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Extra Form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XJ7JmR9814I

 

[히브리서 강해 89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 아들을 통하여

 

 

1. 하나님이 하신다

성경의 스토리를 살펴 볼 때 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다양한 사역들을 상고할 때마다 기독교가 강조하는 내용이 하나님이 하신다!’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사람들 중에 스스로 하나님과 관련된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완성한 경우는 한 명도, 한 번도 없습니다. 등장인물 모두 하나님의 사역에 초청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역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강조하기 위해 대조되는 사건이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하나는 1장에서 제자들이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자고 하면서 자격 요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1:21~11). 자기들이 뽑힐 때는 아무 기준이 없었는데, 자기들이 예수님과 함께 할 때에 예수님에 대해,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는데, 심지어는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도 예수의 십자가 사역의 의미에 대해 모르고 있으면서 조건을 내세웁니다. 그렇게 뽑힌 사람이 사역하는 모습이 사도행전에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8, 9장에서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던 사울을 부르는 장면입니다. 모든 제자들이 대놓고 하나님에게 반대를 했지만(9:13~14) 사도행전은 사울의 복음 전도 사역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2. 아들을 통하여

기독교에서 일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히브리서는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강조하는 것이(1:1~2) 가장 정확한 표현, 가장 모범적인 표현, 가장 기독교적인 표현입니다. 혹시 아들 말고 따로 추천하실 분계신가요? 아들보다 더 나은 분을 알고 계십니까? 혹시 하나님이 하신 사역이나 아들이 하신 사역보다 더 중요한 사역, 더 의미있는 사역, 더 가치있는 사역에 대해 언급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개신교를 형성한 종교 개혁자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기독교의 내용을 새로 만든 사람이나 복음을 수정하거나 보완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셔서 완성한 복음을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1. 예수를 보니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죄와 다릅니다. 기독교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가치, 새로운 개념, 새로운 의미, 새로운 기준, 새로운 마음, 새로운 원리, 새로운 방식 등 온통 새로운 것, 죄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서 구원받은 사람, 성도에 대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전 것’, ‘새 것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서 새로워졌다는 것이 아니라 세월과 상관없이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1, 2장에 나타난 기독교의 거룩(다름)을 소개하면 첫 번째, 기독교는 하나님이 직접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친히 아들을 통해 일하시는데, 그 아들은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는 권세가 있으시지만 권세로 일하시지 않고 십자가 사역으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들 예수는 단순히 잠깐 십자가 사역을 행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2:14)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2:17)을 행하셨습니다. 아들이신 예수께서 굳이 이렇게 행하신 이유는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2:11)입니다. 하나님은 원래부터 이렇게 하셨고, 정말 인간을 소중하게, 인격적으로 대해주시는 분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

아들이 행하신 사역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2:14~15)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금지하는 법을 주셨고, 인간들이 법을 어겼기에 하나님이 형벌을 내리셨다고 오해합니다. 이런 생각이 오해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법을 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나는 창조주, 너는 피조물이라고 격차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명령하고, 너는 복종한다라는 관계로 설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으로서 그렇게 비인격적인 관계, 비인격적인 지시, 비인격적인 조치를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해대로라면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잔뜩 화가 나 있으셔야 하고, 죄인들은 겁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하나님께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빌기도 하고, 용서를 해주시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애걸복걸을 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성경에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범죄자 다루듯, 벌을 받고 있는 사람 다루듯 하지 않으셨습니다.

토라(율법)에는 죄를 지은 것을 깨달으면 예물을 가지고 오라고, 그러면 사죄를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시행하라고 한 때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적용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율법대로 아주 엄격하게 백성을 다루셨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사사기에서 백성들이 제물을 가지고 오고, 대제사장이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이 사죄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까? 왕정사 시대에 잘못한 왕들이 제물을 가지고 오고, 대제사장이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이 용서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까? 만약 하나님의 토라가 법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법을 적용하셨다면 한 명의 사사도 등장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없고, 하나님의 제사장도 없는 북 왕국의 이야기는 아예 없었어야 합니다.

 

 

3. 마귀를 멸하시며

만약 하나님이 주신 토라가 이었다면, 그 누구보다 하나님이 가장 준엄하게 지키셨어야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전혀 법대로 행하지 않으셨다면 그것은 애초에 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법을 강조하지 않고, 법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운운하지 않고 죄(마귀, 사탄)를 지적합니다. 마귀가, 죄가, 사탄이 인간을 미혹하였고, 죽음의 세력을 잡고 있으면서 죄인들을 한평생 죄에 매여 죄의 종노릇을 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문제가 마귀이니 해법은 마귀를 멸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죽음의 세력을 잡고 있으니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하여 마귀를 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기를 두려워하므로 한평생 사단에게 매여 사단의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예, 하나님의 권위에 집착하는 분이 아닙니다. 어떻게 공의를 유지할까, 하나님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후에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일은 없으며, 하나님이 스스로 모순에 사로잡혀서 어떻게 해야 갈등하는 일은 없습니다.

 

 

4.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아주 자세하고 설명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아주 간단하게 권면합니다. 1장에서 아들에 대하여 아주 독특하게, 아주 대단하게, 특별히 천사와 대조하면서 소개한 후에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이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2:1), 2장에서 아들의 사역에 대해 아주 다양하게, 아주 자세하고, 아주 순서적으로 잘 설명한 후에 권면하는 것이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내용이요 순서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일을 하셔서 결과, 결실, 열매를 만들어 내시고, 인간에게 은혜로 주신 후에 알라’, ‘누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없으면 기독교가 성립되지 않으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없으면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반응할 근거가 없어지며, 하나님이 주신 복음이 없으면 성도가 죄인과 다르게 행동할 거룩의 내용이 없습니다. 예수로 인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