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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날짜 2025-10-19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JX-Ywr5213A

 

 

 

 

 

 

 

 

[창세기 강해 15] ‘먹지 말라 하시더냐

 

. 먹지 말라 하시더냐?

 

1. 613개의 계명

하나님을 섬기고 성경을 믿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 명령, 규범으로 오해합니다. 유대교에 의하면 창세기부터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의 개수가 613개라고 합니다. ‘~하라는 긍정 명령이 248개인데 사람의 뼈와 주요 기관의 숫자 즉 몸 전체가 248개이고, ‘~하지 말라는 부정 명령이 365개인데 일 년이 365일이니까, 풀이를 하면 사람이 온 몸으로, 모든 날 동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아무 상관없는 내용을 끌어다가 억지로 짜맞춘 것일 뿐 하나님은 이런 의미로, 이런 숫자로, 이런 법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1, 2장 가운데 하나님의 법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가 창1:28절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문화명령이라고 표현을 하고, 유대교에서는 613가지의 계명 중에 첫 번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친히 복을 주시며라고 하셨기에 명령이나 법이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창2:16, 17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선악과 때문에 인간이 죄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왜 하나님은 먹지도 못하게 하실 것을 만들어 놓아서 인간을 범죄자로 만들었느냐?’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613개의 계명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중에 누가 옳은 것일까요? 둘 중의 하나라도 옳기는 한 것일까요? 아니면 둘 다 틀린 것일까요?

 

2. 법적 언어?

하나님은 먼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으로서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을 주시어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하도록 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어이없는 질문들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오해를 하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오해로 이어지고, 당연히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조치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고, 저절로 기독교와 교회, 신앙과 믿음에 대해 오해로 연결이 됩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저절로 인격적인 관계, 존중의 관계, 사귐의 관계, 소통의 관계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소개를 하면,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인격적인 차원으로, 인격적인 관점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신데 하나님의 원리나 방법은 독재와 독선이라고 하면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신데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간섭하신다고 하면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신데 대화나 소통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법으로 규정하여 강요하신다고 하면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신데 피도 눈물도 없이 오직 인간이 행한대로 상벌로 갚으신다고 하면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말씀,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절대로 법적 언어, 법률적 언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죄나 죄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법이 존재해야 하고, 법을 어기는 것을 죄라고 하고, 죄를 지은 사람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세상의 기준, 세상의 표현, 세상의 사례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 죄를 지은 사람은 죄인이라고 부르면,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뭐라고 부릅니까? 다른 표현으로 죄인이 아닌 사람을 뭐라고 부릅니까? 별도의 호칭이 없고 그냥 시민이고 또는 일반인입니다. 그럼 성경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주장했던 대로 하나님이 법을 주셨고, 불순종하고 그 법을 어긴 사람을 죄인이라고 불렀다면 죄인이 아닌 사람을 뭐라고 부릅니까? 세상에는 용어가 없지만 기독교에는 용어가 있으니 의인입니다. 기독교에서 사람을 의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법을 준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의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인이라 불러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법적인 판결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선포입니다.

3. 관계적 언어!

성경의 언어는 법적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적 언어입니다. 만약 창1:28절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문화 명령이라고 하면 인간은 이것을 준행한 것입니까, 안 한 것입니까? 기독교에서 인간이 이 명령을 준행했다고 선언하는 것을 못 들었고, 그렇다고 이 명령을 어겼다고 선언하는 것도 못 들어 보았습니다. 문화 명령은 그냥 명령일 뿐입니까? 이것을 준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리라는 다음 조치가 언급되고 있지 않으니까 준행하거나 준행하지 않거나 별 상관이 없는 것입니까? 그래서 하나님도 굳이 따지지 않으시고 기독교도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까? 또 만약 창세기 2:16~17절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규정,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라고 한다면 조항이 두 가지 즉 하나는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법을 준행하려면 하라는 것은 해야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는 하라는 것은 다 했습니까? 그래서 하라는 규정은 어긴 적이 없습니까? 다만 하지 말라는 것을 한 것만이 문제입니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다 먹었답니까? ‘하라는 것 즉 먹으라는 것에는 강제성이 없고, 즉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자유,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입니까? 그러면 법이 아니고 규정이 아니네요? 법 조항에 일관성이 없네요?

애초에 법이 아닌 것을 법으로 설정을 하고, 법적으로 설명을 하려고 하니까 기독교의 설명이 꼬이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인식을 하니까 이어지는 내용이 공평과 정의입니다. 하나님을 심판자라고 말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법 아래에 가두어 두고, 모든 신경을 법 준수에 몰두하게 하고 그래서 설교의 내용이 온통 상과 벌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정작 신앙의 중심은 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오해와 왜곡입니다.

 

4. 먹지 말라 하시더냐?

기독교의 언어 패턴, 대화의 방식이 자기도 모르게 창3장에 나오는 뱀이 한 말이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뱀이 가장 간교하다고 소개되니 뱀의 질문은 지혜로운 질문이 아니고, 현명한 질문도 아니고, 올바른 질문도 아니고, 핵심을 강조하는 질문도 아닙니다. 아주 간교한 질문이고, 교활한 질문이고, 사악한 질문이고, 핵심을 왜곡하는 질문입니다. 절대로 뱀이 했던 것처럼 간교한 질문으로 간교한 대화를 이어가서 어리석은 결론에 이르도록 말을 시작하면 안 됩니다. 뱀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축복을 강조하는 지혜로운 질문, 현명한 대화는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하시더냐?’라고 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것, 인간에게 제공된 것, 인간에게 허용된 것, 인간이 만끽할 수 있는 것, 인간이 즐거워하고 신나하고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법, 명령, 규범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마음과 기준과 가치와 개념에 근거한 사랑과 교제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이 아니라 인간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안내하는 권고입니다. 뱀과 여인의 대화는 뱀이 주도했고, 뱀이 의도한 대로 불행한 결과가 만들어졌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뱀의 발자취를 따르면 안 됩니다. 뱀처럼 하는 대화는, ‘하나님이 법을 주신 것 알고 있지,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 심판이 있는거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대화는 달라야 합니다. 기쁜 소식, 복음을 확인시켜주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주신 것 알고 있지? 하나님의 은혜와 복락을 누리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지?’, ‘하루하루가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일상이 감사와 평안이요, 우리네 인생 자체가 행복인 것을 풍성히 만끽합시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거룩한 더누림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와 세상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항상, 범사에 풍성히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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