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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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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 신명기 5 ~ 11

. 들으라, 가르치라 (5)

 

1. 역사와 율법

모세는 모압에서 백성들에게 삶의 원리를 선포합니다(4:44). 하나님께서 그 동안 사역을 통해 행하신 많은 일들의 핵심은 새로운 상황, 더 나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는 계시였습니다. 시내산에 도착한 이후나, 가나안 입성 전이나 하나님의 강조는 토라(율법), 증언, 규례, 법도 즉 하나님의 말씀(원리, 가치, 개념, 방법)이었습니다. 역사를 통해 얻은 교훈,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혜, 각종 제도와 정책의 유용성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일반적 교훈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배운 하나님의 원리가 아니면 인간은 죄의 원리를 따라 행할 것이요, 죄의 원리를 따르면 아무리 좋은 교훈, 지혜, 제도와 정책이 선하고 의롭게 실행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토라, 증언, 규례, 법도는 특별한 규정이나 조항이 아닌 하나님을 아는 것을 전제로 한 삶의 원리입니다.

 

2.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토라, 사역, 약속들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기에 전적으로 인간이 행복을 누리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5:29),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의 날이 길리라’(5:33)고 하셨고, 모압에서도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6:2), ‘네가 복을 받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6:3)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원리가 행위=결과즉 죄의 원리로 행하면 죄의 결과가 임하고 하나님의 원리로 행하면 하나님의 결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건이 되어 인간의 행동에 따라 상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주어질 때 백성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내용보다는 하나님의 음성(5:22, 24, 25, 27)에 대한 두려움에만 치중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바로 백성들을 살리는 말씀을 하시는 음성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듣고 행하겠나이다라고 말한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가나안 입성 후에 확인이 됩니다.

 

3. 삶의 원리

유대인(유대교)의 핵심으로 알려진 쉐마’(들으라, 6:4~9)는 여호와만을 중시하는 배타적 표현 때문에 지극히 종교적인 내용으로 오해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토라에는 하나님의 신적인 권위와 존귀를 주장하는 내용이나 인간들이 여호와를 위한 행위, 종교적 제도와 규례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토라를 따르며 토라 이외의 길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면 인간이 행복하고 장구할 것입니다. 인간의 토라 준수로 인한 여호와의 유익은 아예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의도적으로, 힘들게 행해야 할 일도 없고 단지 인간에게 불필요한 행위들을 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배타적 종교에서 배려적 종교로, 신중심적 종교에서 인간 중심적 종교로, 종교행위가 아니라 일반적 삶의 실천이 부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 잊지 말라, 기억하라 (6~8)

 

1, 은혜가 주어진 후

여호와의 말씀이 법으로 규정되고, 준행 여부에 따라 상벌이 주어지는 것으로 오해되기 전에 언제나 여호와가 스스로 맹세하여 인간에게 지키신 여호와의 은혜가 선행됨을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 입성에 대해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성읍, 네가 채우지 아니한 물건이 가득한 집,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6:10, 11) 등 철저하게 하나님이 인도하고 주시고, 인간이 얻고 차지하는 은혜가 강조됩니다. 은혜가 선행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은 없습니다. 후일에 자녀들이 여호와의 명령, 증거, 규례, 법도가 무슨 뜻인지 물을 때에도(6:20) , 규정, 조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적과 기사를 베푸심,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게 하심을 대답하라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임을 알게 하라고 하십니다. 먼저 은혜가 주어졌기에 하나님의 토라는 상이나 벌을 받기 위한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7:12) 새로운 복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은혜에서 번성하게 되고,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7:13~15, 8:1)).

 

2. 너는 알라

하나님께서 가나안 입성을 이루셨을 때에 이스라엘이 행할 일은 가나안 백성을 진멸하는 것과(7:2, 3, 16) 제단을 헐며 주장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을 불사르는 것입니다(7:5, 25).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인과 종교를 진멸하지 않을 이유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이 자신들의 정착 생활에 도움이 되고, 가나안 종교가 유익할 것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가나안에 입성하게 된 것도 자신들의 특성으로 간주할 것입니다(7:7). 인간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에 하나님 한분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 이외의 모든 인간과 종교의 원리가 죄의 사고방식이요 인간을 곤고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강조는 이스라엘의 정체와 하나님의 일하심(7:8)너는 알라’(7:9), ‘기억하라’(7:18, 19, 8:2)입니다.

