할 때 하나님의 반응은 두 번 모두 성전이 파괴되리라였습니다. 결국 솔로몬의 성전은 파괴되어 흔적도 없고, 헤롯의 성전도 파괴되어 흔적도 없습니다. 성막이든 성전이든 그것이 하나님의 처소가 전혀 아닙니다. 여호와 신앙의 대표적 상징이 전혀 아닙니다.

 

 

.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우리에게 있다

여호와 신앙이나 기독교 신앙에서 성막이나 성전과 관련하여 이방 종교, 우상 종교와 비교할 때 아주 특이한 것이 전설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막과 관련된 신기한 이적, 성전과 관련된 놀라운 능력은 성경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실로암 연못에서도 기적이 일어나도, 베데스다 연못에서도 능력이 일어나는데 성막이나 성전은 이런 연못보다도 못합니다. 기독교에는 유적이나 유물이 없고 신성한 장소가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영험한 물건도 없고 기독교를 상징할 만한 대상이 없고, 더더욱이나 여호와를 상징할 만한 것은 아예, 일체, 전혀 없습니다. 그럼 기독교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 대답이 히브리서 81,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입니다.

 

 

2.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기

대부분의 종교 행위, 종교 활동은 신전을 중심으로 진행이 됩니다. 하지만 여호와 신앙은 지금까지 설명드린 대로 성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에 성전에서 행해지는 종교 활동들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제사 잘 드렸다고 칭찬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절기를 잘 준행했다고 복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지서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지적할 때에도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거나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고 책망하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강조하는 것은 죄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완벽하게 실천하신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 모델이 예수님이신데, 여러분이 보신 예수님, 여러분이 배우신 예수님, 여러분이 기억하는 예수님은 어떤 모습입니까? 십자가 사역을 행하신 모습입니다. 십자가 사역이 무엇입니까?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존중하시고,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이것이 처음입니까? 아니요. 성경 전체에서,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신실하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모습, 우리가 예수님의 모델을 닮아가야 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인간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원리와 가치를 따라 모두가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항상, 범사에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교회에서가 아니라, 수련회에서가 아니라, 집회에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구현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목회자가 아니라, 성직자나 성도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구현되어야합니다. 신앙의 궁극적 열매는 행복을 누리는 삶, 평안을 누리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