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32 / 생각한지라 / 히브리서 11:17-11:32

by 캐리션 posted Mar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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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ZBIpbHyCBjM

 

 

 

 

[히브리서 강해 32] ‘생각한지라

 

 

. 성경의 베려, 기대

 

 

경전주의, NO!

타 종교들은 경전 자체가 능력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경전을 암송하는 것, 낭독하는 것, 필사하는 것, 경전이 들어있는 통을 돌리는 행동 자체가 종교 예식이고, 예식을 행하는 것이기에 공덕이 되고, 공덕이 쌓이는 것이기에 능력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경전 자체를 신성시하기에 경전의 내용에 대해서 해석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중심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그 어느 것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이양된 적이 없고, 하나님의 권세가 위임된 적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인격적인 하나님과 인격적인 인간의 소통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제외된 상태에서 하나님과 관련된 어떤 장소가 신령하다고, 어떤 도구가 영험하다고, 어떤 방식이 능력이 있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신을 활용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제외한 그 어떤 비인격적인 방식과 절차와 행위, 그것이 찬양이든, 기도이든, 예배이든, 감사이든, 금식이든 그 자체를 일체, 전혀 강조하지 않는 것입니다.

 

 

2. 성경의 배려, 기대

기독교는 성경을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하지만, 성경 자체를 경외시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의 내용에 대해서 철저하게 따져보라고, 계산해보라고 합니다. 성경의 어떤 인물이나 어떤 사건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을 찾아오신 하나님, 그 인물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11장에는 특정한 사람의 특정한 행동이 소개되는데 믿음으로라는 표현으로 그 사람의 믿음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행동이 그 사람이 처음 한 행동이나 마지막에 한 행동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에 대해 이해하려면 반드시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전 생애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따지지 말고 그냥 히브리서의 본문을 암송하라고 주장하지 않고, 히브리서가 말하는 대로 무조건 믿으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해 자초지종을 분석해 보라고 창세기라는 자료를 풍성하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배려이고 기대입니다.

 

 

. 생각한지라

 

 

1. 알았음이라

11:17절의 사건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을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고 이미 결혼도 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여 25년 뒤에 아들을 얻는 동안 그저 세월만 흐른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의심이 있었고, 불순종이 있었고, 대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고, 맹세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험한 세월이 25년입니다. ‘시험을 받을 때에가 이삭을 낳고 대략 15년 정도가 흘렀을 때요, 처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온갖 이적과 기적을 체험하고 허다한 은혜를 받은 경험이 대략 40년 이상 쌓였을 때입니다. ‘시험을 받을 때에이지만 실상은 전혀 시험이 아닙니다. ‘(이삭)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와 같이 이삭은 약속으로 받은 아들이고, 또 장차 있을 일에 대한 약속을 받은 자, 약속을 보유하고 있는 자, 약속을 성취해야 할 자가 이삭입니다. 또한 이 아들 이삭으로부터 자식이 생기고 이 나아가서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대략 10년이 지나도 아들이 생기지 않으니까 다른 여인을 통해서 스스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인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과 맹세를 해 주셨고, 전혀 가능성이 없었는데 그 후로 14년이 지난 후에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경험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했다면 처음에 이미 탈락했고, 중간에도 서너 번 탈락했을 텐데 하나님은 시험을 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하게 해 오셨습니다.

사라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아브라함보다 더 강력한 경험이 있습니다(11:11). 사라는 단산하였으나를 넘어 불임이었고, 세월이 흘러 경수까지 끊어져서 더 더욱이나 출산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기까지 했고, 스스로 자기 종을 남편에게 주어 아들을 얻도록 주선까지 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사라를 찾아와 약속을 해 주셨고 다음해에 사라가 임신을 했고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사라가 노력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약속을 지켜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체험했고 하나님이 이삭을 통해서 또 아들을 낳고, 민족을 이루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입니다.

 

 

2. 생각한지라

11장에 나오는 사람의 행동은 그가 주체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반응입니다. 아브라함의 행동도 아브라함이 자의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신 것,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행하신 것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고 알려주고 경험시켜 주었기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알았고, 알게 되었을 때에 어떤 시험이 와도, 어떤 상황이 와도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께 순종이라는 반응으로 응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1:18, 19절의 핵심은 생각한지라입니다. ‘세다, 계산하다, 셈하다라는 단어로 따져보았다는 것,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점검해 보고, 유익이 되는지 안 되는지 계산해 보고, 과연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다각도로 고려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처음 만날 날부터 지금까지 대략 40여 년 동안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하나님이 행하신 것, 하나님이 약속하고 맹세하신 것, 그래서 자기에게 이루어진 것, 자신의 삶에 직접 실현되었고, 지금도 자신의 삶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을 종합적으로, 총체적으로 다 심사숙고해 볼 때에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에 대한 반응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니까 아브라함이 40여 년 동안 하나님께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다 따져보고 결론(11:19)을 내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바치라고 했으니까 아브라함이 바친다면 이삭은 죽는 것인데, 약속을 받은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깨어지는 것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기에 일단 이삭을 바쳐서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이 약속을 위해서라도 이삭을 살려내시겠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관련된 내용은 아브라함의 행동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반응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주체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게 된 결과, 즉 응답인 것입니다. 이삭(11:20), 야곱(11:21), 요셉(11:22)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 있고, 하나님이 행할 사역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찾아와서 조상 때부터 약속하신 내용을 반복해 주시고 또 반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관점

 

 

또한 모세의 부모에 대한 내용(11:23), 모세에 대한 내용(11:24~28)은 출애굽기의 내용과 다릅니다. 히브리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든 인간을 좋게 감싸준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모세는 그렇게 행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은 그 계획을 가지고 사역을 진행하고 계셨고, 그 하나님의 사역에 모세가 동참되었기에 마치 모세가 그 사역을 행한 것처럼 여겨주는 것입니다. 모세의 관점에서 보면 얼토당토않은 표현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11:29)도 출애굽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서 하나님에게 억지를 부린 내용이 다 나와 있는데, 하나님에게 터무니없는 비난을 쏟아 놓은 것을 다 알고 있는데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존중해 주려고 매우 노력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인간의 품격을 높여 주려고 정말 애를 쓰십니다. 인간을 위해서라면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