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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날짜 2025-05-11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Q_CblINChoo


[히브리서 강해 41] ‘그가, 우리가’

 

Ⅰ. 잊지 말라, 생각하라

 

1. 하나님의 사역

기독교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계획을 세우시면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실 계획으로, 그것을 진행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셔야 하고, 완성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에 인간을 초청하실 수 있습니다. 혹시 초청을 받으셨으면 아주 마음 편히 하나님의 사역을 구경하러 가는 심정으로 가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참관하는 마음으로 마음 편히 임하시면 됩니다. 조금 더 적극적이라면 하나님의 사역을 직접 체험해 보려는 자세를 가지고 참여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인간이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활동여부에 따라 성패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어도 싫으시면 안 가셔도 됩니다. 할 것 같아서 갔는데 못할 것 같으면 그만두어도 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종교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역 때문에 힘들면 안 되고, 성도가 하나님의 사역 때문에 불행하면 안 됩니다.

 

2. 예수의 원리

히브리서가 ‘옛적에, 마지막 날에는’ 하면서 거창하게 시작했습니다. 아들이신 예수가 천사보다 뛰어나고, 모세보다 훌륭하고, 여호수아보다 위대하다고 전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중간에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예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라고 강조를 했고, 허다한 대제사장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단 번에, 한 번에 모든 것을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이라면, 세상에서라면 이제 히브리서의 마지막 즈음에 예수가 받은 영광, 예수가 성취한 존귀와 명예, 예수에 대한 찬양과 경배가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복음서도 동일한 패턴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강림,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탄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등장하는 모습에 전혀 하나님다운 모습이 없습니다. 천군천사도 없고, 그렇다고 고관대작들이 도열을 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에 합당한 어떤 환영도 없습니다. 그렇게 30년을 살다가 드디어 공생애라는 것을 시작합니다. 이적도 행하고, 병자도 고치고, 귀신도 내쫓고, 바다를 걷고, 오병이어를 행하고, 죽은 자도 살리고 정말 엄청난 사역을 행합니다. 그런데 결론은 고발을 당하는 것이고, 체포를 당하는 것이고, 재판을 당하는 것이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것입니다. 정적들이 그런 짓을 했다고 치면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라도 예수를 존중한 것이 아니고, 제자라고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온갖 특혜를 다 받았던 사람들이라도 예수의 곁을 지킨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런 능력이 없든지, 그런 능력이 있으면 그 만한 대접을 받는지. 능력은 능력대로 있는데 멸시는 멸시대로 받습니다. 무슨 신이 이럽니까?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끝이 아니고 부활을 했습니다. 그래서요? 부활했으면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을 시켜야지요? 로마의 황제로 등극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유대의 분봉왕 정도로는 취임을 해야지요? 아니면 최소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체면치레는 해야죠? 명예회복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복음서의 끝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로 끝이 나고, 사도행전에서도 예수는 별다른 일없이 50일을 지내다가 기독교에서는 승천했다고 하고, 세상에서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예수님이 무능력한 것이 아닙니다.

 

3. 잊지 말라, 생각하라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달라져야 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일하시는 존재로 소개를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예, 존귀, 영광, 경배, 찬양 등을 받으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것들은 경쟁하는 대상이 있을 때, 그 대상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이고 싶어할 때 나타나는 장면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이기고, 누구보다 크고 높고 세고 강하고 이런 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고, 예수님이 이런 분이시기 때문에 초기 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존귀와 영광, 찬양과 경배에 집착하는 어떤 종교적 행위나 활동, 의식을 만들지도 않았고 시행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예수를 굳게 잡을지어다’(히4:14),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는 예수를 기억하고 경배하고 찬양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를 바르게 이해하고, 예수를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대신 히13:1~3절의 ‘잊지 말라, 생각하라’는 말 그대로 잊지 말고 기억해서 손님 대접하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고, 갇힌 자를 생각하고 학대받는 자를 생각해서 그들을 보살피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이해와 배려와 포용과 격려와 후원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아서 사람들과 나누고 누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인간이 하는 행동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의 반응입니다. 은혜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수고를 하시는 것이고, 인간은 받은 은혜를 누리는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Ⅱ. 그가, 우리가

1. 심판하리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10:2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히12:14),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고, 너희도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히13:1~3) 등은 하나님의 권고일 뿐 결코 법이나 규정,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인격적인 관계, 사랑과 교제를 나누는 관계이기에 법이나 규정으로 유지를 하거나, 지시와 명령으로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나 규정이 아니고 당연히 상이나 벌을 운운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은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고 당연히 상급이나 징계를 운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권면이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데,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인간의 삶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요 그것이 이미 심판입니다.

 

2. 교훈과 복음

세상에도 좋은 말, 옳은 말, 교훈으로 ‘탐욕을 부리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가 있습니다. 교훈은 옳은 말일뿐 실천은 모두 사람의 몫, 책임입니다. 탐욕을 부리지 말라고 했는데 탐욕을 부려서 망하면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그럼에도 또 탐욕을 부리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욕심을 내지 않으면 큰 상을 준다고 하고, 탐욕을 부리면 큰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상황은 반복되고 세상은 이 패턴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내용이 복음인 것은 인간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수고를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너희가 결단하라, 너희가 다짐하라, 너희가 마음을 독하게 먹으라, 너희가 마음을 바꾸어라!’가 아니고 ‘모든 것이 너희 하기에 달렸다!’가 아닙니다. 복음은 각 사람의 책임을 강조하는 대신 하나님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세상에 없는 내용, 교훈에 없는 내용 즉 하나님이 일하시는 내용, 하나님이 책임지는 내용으로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수1:5)가 있습니다.

 

3. 그가, 우리가

기독교는 하나님이 책임지는 종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한 번 전하는 것으로 끝나고, 결국에는 복음을 듣는 자가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가에 모든 것을 맡기는 패턴이 아닙니다. 복음을 듣는 자가 관심이 없어도, 무반응이어도, 심지어 배척을 해도 복음을 전하는 자가 계속 말하는 것, 다양하게 설명하게 것, 납득이 되도록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 보장까지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가’(하나님) 행하신 일에 대해 ‘우리가’ 고백할 수 있도록 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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