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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 10] ‘우리는 그의 집이라’
Ⅰ. 하늘의 부르심
1.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표현은 기독교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자격을 갖추었으면, 수고와 노력을 해서 얻어낸 것이라면 ‘내가 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인간이 먼저 시작하는 경우는 없기에 ‘부르심을 받았다’, ‘구원을 받았다’, ‘은혜를 받았다’라고 모두 하나님이 먼저 ‘행하신 것’이고, 인간은 ‘받은 것’으로, 기독교에서 인간은 자랑할 수 없고,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3:1)이라는 표현은 기원과 출처와 근거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고, 더 나아가 ‘하늘의 것에 참여한다, 하늘의 것을 공유한다, 하늘을 것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께 바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종교입니다. 인간은 받고, 받은 것을 누리고 나누는 것으로 ‘참여한다, 공유한다, 함께 한다’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순서요, 기독교의 원리요 기독교의 내용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거룩한 형제들아’(3:1),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원리를 따라 사는 형제들아’입니다.
2. 모세에 대하여
히1:1~2절에서 옛적에 일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마지막에도 일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옛적에는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마지막에만 일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옛적에는 실수하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고, 마지막에 가셔야 겨우, 간신히 사역이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의도와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1절처럼 행하셨고 이어서, 여전히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2절처럼 행하셨습니다. 1, 2절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의 순서였고,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1절이 잘 진행되고 잘 성취되었고, 2절이 잘 진행되고 잘 성취되었습니다. 옛적에 모세는 자원해서 하나님의 온 집에서 일한 것이 아니고, 백성들 중에 가장 탁월해서 하나님께 발탁된 것이 아니고, 재주와 능력이 출중하여 하나님의 눈에 띄었거나, 하나님의 사역에 가장 적합하여 막중한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모세는 능력이 부족해서, 자질이 모자라서, 재주가 없어서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일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그저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맡긴 역할에 따라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사역을 한 것일 뿐입니다.
3.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
‘그가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3:3)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인격이나 신분을 대조한 것이나 자격이나 능력을 대조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와 그리스도는 동일하게 하나님이 부르시고 맡기신 사역, 역할을 똑같이 잘 감당했기에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3:2)입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모세와 같이 신실했습니다. 모세와 그리스도는 누가 더 신실했느냐의 차이가 없습니다. 모세와 아들을 대조하는 비유가 ‘집 지은 자’와 ‘집’입니다(3:3). 핵심은 주인이 마음먹고 ‘집’을 지었을 때 주인에게 소중한 것은 집을 지은 자가 아니라 주인의 의도와 기대에 맞게 지어진 ‘집’이라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집을 지은 자와 같다는 것이고 그리스도는 집과 같다는 차원에서 모세보다 그리스도가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Ⅱ. 그의 집이라
1. 집을 지은 이
모세가 집을 지은 자와 같고, 그리스도는 집과 같다는 것은(3:3) 비유일 뿐 모세가 집을 지은 사람이거나 그리스도가 집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집인데, 모세가 집은 지은 자이니까 그리스도를 지은 자가 모세’라고 오해할 수 있기에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3:4)고 강조합니다. 히1, 2장에서 아들의 사역에 대해 강조할 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성경을 아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인물, 가장 존경하고 있을 것 같은 인물, 가장 모범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은 인물 즉 모세를 소개하면서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3:2),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3:3),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3:4),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3:5),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3:6), ‘우리는 그의 집이라’(3:6)와 같이 ‘집’이 자주 등장합니다. 헬라어로는 같은 단어이고, 영어로는 모두 ‘house’로 번역되었고, 공동번역과 새번역은 6절 끝의 ‘우리는 그의 집이라’를 ‘우리는 하나님의 집안 사람들입니다’, 쉬운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천주교 성경은 ‘우리는 그분의 집안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2. 우리는 그의 집이라
본문에 나오는 ‘집’은 ‘집’(house)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정, 가족, 형제, 한 식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2, 3절에 나오는 ‘집’이라는 단어는 ‘집 지은 자’와 ‘그 집’이니까 말 그대로 ‘집’, ‘house’로 이해해도 됩니다. 5, 6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즉 신실하였다고 할 때의 ‘집’은 ‘house’가 아니라 ‘가정, 가족, 형제, 집안, 식구’를 의미합니다. 건물로서의 집이 나오는 이유는 단지 ‘집을 지은 자’와 ‘집’ 자체를 비교할 때 ‘집’ 자체가 훨씬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였을 뿐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집’ 즉 ‘가정, 가족, 형제, 집안, 식구’의 의미로 ‘집’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2장에서 강조한 내용이, 아들이신 예수께서 만물을 발아래에 복종하는 권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사역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때 십자가 사역을 행하기 위하여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셨다’고 할 때 ‘자녀’(2:14)가 나왔고, 그 결과로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2:11)에서 ‘형제’가 나왔습니다. 아들이신 예수께서 구원의 창시자로서(:10) 십자가 사역을 통해 마귀를 멸하시고(2:14) 죄인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 자신과 한 형제가 되게 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6절 끝의 ‘하나님의 집’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형제들이라’, ‘우리는 하나님 가정의 한 식구라’는 의미입니다.
3. 종으로서, 아들로서
모세와 예수를 비교하여 예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와 예수 모두 하나님이 부르고 세우셨고, 모두 맡은 사역과 역할에 신실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런 과정으로, 이런 순서로, 이런 절차로 일을 진행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섬세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이렇게 신실하게, 하나님이 이렇게 은혜롭게 사역을 행하셔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가정으로,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근원에서 나게 하사, 형제라 부름을 받을 수 있도록 존귀하게 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5절이 하나님이 옛적에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조상들에게 행하신 사역이고, 6절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행하신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순서에서, 하나님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절차에서 모세가 맡은 역할은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집에 대하여 종으로 신실하였다’(3:5)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 모세 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 즉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고 광야를 인도하는 일꾼의 역할을 신실하게 했다는 것이고, 모세와 하나님의 백성 즉 이스라엘 자체가 장래에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형제, 자매’가 될 것의 상징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종’, 또는 ‘일꾼’, 또는 ‘사역자’로 소개가 되고, 그런 구약의 과정, 모세의 사역을 거쳐 드디어 ‘그리스도’가 강림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입니다. 예수는 친히 육신을 입고 십자가 사역을 행하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여 맏아들로서 성도들과 형제가 되어 주셔서 ‘우리가 그의 집이라’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