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_HkNjIYsl4Q
[창세기 강해 14] ‘간교하니라’
Ⅰ. 하나님 이야기
1. 창조 이야기
창1, 2장에 창조가 소개되고, ‘무에서 유의 창조가 이루어졌다, 육일 동안 창조가 이루어졌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창1, 2장의 내용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모순이나 충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제에 대한 관점이 다르고, 강조하려는 포인트가 다른 것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창조와 관련된 신화들이 있지만 다루는 내용의 규모가 너무 작고, 비논리적이라 신화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오직 성경만이 인류 역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세상의 기원에 대한 논리적인, 체계적인, 광범위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얼마를 하든, 누가 하든 도무지 인간이 알아낼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계시로 알려줍니다. 대신 인간이 연구하고, 탐구하고, 조사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합니다. 그런 것은 학자들이 연구해서 알려주면 잘 듣고 잘 배우면 됩니다.
2. 하나님 이야기
창1, 2장은 세상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창조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내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창조를 하나님이 계획하셔서 하나님이 진행하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세상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알고 계시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배워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내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실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알고 보니 바른 내용이 아니어서 무효가 된 적이 없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난 후 마음이 변하여 철회하는 경우가 없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막상 실행하려고 할 때 너무 버거워서 완성하지 못하신 경우가 없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 어느 누구, 어떤 존재, 어떤 세력, 어떤 상황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하게 성취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것을 알고 이것을 인정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라는 내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창조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주셨습니다. 또 인간이 먹을 것을 아주 풍성히 주시면서,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는 대로 마음껏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적 존귀와 가치와 인격과 품위를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마음과 기준과 개념과 원리와 방식과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기에 인간이 존재하고 향유할 수 있게 된 것들입니다.
3. 비종교적인 종교
기독교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시는 분이지 결코 인간에게 받는 분이 아닙니다. 창1, 2장은 세계에 있는 모든 종교들의 전형적인 틀을 완전히 깨버립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는데, 활동하시는데 별도의 모습, 형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중에 어느 일부를 신성화하지 않으며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다.’라고 말하는 지역이나 장소가 없습니다. 그곳을 소중히 여기고, 출입을 금하고, 엄숙과 경건을 유지해야 하는 지역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받으실 것이 없습니다. 필요가 없고, 쓸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섬김을 받지 않으시기에 창1, 2장에는 종교 양식, 종교 행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신앙에는 ‘이것이 있으면 기독교다, 이렇게 하면 기독교다’라고 소개할 수 있는 종교적 패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종교는 신이 신성한 곳에 거주하고 있기에 인간이 신에게 나아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로 오시는 것이지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하게 예수님도 먼저 인간에게 오셨습니다. 인간 중에 자격이나 조건을 갖춘 소수에게만 오신 것이 아니요, 종교적 행사에 참석하는 자에게만, 종교적 행위를 실천하고 있는 자에게만 오신 것이 아니요, 예수님이 모든 사람, 모든 인간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은혜가 필요한 자에게 나아가시고, 예수님이 먼저 말 그대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과 만나는 사람들이 거쳐야 하는 절차가 없었고, 은혜를 받기 위해 치루어야 하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종교적 장소에서, 종교적 복장을 하고, 종교적 순서에 따라 종교적 행위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와 비교하면 매우 혁신적이고 새로웠지만 구약과 비교하면 여호와 신앙은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 기독교는 거룩한 종교입니다.
Ⅱ. 간교하니라
1.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살피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보살피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집도 절도 없이 풍찬노숙 하시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입니다. 인간은 애초에 혼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함께 어울려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을 주셨습니다. 남자가 먼저냐 여자가 먼저냐를 따질 것이 아니고, 남자는 도움을 받는 존재요 여자는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주장을 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고, 우열을 나누는 것이 아니고, 차별을 두는 것도 아닙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니라’, 이 구절이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라도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인격, 동등한 가치, 동등한 수준으로 서로를 존중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상사와 부하의 관계, 동료의 관계, 동네 지인의 관계 등등 참으로 다양한 관계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이 모든 인간의 관계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것이 바로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입니다. 창조에 관한 내용, 인간의 삶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는 창1, 2장의 마지막이 이 구절로 결론을 맺는다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가장 행복한 관계, 가장 평안한 관계, 가장 화목한 관계, 가장 친근한 관계의 핵심이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를 이해해야 가능하고, 상대를 매우 존중해야 가능하고, 상호 간에 진실을 다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2. 간교하니라
창3:1절에서 우선은 뱀은 진짜 뱀이냐 아니면 사단을 상징하는 것이냐를 따지지 말고, 과연 하나님이 간교한 것을 창조하신 것이 정당하냐 아니냐도 따지지 말고, 왜 남자에게가 아니라 여자에게 말을 걸었느냐고 따지지 말고, 남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여자는 남자에게서 전달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도 따지지 말고 일단은 그냥 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뱀은 여러 말을 한 것이 아니고, 길게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아주 짧고 간단하게 한 마디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여자는 뱀이 자기를 속이려고 한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아니면 그냥 뱀과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여자는 이 순간에 뱀을 의심했어야 하나요? 이 사건을 풀이하면서, 해석하면서, 설명하면서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가장 크게 속은 존재는 모든 인간입니다. 모든 인간이 속은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다, 명령이다, 규범이다’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오, 인간을 소중히 대해주시는 분이요, 인간과 교제하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과 대화요 소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풍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하나님의 법으로 오해한 것이 인간이 간교한 자에게 속은 가장 치명적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