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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날짜 2025-11-16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ruzAIia3s0g

 

 

 

 

 

 

 

 

 

 

 

[창세기 강해 19] ‘네가 어디에, 어찌하여

 

. 죽으리라

 

1. 바로, 하나님

2:17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오해는 먹지 말라를 법으로, ‘네가 먹는 날에는을 법을 어기는 것으로, ‘반드시 죽으리라를 징계와 처벌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이런 유형으로 말하고, 처리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런 규정, 이런 절차, 이런 결말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바로를 찾아가 9번씩이나 이적을 행하여 애굽과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큰 곤란을 당했습니다. 바로가 너무나 화가 나서 모세에게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10:28)고 합니다. 바로는 모세의 행동을 통제하는 명령을 내렸고 어길시에는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입니다. 바로가 한 이 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구조와 내용 즉 먼저 금지 명령이 나오고, 다음에 그것을 어기는 것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상응하는 조치가 나오는 것이 창2:17절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구조와 내용이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와 같은 부류의 인간, 이런 유형의 권력자, 이런 패턴의 지배자, 통치자, 심판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문장 구조가 똑같아도, 아무리 구절의 양식이 똑같아도, 아무리 사용된 단어가 똑같아도 절대로 똑같은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말하는 자의 존재, 말하는 자의 정체, 말하는 자의 신분, 말하는 자의 속성, 말하는 자의 성품, 말하는 자의 차원, 말하는 자의 원리, 말하는 자의 마음, 말하는 자가 대상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말한 자보다 말한 내용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다가 가장 중요합니다.

 

2. 무거운 짐에서 너희를 빼낸 여호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광야에 있는 모세를 돌려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과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출애굽시켜주겠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이 선뜻 따라나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니까 과연 출애굽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고, 애굽을 나간다고 하면 어디로 간다는 것일까, 가나안으로 간다고 하면 애굽보다 더 나을까, 당시 애굽이 가장 강대국인데 애굽의 간섭을 벗어나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현실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출애굽을 했다고 했을 때 백성들을 위해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수고를 해 준 신(하나님)이 과연 백성들을 편하게 할까? 앞으로도 계속 신이 수고하면서 백성들에게는 쉬라, 평안하라, 행복하라고 할까? 이런 고민을 하고 망설일 때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소개하시는 내용이(6:3~7)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지라입니다.

 

3.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신 것은 너희가 순종을 잘해서, 너희가 충성을 해서, 너희가 복받을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듣고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일하시겠다, 백성들을 위해 수고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서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광야는 혹자들이 말하는 시련과 연단의 장소, 고독과 외로움의 장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처절한 장소, 하나님이 시험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기껏 애굽에서 신음하던 소리를 듣고,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빼내고, 그들의 노역에서 건져내고 다시 시련과 연단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인간의 생명을 책임지고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너무 고생했고, 너무 힘들었고, 너무 노역에 지쳤으니까 이제는 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수고해서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줄테니 마음 편히,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먹고 푹 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광야 내내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이것을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고 하셨습니다.

 

. 네가 어디에, 어찌하여

 

1. 축복의 예언, 저주의 예언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기록된 대로만 이해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원리에 기초하여 하나님 말씀의 의미와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예언에 대해 복을 주겠다고 하시니 축복예언’, ‘화 있을진저가 나오니 저주예언이라고 합니다. 물론 축복하는 내용의 예언이 있고, 저주하는 내용의 예언이 있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에 따라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하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 저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저주의 예언은 하나님이 백성에게 직접 저주를 퍼붓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죄를 지은 자들에게 임하는 결과는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주를 내렸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벌을 내리시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인간의 행동에는 저절로 그런 상황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또한 축복예언에 대해서도, 인간들은 마치 자신들이 축복을 받을만한 일을 할 수 있는 줄로 착각하고 서로 복 받을만한 일을 해서 복을 받자고 권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인간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단이 없고 방법이 없고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기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은혜로 축복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과 저주로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2. 네가 어디에, 네가 어찌하여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저주 선언이 아니고, 하나님이 징계나 형벌을 내리겠다는 선언도 아닙니다. 단지 인간의 행동에 따라 인간에게 임하게 될 결과를 알려주는 사전 공지입니다. 여자와 남자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즉각적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서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동산 나무에 숨은지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두려워할 만한 어떤 말도,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고,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움을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험상궂은 표정을 지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노발대발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행동에 따른 결과가 임했고,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남자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 여자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물으신 것은 질문도 아니고 취조도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죄인을 추궁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누가 먼저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누가 더 심하냐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3. 찾아오신 하나님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낯을 피하여 숨은 인간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먼저 하나님께 나아온 것이 아닙니다. 선하고 의로운 행동을 한 후 자신만만하게, 당당하게 하나님을 찾아와 상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 스스로 잘못된 것을 인식하고, 자신들에게 불행한 일들을 닥치는 것을 직감하고, 자신들이 먼저 숨으려고 했고 실제로 숨어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이 먼저, 하나님이 직접 다가오신 것입니다. 인간을 도와주기 위해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인간에게 은혜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일말의 반성도 없고,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도 없고, 앞으로 변화하겠다는 다짐도 없이 서로 남의 탓을 하기에 급급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세와 태도에 연연하지 않고 신실하게 인간을 향하여 자비와 온유와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헌신으로 인간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변화시켜 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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