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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OEUBCKtFqEc

 

 

 

 

 

 

 

[히브리서 강해 29] ‘의인은, 믿음은

 

 

. 서로 돌아보아

 

 

1. 행복한 삶

기독교의 핵심 주제, 하나님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 하나님이 가장 열심을 다해서 행하시는 사역, 하나님의 친히 수고하여 이루어내시어 완성하는 내용은 인간의 행복입니다. 우리말로 행복이라는 단어가 겨우 11번 나오지만 행복으로 번역된 원어는 원문에 다양하게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좋았더라라 해당하는 단어가 토브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하고 기대하고 원하고 바라는 대로 온전히 이루어져서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이 좋았더라이고 이것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쁨, 사랑, 온유, 즐거움, 감사, 선행, 평안 등은 모두 인간의 삶, 행복한 삶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이 넓은 땅이어서 주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서 좋은 것이 아니고, 에덴동산에 먹거리가 풍부해서 식량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즉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과 기준, 가치와 개념과 원리, 방식과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죄인이 된 후에 행복이 사라졌습니다. 부부 사이는 서로 원망과 책임전가가 일어났고, 형제 사이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 서로 살아가는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죄입니다. 죄의 마음, 죄의 기준, 죄의 가치, 죄의 원리, 죄의 방식이 문제의 핵심을 속이고, 해결 방식을 속이고, 결국 계속하여 인간을 불행하게 되도록 작용하고 있습니다.

 

 

2. 서로 돌아보아

사도행전 시대의 제자들의 사역과 편지에는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사역했던 3년에 대한 언급, 이런저런 위기에 대한 불안감과 힘든 상황에 대한 부담감에 대한 회고가 거의 없습니다. 복음 사역을 행하면서 경험하는 일들에 대한 불평불만도 거의 없습니다. 정작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예수의 부활에 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난감한지, 복음 때문에 잡히고 매 맞는 일들이 얼마나 억울한지 하소연 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결과로, 성령이 강림한 결과로 제자들이 복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복음이었고, 복음의 핵심은 예수의 사역이었기에 다른 일들을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의 결과, 복음의 열매를 누리고 있기에 복음사역이 즐겁고 기쁘고 평안하고 행복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근거, 자신들이 외형적으로는 어렵고 힘든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기쁘고 즐겁고 감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복음을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복음의 힘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4:14)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진 내용이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10:22)이고, 우리가 할 수 있게 된 것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10:24)입니다.

 

 

3. 어떤 사람들의 습관

10:25절에 어떤 사람들은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의 행동처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려면 본문에서 특별하게 지정되지 않은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반대로 특별하게 언급되어 있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면 됩니다. 10:22절의 우리는 죄 문제를 해결받은 새로운 피조물, 성도 즉 허다한 어떤 사람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 하나님의 원리와 가치와 개념과 방식과 능력으로 행할 수 있는 자, 서로 만나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수 있는 자입니다. 이 구원받은 성도가 아닌 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것,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겨야 하고, 내가 상급을 차지해야 하기에 겉으로는 사랑하고 격려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악한 마음을 품고 악한 술수를 행하고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가 실패하도록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아야 하는 모임,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하는 모임을 만들기를 싫어하고 참여하기를 싫어합니다. 남이 잘 되는 꼴을 보고 싶어하지 않고,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믿음은

 

 

1. 믿음을 가진 자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네가 믿느냐?’라고 질문을 하시거나 믿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또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 또는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노라라고 판단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를 따르는 유대인들은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에 믿음, 불신의 표현이나 개념은 매우 희귀하거나 어색한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이나 율법사들은 주로 네가 율법을 준행하였느냐!’라고 물었고 백성들은 내가 나면서부터 이 모든 것을 준행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거나 율법을 어겼나이다라고 대답했을 뿐입니다. 저들의 관심은 온통 자신들의 행동이었고 저들의 기준, 저들의 판단을 결정하는 근거도 오직 저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율법사들이 네가 율법을 준행하였느냐?’, ‘네가 정결하냐?’, ‘네가 거룩하냐?’, ‘네가 의로우냐?’라고 질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예수님이 네가 믿느냐?’라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무슨 의미인지,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행동에만 몰두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도 행동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애초에 예수님이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은 믿는지, 안 믿는지를 알아보려고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저들이 들어보지 않았고, 사용하지 않았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던 믿음을 언급하시면서 너희들은 행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너희의 방식으로는 너희가 하나님의 복이나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고는 대신 너희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역으로 즉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임한다는 개념으로 믿음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에서도 너희가 믿느냐를 질문하지 않고 믿음을 가진 자니라’(10:39)라고 선포해 주는 것입니다.

 

 

2. 의인은, 믿음은

기독교에서 믿음은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믿는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10:38절의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의인과 믿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인이 스스로, 자기의 수고와 노력으로 의인이 되는 수단이나 방법이 없습니다. 죄인이 스스로, 자기의 수고와 노력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이 없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되고,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개인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 그래서 성도가 받은 것 즉 성도에게 주어진 더 낫고 영구한 소유’(10:34)입니다.

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내가 믿음으로바라는 것들을 볼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알 수 있다고 믿음의 기능, 믿음의 역할, 믿음의 효과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무엇이냐 즉 믿음의 정의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것들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영생, 크고 높고 강하고 세고 귀하고 풍성한 것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사랑, 자비, 온유, 진리, 인격, 신실함, 지혜 등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기에 믿음은 하나님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개인이 스스로 만들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것,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