 

3. 하나님의 교육

사십 년 광야 여정(8:2)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징계요 유랑이요 시험이라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계시와 교육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살기 가장 힘든 조건에서 사람이 떡을 먹고 사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의 형편도 애굽과 비교하면 썩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켜보시면 가나안 땅은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8:9)이 될 것이요, 결국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8:10). 모세의 거듭된 강조가 알라’, ‘잊지 말라’(8:11), ‘기억하라’(8:13)인 것은 이미 하나님이 일하셨고, 은혜주셨고, 교육하셨고, 계시와 토라도 주셨음을 강조하는 것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기에 실패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입니다.

 

 

. 네게 요구하는 것 (9~11)

 

1. 목이 곧은 백성

하나님은 이스라엘(인간, 죄인)을 잘 아시기에 권고와 경고를 병행하십니다. 여호와를 모르면 한편으론 소심하여 두려워하고(7:17) 한편으로 교만하여(8:14, 17) ‘내 공의로움으로’(9:4), ‘마음이 정직함으로’(9:5) 이루어낸 것이라고 자랑할 것입니다. 실상은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이요(9:6, 13),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모압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을 뿐입니다(9:7, 8, 24). 대표적으로 호렙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다베랴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했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행한대로 갚으셨다면 이스라엘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은혜를 받고 있는 현장에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정도로 목이 곧은 인간인데, 만일 은혜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로 조건적 규정이나 명령이 주어진다면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없을 것이 뻔합니다.

 

2. 언약의 돌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의 상징이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9:9, 15)입니다. 이스라엘이 행할 것을 요구하는 명령의 돌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말씀을 준행할 수 있도록 신실하게 책임지실 것을 맹세한 언약의 돌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언약의 돌판을 만드실 때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위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돌 판을 던져 깨뜨렸습니다. 모세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다시 돌 판에 말씀을 쓰시고 나무로 만든 궤에 넣게 하셨고(10:5).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언약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며 축복하게 하셨고(10:8) 여호와께서 친히 레위지파의 기업이 되어주셨습니다. 언약의 두 돌판의 책임이 온전히 여호와께 속하게 된 것입니다. 백성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은혜를 주시고 돌보셔야 하는 책임을 떠맡으신 것입니다.

 

3. 네게 요구하시는 것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것을 반복하여 강조한 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10: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임을 밝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하신 것처럼 인간 상호간에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도리어 자격과 조건을 주장할 수 없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떡과 옷을 주시는 분입니다(10:17, 18). 그 증거가 이스라엘이 애굽에 내려갈 때 칠십 인이었으나 현재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진 것입니다(10:22). 하나님이 먼저 이스라엘을 위해 은혜를 베푸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알 때에 하나님의 요구,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은혜를 주셨고 또 계속하여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삶, 성도의 삶에서 모세와 백성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르치고 배울 때에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번성케하심과 풍성케하심을 누릴 수 있습니다.

 

4. 차지할 땅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있기에 신명기에는 땅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외형상으로 나일 강이 있는 애굽과 요단 강이 있는 가나안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리어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은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11:11)입니다. 애굽은 나일 강이 있었을지라도 스스로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실 것이기에(11:14) 하나님이 수고하심으로 이스라엘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마음에 미혹되어 다른 신들을 섬기며 여호와를 버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를 못할 것입니다.

 

5. 복과 저주

이스라엘이 행복하기를(11:21, 23) 기대하는 하나님의 호소가 간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뜻에 두고,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자녀에게 강론하고,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게 하십니다(11:18~20). 백성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뿐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적들을 쫓아내시고 이스라엘이 땅을 소유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능히 당할 사람이 없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이 적을 쫓아내고 땅을 소유하고 당할 사람이 없게 만들려면 삶이 너무 어렵고 힘듭니다. 인간 앞에 두신 복과 저주는(11:26) 하나님이 이미 인간에게 은혜를 주셨음을 전제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이미 받은 은혜를 누리는 복이요,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누리지 못하는 저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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