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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날짜 2025-09-14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vfUcHg-ljOY

 

 

 

 

 

 

 

 

 

[창세기 강해 11] ‘임의로 먹되

 

. 임의로 먹되

 

1. 하나님의 말씀

1, 2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세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르시되하나님의 선포입니다. ‘이르시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거나, 어떤 내용을 전달하거나,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모습이 연상되지만 창조하실 때에는 아직 상대가 없기에 누구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어떤 내용을 전달하거나 알려주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실 때 빛이 어디엔가 있다가 그 말씀을 듣고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없을 때에 빛이 있으라는 빛을 만들어 내시는 것, 빛이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1:22, 28)입니다. 이미 창조가 이루어져 복을 받는 대상이 존재하고, 창조하실 때에 그 존재에 맞는 속성과 기능과 내용을 온전하게 해 주신 것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의도에 맞게 풍성하게 드러나고 맺어지게 하시는 복 선포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2:16)입니다. 우리말로는 명령하셨다’, 영어로는 ‘commanded’, 또는 ‘warned’라고 표현했습니다.

 

2. 하나님이 명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모든 피조물 위에 크고 높고 강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피조물과 차별화를 강조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권위와 권세를 주장하며 피조물들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어떤 표현도 하지 않으셨고, 어떤 피조물도 감히 하나님과 필적하거나 하나님과 대적하거나 하나님과 견줄 수 없다고 엄격하게 선을 긋지도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스스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창조하심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같은 성품과 속성과 인격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고 존중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신에 대해서 언급할 때 창조주, 권위자, 권능자, 권력자, 주권자, 강자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발상, 지극히 죄적인 기준에 근거한 것입니다. 죄인들은 늘 비교를 하고, 차별화가 만연되고 있고, 우열을 가리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고, 상하관계 또는 지배와 압제 관계가 전형화 되어 있기에 경쟁을 하면서 상대적 우위를 강조하는 표현들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죄적 기준, 죄적 표현을 따라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해 소개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창조주, 권위자, 권능자, 권력자, 주권자, 강자 같은 것들이 아니라 목자, 농부, 아버지, 주인 같은 것들입니다. 비교나 경쟁이나 우위적 표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들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수고하여 인간을 창조하셨고, 친히 은혜로 인간에게 복을 주셨고, 또 인간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려고 할 때 명령일까요?

 

3. 임의로 먹되

2:16절에는 먹으라’, 17절에는 먹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은 어느 것을 더 강조하셨을까요? 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왜곡과 변질과 실수가 총 동원되고 오랜 기간 축적되어서, 하나님은 권위자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신다는 생각하니까, 명령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17절이 하나님이 주신 법이다라고 규정하기에 도달하고, 3장에서 인간의 불순종이나 범죄라는 설명이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징계와 형벌을 내리셨다는 왜곡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의 강조는 먹지 말라가 아니라 임의로 먹되입니다. 베풀어주시는 99가지는 소홀히 하고 주의를 주는 1가지에 집중하는 것은 제공해 주시는 분의 선의, 호의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동산 각종 나문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에서 임의로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무엇이든지, 얼마든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만큼, 다 먹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강조하려고 표현을 바꾸어 가며 3번을 언급했습니다.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라고 한 내용의 끝에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라 되리라’(1:28~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번역을 바꾸어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행복 동산에 두어 그것을 만끽하며, 누리며, 지속하게 하시고’(2:15), 그리고 또 다른 내용으로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를 네가 마음껏 먹되’(2:16)입니다.

 

4. 만나, 오병이어

하나님은 주시는 분, 아주 푸짐하게, 풍성히 주시는 분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만나입니다. 만나가 내리는 모습이 그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16:4)입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조금만 주시거나, 배급을 주시거나, 주는 척을 하신 것이 아니라 풍성히 주셨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16:16),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16:18), ‘무리가 아침마가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16:21)이라고 나오지만 만약 먹을 만큼만 거두었다면 남은 것이 없었을 것이고, 남겨둔 것이 없을테니 그 다음날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지도 않았겠지만 실상은 많이 거두었고 남았습니다(16:20). 하나님이 말씀하신 먹을 만큼만의 원래 의미는 먹을 수 있는 만큼또는 먹고 싶은 만큼입니다. 하나님이 먹을 만큼외에 더 이상 거두지 못하게 막으신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오병이어입니다. 떡과 물고기에 축하사신 후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6:11)입니다. 사람들이 우선은 배불리 먹었고, 그 다음은 가지고 갈 수 있는 만큼 싸갔을 것이고 그러고도 남을 만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에게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2:16~17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자상하신 하나님, 온유하신 하나님, 인격적이신 하나님에 대한 소개입니다.

 

. 좋지 아니하니

 

1. 끼워 넣기

1, 2장에는 인간 창조에 관한 내용이 세 번 나오는데 인간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을 소개하기 위해서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첫째 창1:26~27절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가치와 존귀와 인격을 베풀어 주셨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둘째 창2:7절에는 1장에는 없는 내용, 인간이 창조되는 과정이 소개되어 그만큼 하나님이 인간을 신중하게, 정성을 들어 창조하셨다고 강조합니다. 셋째 창2:18~25절의 핵심 내용은 당연히 남자와 여자, 돕는 배필에 관한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돕는 배필의 관계에 대한 내용인 18절과 21절 사이에 19절과 20절을 끼워넣은 것처럼 구성한 이유는 남자와 여자에 관한 내용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는 각종 들 짐승들과 공중의 각종 새들이 모두 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7)로 짝이 있지만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는 중에 2:18절에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라고, 아직 여자가 창조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여자가 창조되어야 하는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19절이 기록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름 짓기와 관계된 것입니다. 아담이 단순히 생물들을 호칭하는 것이 아니라 각 생물의 특성에 합당한 이름을 짓는 것의 절정이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셨을 때에 아담이 여자에 대해 부르는 것에서 확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2. 좋지 아니하니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부정적인 표현이 좋지 아니하니’(2:18)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에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즉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목적과 기대에 합당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만 소중히 여기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이기에, 하나님이 소중이 여기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과 인격을 소유한 존재이기에 그 인간이 살아가는 삶 또한 소중하고 존귀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이고, 하나님의 기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