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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날짜 2025-10-26

 

 

 

 


아래의 URL을 클릭하시면 유튜브 영상으로 설교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Tr0iGSqf4QI

 

 

 

 

 

 

 

 

 

 

 

 

 

[창세기 강해 16] ‘반드시 죽으리라

 

. 너희 아버지

 

1. 하나님의 교훈

복음서를 보면 유대교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규정하고, 율법을 준행하기 위해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가족도 무시하고,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쓰러져 있었을 때 제사장이 전혀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고, 배고픈 사람이 벼 이삭을 잘라먹었다고 비난을 하고, 병든 자를 고쳤더니 다른 날에 하고 안식일에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종교가 백성들에게 무슨 유익을 주었습니까? 이 종교가 그렇게 강조하는 신, 유대교의 하나님이라는 신이 백성들에게 무슨 혜택을 주었습니까? 이 종교가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지극정성을 다해 준행하려는 율법이 백성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었습니까? 유대교가 가장 치명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일하신 분이고, 하나님이 지엄하신 분이고, 하나님이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분인데 그 하나님이 법을 주셨으니 인간은 무조건 이 법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법을 어기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명백한 형벌이 임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습니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나 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이 직접 법을 집행하고 직접 심판을 하고 직접 형벌을 내리는 모든 과정을 종합적으로 관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심판자가 인간을 직접 지켜보고 있고, 이 심판자가 준엄하게 법을 집행하기에 이 법체계에 속해있는 사람이 가장 우선시 하고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법이 되어버립니다. 유대교와 예수님의 대화가 어긋나는 이유는, 유대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인식했고,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주시는 분으로 생각했고,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안내와 가이드, 교훈으로 수용하고 따랐던 것입니다.

 

2. 너희 아버지

예수님이 소개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원리가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5:45)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공의로운 심판자이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는 악인과 선인의 구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악인과 선인으로 구분해 놓은 채로, 인간을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로 구분해 놓은 채로, 하나님이 한편으로는 공의로운 심판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이요 은혜를 베푸시는 자라고 하나님의 속성을 갈라치기 하면 안됩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 47)고 강조하셨는데 기독교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만 상을 내린다고 설교하면 하나님을 세리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에게만 복을 내린다고 설교하면 마치 하나님이 이방인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우리에게, 성도에게, 인간에게 이방인과 달라지라고, 세리와 달라지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차원이 다르게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오직 사랑으로, 오직 은혜로 대해주시는 거룩한 분이라고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 반드시 죽으리라

 

1. 판단의 근거

세상에서 강조하는 것, 세상에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준은 그 표현, 그 기록, 그 내용, 그 구조, 그 절차입니다. 2:16~17절에는 하라, 하지 말라는 행동 규정이 있고,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징계 또는 처벌 조항이 있어 보입니다. 일종의 법으로 제정될 수 있는 최소한의 내용, 구조, 절차가 마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법 또는 명령 또는 규정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말이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 내용을 말하기 전에, 기록에 근거하여 의미를 판단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누가 한 말이냐?’입니다. 만약 사단이 한 말이면 그 내용이 아무리 온건하고 규모있고 질서있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정당해 보여도 무조건 거짓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면 그 내용이 아무리 명령같고, 규정같고, 지시같고, 계명같고, 법같을 지라도 무조건 교훈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로 하라, 하지 말라고 정해 주셨고, 문법적으로 명령법을 사용하셨고, 어길 시에는 징계하겠다고 단언하셔서 누가 보아도, 누가 들어도, 누가 생각해도 법이 분명하다고 말할지라도 법이 아닙니다. 그분이 스스로 인격적인 분이시고, 인간을 인격적으로 창조하시고 존중해주시는 분이고, 하나님과 인간을 사귐과 교제가 있는 사랑의 관계로 맺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2. 존재에 근거한 판단

기독교는 존재로 그의 말과 자세와 태도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고, 그렇게 사역을 하신 것이고, 예수는 구원자로 오셨으니까 그렇게 십자가와 부활 사활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예수의 말씀, 예수의 자세와 태도, 예수의 사역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예수님뿐만 아니라 성도에게도 해당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수님이 실행하시고 성령님이 인쳐 주신 결과로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을 때 성경은 즉시 너희는 성도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을 통해서 성도라는 존재에 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선 성도라는 존재가 되고, 이제 성도니까 성도답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권고하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목표나 비전을 정해놓고, 목표를 향해 모든 열정을 쏟아 넣는 방식입니다. 물론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선포부터 해 주시는 것, 존재부터 되어버리는 것, 그 후에 선포된 내용을 알고, 선포된 존재임을 알고 그에 합당하도록 생각하고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3. 반드시 죽으리라, 죽을 까 하노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된 내용은 본문에만 세 가지 버전이 등장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2:16~17)입니다. 둘째, 여자가 한 한 말로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 까 하노라”(3:2~3)입니다. 여자는 하나님이 하지 않은 만지지도 말라를 첨가했고, 하나님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여자는 죽을 까 하노라로 바꾸었습니다. 셋째, 뱀이 한 말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니라”(3:3)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법이라고 오해를 했고, 그래서 반드시 죽으리라를 하나님의 징계나 형벌로 오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은 내가 죽이리라고 징계를 하시겠다고 선언하지 않으셨고, 여자도 하나님이 죽이신다고 했어!’, ‘하나님이 죽이실까 하노라라고 하나님의 징계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뱀도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할 뿐 하나님이 죽이실 것이라는 의미로 말하거나, ‘하나님이 죽이겠다고 하셨지만 내가 피할 길을 알려줄게!’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형벌을 의미하는 표현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도 징계의 의미로 말씀하지 않았고, 여자도 징계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뱀도 징계의 의미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직 기독교인들만 하나님의 징계로 오해했습니다. 그리고는 동일한 패턴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 하나님이 징계하신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