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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날짜 2025-04-20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WwXXj_ImZJ8

 

 

[히브리서 강해 38] ‘거역하지 말라’

 

 

Ⅰ. No Cross, No Crown

 

1. 신의 선물

‘신이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에는 포장지에 싸서 준다고 합니다. 그 포장지의 이름이 시련입니다. 그래서 작은 선물을 줄 때에는 작은 시련을, 큰 선물을 줄 때에는 큰 시련을 주는 것입니다.’라고 격언이 있는데 세상에서는 이런 말이나 원리가 통용됩니다. 왜냐하면 신이 일을 하는 존재, 은혜를 주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인간이 일하는 것이기에 세상에서 불변의 진리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시련을 극복하는 수고를 해서 결과를 얻었다면 신의 선물이라는 표현이나, 포장지라는 표현 자체가 등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인간이 하는데 신이 언급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 보상 or 은혜

격언에 언급된 신이 하나님이라면, 만약 기독교가 유사하게 ‘고난은 하나님의 위장된 축복이다’라고 하면 하나님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첫째, 인간이 겪는 고난이나 시련의 원인이 하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수고해서 결과를 얻을 때 인간은 자신의 수고를 신이 내린 시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격언대로라면 인간은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을 힘들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이 시련을 주어서 내가 시련을 견디고, 고난을 극복해서 결과를 얻는다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가 되려면 내 수고가 없어야 합니다. 인간이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그 자체가 이미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3. No Cross, No Crown

부활절에 기독교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고난없이 영광없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 없다’, ‘No Pain, No Gain’, ‘No Cross, No Crown’입니다. 의미를 따져보면 첫째, ‘My Cross, My Crown’, 내가 수고해서 내가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표현으로 ‘자수성가’입니다. 예수가 등장할 것도 없고 하나님께 감사할 것도 없습니다. 둘째, ‘His Cross, His Crown’, 예수가 십자가를 졌고 예수가 면류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고생해서 예수가 영광을 얻었다는 그냥 남의 이야기입니다. 예수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셋째, ‘My Cross, His Crown’, 내가 고난을 받아서 예수가 영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이 인간을 고통 받게 하고, 인간의 고통을 통해 신이 영광을 받는다는 것이기에 비인격적, 몰인격적, 패륜적 종교입니다. 넷째, ‘His Cross, My Crown’, 예수가 십자가 고난을 받았고 그 결과로 내가 영광을 얻었고, 죄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역을 행한 것은 예수이고, 그 결과를 받은 것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행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Ⅱ. 거역하지 말라

 

1. 이루어진 것

구약에서 하나님이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셨고, 예언하셨기에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보내셔서 예수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셨으니까, 이 땅에 존재하니까, 제자들과 함께, 죄인들과 함께 하고 계시기에 친히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 내용, 성취된 결과들이 복음서에 허다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은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셔서, 이루신 결과들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마지막 사역, 가장 중요한 사역, 결정적인 사역, 본질적인 사역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예언된 그대로, 예수님 스스로 자신의 사역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수차례 예고하고 설명하신 그대로 삼일 만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고, 죄를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다 이루셨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마치 기독교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지 않은 것처럼, 무덤에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다시 살아나오지 못한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하면 기독교의 내용 즉 복음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역으로 죄 즉 사망의 권세가 무너졌고, 죄인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 성취된 것, 완성된 것, 결과, 열매입니다.

 

2. 땅에서 경고하신 이

히12:25절은 엄중한 경고가 아니라 확실히 보장된 것에 대한 역설적 표현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결코 법을 주신 것이 아니었고, 거역하면 심판하여 형벌을 내리신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인간이 정해진 목표를 이루고자 일을 해야 하기에 강력한 규제 조항, 징계 조치를 설정하고 준행하도록 강조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계획을 세우시는 분, 진행하시는 분, 책임을 지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여 광야를 지나고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이스라엘이 전심전력으로 수고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심을 내어 진행하는 사역이었고, 이스라엘의 사명이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이었습니다. 출애굽을 한 후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토라 즉 율법을 주셨는데 그것은 광야를 지나가는 것이나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율법을 시내산에서 주기는 하는데, 율법을 실행하는 것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즉 하나님이 조상들과 한 약속을 잘 완수해서 백성들이 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파별로 기업을 분배받은 후에 잘 정착해서 살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성취되었을 때,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았을 때 그것을 누리느냐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3. 거역하지 말라

하나님이 그 어떤 존재와 전혀 다른 즉 거룩한 분이라는 사실, 그래서 성경 스토리의 본질적 프레임이나 기독교의 기본 구조가 세상과 차이가 난다는 것을 꼭 분별하셔야 합니다. 세상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기독교에 적용하거나, 세상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일리가 있다고 복음과 연결을 시키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복음에 대한 엄청난 왜곡입니다. 기독교에서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 하나님의 만들어 놓으신 열매를 선물로 받아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선물을 누리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기쁜 소식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느냐, 하나님의 사역이 성취되느냐 등에 대해서는 신경 쓸 일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유능한 일꾼이십니다. 기본적으로 전지와 전능을 갖추고 성실과 열심까지 구비한 완벽한 일꾼이십니다. 성도는 완성된 것을 누리는 것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누리면 즐겁고 행복한 것이고 만약 누리지 못하면 본인만 손해 보는 것입니다.

 

4. 은혜의 복음

구약에서 죄인은 하나님이 계시를 주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은혜를 주어도 누리지 못하고, 경고를 해도 준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경험했습니다. 죄인을 죄인인 상태로 둔 채로는 아무리 계시를 주어도, 은혜를 주어도, 경고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구약과는 차원이 다른 사역, 예수가 오셔서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 성도라는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이제 성도는 계시를 이해하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미 이렇게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 놓고는 다시 구약에서 하던 방식대로 경고를 강하게 하고, 만약 경고를 듣지 않고 거역하면 구약 때보다 더 심한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리가 없습니다. 보장된 은혜와 복을 바르게 알고 풍성히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