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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날짜 2025-06-01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JDbpbBPz2aw

 

 

 

 

 

 

 

 

[히브리서 강해 44] ‘즐거움으로

 

. 유대교의 오해, 기독교의 오해

 

1. 구약과 신약의 대조

히브리서는 전체 내용이 두 가지를 계속 대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1:1~2)입니다. 기억하셔야 하는 것이 옛적에도 하나님이 하셨고 모든 날 마지막에도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에서 역사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신약에서 역사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동일한 분, 같은 분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대조하고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거나 참과 거짓을 가리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구약과 신약이 다르다고 할 때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왜 다른지를 잘 설명해야 합니다. 혹자는 구약에서는 물질적 축복이 강조되고, 신약에서는 영적 축복이 강조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과 우상을 섬기는 애굽의 바로 중에 물질적으로 풍부한 사람은 바로였습니다. 어머니의 태중에서 택함을 받은 야곱, 동생이면서도 장자권까지 얻어낸 야곱과 그의 형인 에서 중에 부유한 사람은 에서였습니다. 다윗의 가문출신인 르호보암이 왕조를 이어가고 성전을 소유하고 있는 남 왕국과 솔로몬의 신하 출신, 에브라함 족속 출신, 과부의 아들인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우상을 섬기기로 작정한 북 왕국 중에 더 번성한 것은 북 왕국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바로 중에 권세 많은 바로보다 아브라함을 복이 있다고 하는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에서와 야곱 중에 부유하고 평탄했던 에서보다 야곱을 복이 있다고 하는 이유는 야곱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요 도리어 하나님과 관계된 것 즉 영적인 것입니다.

 

2. 제사, 은혜

혹자는 구약에서는 율법 또는 제사가 중심이었고, 신약에서는 은혜가 중심이었다.’라며, 근거로 바울이 서신서에서 율법으로는, 행위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한 구절을 제시합니다. 구약에서 제사제도가 시행되고, 바울이 은혜를 강조한 것은 맞지만 구약과 신약을 율법(제사)과 은혜로 대조하면 안 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시행하신 제사 제도의 핵심은 제사나 제물이나 율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이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제사 제도를 말씀해 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은혜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고 심판하시는 분으로 냉정하게 공의만을 강조하셨다면 애초에 제사 제도를 만들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시행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제물을 엉터리로 바쳐도, 율법을 준행하지 않아도, 심지어는 하나님을 잊고 버리고 떠날 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구약의 중심도 은혜, 신약의 중심도 은혜입니다.

 

3. 유대교의 오해

구약 내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이스라엘, 그래서 제물도 드리지 않았고, 제사도 행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가끔씩 자기들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간혹 제물을 드릴 때면 부정한 제물, 흠이 많은 제물을 바쳤던 이스라엘이 나라도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었다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돌아오고, 성전도 새로 짓고, 약간의 정치와 종교의 자율성을 확보하게 되었을 때에 만든 신흥 종교가 바로 유대교입니다. 유대교의 공로는 종교로 백성들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지만 유대교의 가장 명백한 오점은 하나님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왜곡하였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지 않고 도리어 제사의 효능을 강조했고, 자신들이 율법을 준행하는 행동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 상급으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뜻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율법에만 집착해서, 쓰여진 대로만, 기록된 대로만 따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하나님이지만 예수님과 유대교의 신앙은 전혀 달랐고, 똑같은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예수님의 원리와 유대교의 원리는 전혀 달랐고,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율법)이지만 예수님의 설명과 유대교의 설명은 전혀 달랐습니다. 바울은 구약의 하나님의 사역과 복음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대조하여 비교한 것이 아니고, 구약의 제사 제도와 복음서의 십자가 사역을 대조하여 비교한 것이 아니고, 구약의 율법과 복음서의 은혜를 대조하여 비교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오직 유대교가 오해하고 있는 율법의 의미와 예수님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은혜의 복음을 대조하여 비교한 것입니다.

 

4. 기독교의 오해

예수님과 유대교가 논쟁한 주제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입니다. 즉 유대교는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즉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서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사고방식, 종교양식을 고수하고 있었고 반면에 예수님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시대가 훨씬 지난 후에 유대교가 변했습니다.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어 자기들의 방식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유대교에 없던 선포가 등장한 것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입니다. 율법이나 계명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특혜를 받았으니, 특혜를 받은 만큼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짊어져야 할 의무가 바로 율법을 준행하는 것이다!’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사역과 신약의 예수님의 사역은 서로 다른 것이 전혀 아닌데 마치 구약과 신약이 다른 것처럼 오해를 만든 주범은 유대교였고, 정작 유대교는 그 오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처음에는 율법을 수단과 방법으로 왜곡했고, 나중에는 의무로 왜곡해 버렸는데 유대교가 오해한 내용을 여태까지 부여잡으면서, 유대교의 왜곡된 주장이 마치 옳았던 것처럼, 구약과 신약을 대조하고, 율법과 은혜를 대조하고, 제사와 십자가를 대조하는 어리석은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라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즐거움으로

 

1. 찬송의 제사, 이 같은 제사

본문에 찬송의 제사’(13:15), ‘이 같은 제사’(13:16)가 나오지만 제사 제도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며, 비록 제도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내용은 남아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포함한 대부분의 세상종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종교 제도의 특징은 인간이 수고한다, 인간이 희생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역원리인 은혜의 특징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기에 인간은 수고하지 않아도 되고, 힘들지 않아도 되고, 어렵지 않아도 되고, 희생하지 않아도 되고, 복잡하지 않아도 되고, 불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사역과 신약의 예수님의 사역이 대조가 되는 것이 아니고,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십자가가 대조가 되는 것이 아니고, 죄인들이 시행하는 종교 제도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 원리가 대조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예물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바쳐야 하는 희생 제사가 아니라 어디서나, 언제든지, 누구든지 예수가 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찬송의 제사로 충분하다고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2. 즐거움으로

기독교는 죄를 상대하는 것이고, 죄를 이겨야 하는 것이고, 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종교 행위가 아니고, 종교 의식이 아니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13:7, 17)이 누구이든 그들의 원리와 마음과 가치와 방식은 예수를 본받아 행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예수의 뜻을 따르고, 예수의 마음과 원리에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죄의 원리를 따르면 근심으로 하는 것이요, 예수의 은혜를 따라 사역하는 것은 즐거움으로하는 것입니다(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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