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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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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말씀 : 미가 1 ~ 7

. 하나님의 구원

 

1. 악의 일관성

미가는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성경은 창조시대, 족장시대, 광야시대, 정착시대, 왕국시대, 제국시대별로 다양한 상황적 배경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미가가 활동한 시대에 지적되는 죄, 악의 내용은 다른 시대, 다른 상황, 다른 지역에서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애초에 죄는 하나님이 제공한 최고, 최선, 최적의 상태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인간이 처한 상황과 조건이 악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악이 인간의 상황과 조건에 영향을 미쳐 더욱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상황을 변화시켜 인간의 삶을 유익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물론 잠간의 시간에, 일정한 공간에, 부분적 계층에게 유익을 줄 수는 있지만 곧 죄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신실성

하나님은 인간에게 , 규례, 명령을 주신 적이 없으시며, 인간의 행동에 대해 심판자로 반응하지 않으시고, 징계, 형벌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창조된 인간에게는 전적인 자유를 허락하셨고, 타락하여 죄인이 된 인간에게는 철저하게 은혜를 적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란 재판적인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행동, 삶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려 죄인으로 하여금 삶을 직시하게 하고 바르게 살 수 있도록 계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인간에 대해 존재적인 죄인이라는 개념이 없고 단지 죄를 범한 행동적인 죄인으로 취급하기에 죄에 상응하는 형벌적 조치와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교화적 조치를 행하면서 개선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존재적 죄인임을 아시기에 형벌과 교화로 죄인의 존재를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고 계십니다. 인간을 대하실 때 오직 은혜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원리가 세상의 어떤 존재나 방법과 비교되지 않는 특성입니다.

 

3. 죄의 결과

인간이 타락하여 죄인이 되었을 때 이미 죄의 결과를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형벌과 관계없이 죄로부터 결과가 임한 것입니다. 존재적으로, 내용적으로 죄인이 되어서 온전히 죄적으로만 인식하고 행동하고 죄의 결과를 당하며 사는 것이 이미 죄에 대한 형벌입니다. 용서의 사전적 의미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줌입니다. 죄를 지었고 아직 결과가 임하지 않았을 때에 결과가 임하지 않도록 취해주는 조치가 용서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에 이미 결과가 임했다면 용서라는 조치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죄의 형벌적 분량을 일정부분 경감하여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때에도 형벌을 부여한 쪽에서 경감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에 용서라는 조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형벌을 내리신 적이 없기에 용서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고, 죄의 결과를 더 이상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치도 하나님이 주신 형벌이 아니기에 용서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4. 속죄, 죄사함, 구원

하나님은 제사 제도를 통해 죄인들로 하여금 속죄를 하게하셨고 사함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속죄의 사전적 의미는 금품이나 노력으로 지난날의 죄나 과오를 씻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속죄는 하나님께 죄를 빌고 용서를 구하라는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함을 받는 것은 인간의 속죄하는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하나님이 형벌을 취소하거나 경감하여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속죄죄를 덮다, 가리다이고, ‘사함을 받는 것은 죄가 가려져서 죄의 결과가 임하는 것을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눈을 감아 죄를 보지 않는 것이며, 죄인에게 죄의 결과가 지속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입니다.

죄는 인간의 행동이고, 죄의 결과는 오직 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인간을 죄의 결과로부터 피할 수 있게 하는 행동을 성경은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원의 사전적 의미는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이고, 종교적 의미는 인류를 고통과 죄악과 죽음에서 구하는 일입니다.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용서, 죄사함보다 구원이라고 표현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바르고 풍성하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 화 있을진저 (1 ~ 3)

 

1. 죄와 허물

여호와께서 처소에서 나와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야곱의 허물이 사마리아, 즉 북왕국에 풍성한 새긴 우상들, 목상들입니다(1:7).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유다나 예루살렘도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1:9). 성전을 중심으로 행하지는 각종 종교행위들과 토라에서 권고된 절기와 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막는 것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고’(2:1),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2:2)입니다. ‘내 백성이 원수같이 일어나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기며 내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는도다’(2:8~9)입니다.

 

2. 비난과 호소

성경은 죄인이 행한 죄의 결과로 임할 결과를 하나님의 조치,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계획(2:3)으로 자주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예언에 대해 너희는 에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고 비난합니다(2:6). 하나님은 어찌 여호와의 영이 성급하시다, 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 하겠느냐, 나의 말이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유익하지 아니하냐고 호소하십니다(2:7).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리 징계적 표현을 사용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와 같은 회복의 예언입니다(2:12~13).

 

3.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조치의 목적은 계시즉 하나님을 알게 하고 죄를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은 족장, 사사, , 선지자 등 직분과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이 이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는 사역에 부름받은 것입니다. 이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아는 자로,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과 원리로 행하는 것 즉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3:1)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은 대표도 리더도 책임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직분을 얻는 순간 돌변하여 마치 자격을 갖추고 능력이 있는 존재로 착각하여 죄인의 본색을 드러냅니다.

야곱의 우두머리와 이스라엘의 족속의 통치자들이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며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3:1~3),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3:5),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3:9),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3:11)입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죄의 결과가 임할 것입니다(3:6~8).

 

 

. 하나님의 회복 (4~7)

 

1. 하나님의 회복

하나님의 예언은 언제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회복선언으로 끝납니다. 죄인들의 반성, 회개, 뉘우침, 뼈를 깎는 노력 등을 일체 요구하지 않습니다. 죄인은 죄로부터 벗어날 방법도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직전까지 정죄와 심판을 선언하다가 결국에는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입니다(4:1~5).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4:6~8), ‘베들레엠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게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5:2~6),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네 손이 네 대적들 d l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5:7~9)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상과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인간에게는 은혜가 되는 것이고, 인간이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자신이 받을 수 없는 것을 선물로, 상으로, 복으로 받은 것입니다.

 

2. 여호와의 변론

여호와의 변론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가르침입니다(6:2). 하나님의 질문은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6:3)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큰일을 행하셨기에 애굽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면 여호와께서 의롭게 행하신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6:4~5).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이유는 오직 하나 인간들로 하여금 바르게, 참되게, 옳게, 행복하게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죄인의 생각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입니다(6:6~7). 죄인들에게는 은혜의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6:8). 이것이 은혜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은혜받은 결과, 열매입니다. 신앙을 하나님을 향한 종교 행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선포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니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7:7~20)는 죄인이 행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죄인은 자신이 죄인인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인간의 간구와 기도와 찬양의 양식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 죄인에게 이루어 주실 일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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