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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날짜 2025-06-22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gclrl-KsJoI

 

 

 

 

 

 

 

 

 

 

 

[주일 설교] ‘네가 나와 함께

 

. 거룩한 기독교

 

  • 대한 태도

세상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신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신에 대해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합니다. 가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신에 대한 인간의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평안할 때는 과감하게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웬만큼 절박했을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우상을 먼저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할 수 없고, 우상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상황은 너무나 악화되어 어렵고 힘들 때가 되면 체면이고 염치고 따질 것도 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복음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 중에 걱정없이 살만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환자이고, 귀신들린 자이고, 배고픈 자이고, 할 일 없는 자이었습니다. 간혹 여유있는 사람, 배웠다는 사람, 힘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의도였을 뿐이고, 아주 드물게 이방인의 백부장이 찾아온 것은 자기 집의 하인이 중한 병에 걸렸던 경우였습니다.

물론 구약에서 하나님이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들을 받아 주셨습니다. 왜 평상시에는 모른 척하다가 급할 때만 찾느냐고 외면하지 않았고,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이용해 먹으려고만 한다고 투정을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도움을 받으려면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요구도 않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의도가 있든, 어떤 목적이 있든 하나님을 찾아 나온 것을 반가워하시며 일방적으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역을 전적으로 은혜의 원리로 행하셨습니다. 절박할 때에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매우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매우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겨우, 최소한으로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마지막 카드

세상 사람들은 신을 마지막 카드로 사용하는 아주 어리석은 속성이 있습니다. 왜 마지막 카드로 씁니까? 하다하다 안 될 때, 기적이 필요할 때 신의 도움을 청합니다. 그 동안은 왜 아껴두죠? 자주 쓰면 하나님이 닳아 없어지나요? 하나님의 도움에도 사용한도가 있습니까? 세월이 지나면 하나님도 지칩니까? 여러 번 쓰면 하나님의 능력이 줄어듭니까? 하나님을 왜 감춰둡니까? 하나님을 왜 묵혀둡니까? 하나님을 왜 보관만 합니까? 하나님을 왜 보호합니까? 하나님을 처음부터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영원무궁하시고, 신실하게 일하시는 분이니까 아주 능동적으로, 아주 진취적으로, 아주 열렬하게 항상, 범사에 매우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늘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부탁을 하십니다. ‘너는 가만히 서서 내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겠다는 것, 수고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늘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예수님의 도움,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의 역할,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예수님이 먼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십니다. 이런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히든카드로 남겨 두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가장 어리석게 하는 것이 기적같은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대신 신앙생활을 가장 지혜롭게 하는 것은 항상,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따로 기적이 필요하지 않도록 일상에서 너무나 평화롭게 행복한 삶을 누리는 은혜를 받고, 또 긴급할 때, 절박할 때에는 그때그때 역사하시는 소중한 은혜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부지런하시고, 신실하시고, 열심이시고,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일회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평생에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리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 인간에게 베풀어 주시는 분, 인간을 위해 일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상과 다른 거룩한 하나님, 기독교는 죄의 종교와 다른 거룩한 종교입니다.

 

. 네가 나와 함께

 

1. 행악자들

성경의 모든 구절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자격이나 조건, 수준이나 행동이나 태도 등에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는 장면이 성경에 가득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수고, 인간의 특징, 인간의 장점, 인간의 헌신, 인간의 자격 등 특정한 인간을 소개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사람들이라면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기에, 사람들이라면 그 사람을 통해 일을 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어서 그 일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서 그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방식이어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늘 하는 말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입니다. 십자가 사형은 당시에 시행되는 사형방법 중의 하나이었고 그 날에, 그 자리에 예수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행악자 두 명이 더 있었습니다. 원래 십자가 사형이 예정되어 있던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23:19)이었으니 예수님 옆에 있던 두 사람의 악행이 아마도 최소 살인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2. 행악자들의 말

첫 번째 행악자의 말이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입니다(23:39). ‘비방하여 이르되라고 하니 곱게 들리지 않겠지만 원문인 헬라어에는 존대말이나 반말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존대말로 번역을 해 보면 당신은 그리스도이지 않으십니까? 당신과 우리를 구원하옵소서!’가 되어 너무나 정중하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과 관련된 주석과 자료들을 찾아볼 때 이 사람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미 나쁜 놈으로 단정을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갖지 않고, 이런 놈은 도무지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번역에 속으면 안 되고, 선입견에 의해서 적절한 판단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행악자의 말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23:40)에 감동 받으시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언제부터 십자가 사형을 당할 정도의 행악자의 말을 그렇게 신뢰했답니까?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까? 이 사람의 말이 정당합니까? 저는 이 사람의 말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두 행악자가 서로 아는 사람, 어쩌면 공범일 수도 있습니다. 대신 예수는 처음 만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돌변하여 그 동안 동고동락했던 동료를 대놓고 책망하고 처음 보는 예수 편을 드는 것이 진실된 태도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저 혼자 살자고 동료를 팔아먹는 전형적인 배반자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제가 첫 번째 행악자를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고, 두 번째 행악자를 흑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이 두 사람은 똑 같은 수준의 행악자입니다. 둘 중에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무슨 말을 했는가에 따라 흔들리면 안 됩니다.

 

3. 네가 나와 함께

본문의 핵심은 두 번째 강도의 말이나 태도가 아니라 이 행악자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와 말씀 즉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은혜이고, 은혜의 핵심은 인간의 말과 행동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필요한 자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객관적 입장, 3자적 위치에 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에게 좋은 공간과 상황을 만들어 놓고 너는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이 낙원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행여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며,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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