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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와 각종 성경공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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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 신명기 17 ~ 22

. 이스라엘의 왕 (17)

 

1. 원인과 처방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적 관계, 구조, 역할이 강조됩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인간의 역사는 고대에는 지도자의 역할(초인), 근대에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해 왔습니다. 좋은 의미로 인간의 삶을 더욱 질서 있게 하며, 조화를 유지하며, 자유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기대되었지만 역사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많은 부작용을 낳았으며 필요악으로 치부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여전히 실패를 반복하고 있으며 점점 넓은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폐쇄된 사회적 관계로 변형되고 있습니다. 시대와 민족에 따라 각양의 제도가 파생하고 소멸하고 그 과정 중에 허다한 인간의 투쟁과 살상이 자행되며 결코 모든 인간을 위한 선기능이 작용하지 못함이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이래로 단 한 번도 인간을 위한 체제를 정하신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체제로든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고, 인간이 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체제로든 죄의 원리로 밖에는 사용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는 절대로 일개 국가가 아닙니다. 성경은 나라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족장, 지도자, 사사, , 예언자 등의 정치체제를 세운 것이 아니며, 천부장과 백부장 등의 행정이나 사법체제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사회에 저항하거나, 체제에 반항하거나, 제도에 대항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옳고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접근 방식과 해결방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2. 왕의 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진입하기 전에 장차 가나안에서 행해질 일들에 대해 언급하며 권고와 경고를 병행하십니다. 제단에 대해 인간이 선택하는 곳이 아닌 여호와가 선택하는 곳으로 하나님의기준을 따를 것과 왕에 대해 사람의 예상과 하나님의 기대를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왕의 조건은 오직 하나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입니다(17:1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과 대조할 때 하나님은 배운 사람들로 간주하시기에 하나님의 조건은 혈연, 민족적 개념에서 형제 중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왕의 자질, 성품, 능력, 리더쉽, 출신, 교육, 철학 등 인간적 특성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이 없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왕은 여러 경쟁자 중에 탁월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전혀 아니며, 국민의 대표, 대리자, 통치자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왕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17:16, 17)입니다. 왕에게 말()은 군사력, 아내는 왕실세력, 은금은 경제력을 의미하며 왕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의 대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권력이란 개념이 없기에 권력 강화의 수단도 없습니다. 도리어 권력 수단이 될 만한 요소를 차단함으로 결코 왕이 백성 위에 높아지거나 군림하려는 의도를 본질적으로 차단합니다. 세상에서 왕은 통치자, 권력자가 되어 백성을 지배하는 모습이지만(삼상 8:11-17), 신앙 공동체는 왕이나 백성이 권력의 주체가 누구냐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3. 왕의 역할

왕이 해야 할 일은 율법서의 등사본을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17:18, 19)입니다. 왕에게 지도자의 역할,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을 돌보는 일, 국가를 보호하는 기능을 일체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보지 않기에 왕이 통치자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보호자요 책임자요 주권자임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왕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함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모델이 될 뿐입니다. 본인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누리고 있기에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17:20)가 가능해지며, 왕과 백성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함께 하나님의 분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세우셨던 족장(), 지도자()와 이후에 세우실 사사(), 예언자들의 경우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의 전형적인 역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역할을 위탁하지 않습니다.

 

 

. 이스라엘의 제사장, 선지자 (18~19)

 

1. 제사장

인간이 있는 곳에 종교가 있고, 종교가 있는 곳에 제사장(종교 종사자)이 있고, 제사장들은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 요술하는 자, 무당, 진언자, 신접자, 박수, 초혼자의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18:10, 11).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가증한 일로 여기시고, 용납하지 않으시고, 쫓아내십니다. 하나님은 종교적 시설(성막, 성전), 제도(절기, 제사 등), 종사자(제사장, 선지자 등)가 없을 때에 이미 하나님께서 직접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목적 등을 풍성하게 계시하셨습니다. 인간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온전히 알리셨기에 별도의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으며, 제사장들의 주요 활동인 새로운 지혜와 지식의 전달이나 축복을 받고 저주를 피하는 종교 행위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제사장이 종교권력자가 아닙니다. 왕과 갈등관계, 선지자와 경쟁관계가 아닙니다. 제사장은 스스로 계시할 내용이 없고, 백성들의 사죄를 결정할 권한도 없고,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기업도 없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일도 제사장의 역할이 아니라 각 가정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제사장이나 제사장 지파가 되기 위한 자격과 조건이 없고, 대제사장으로 선발되는 요건도 없고, 특별히 부여받은 권한도 없습니다. 도리어 생존이 백성들의 공궤함이 의존해야 하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이나 선지자가 세워지기 전에 제사장직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종교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반대로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고, 평화와 안정을 보장해 주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2. 선지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형제 중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18:15). 강조점은 모세와 같은이 아니라 선지자입니다. 모세도 선지자로 간주되고, 선지가 등장한 이유는 단지 백성들이 다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직접)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18:16)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장래의 일을 미리(pre) 예언하는 자가 아니며, 별도의 계시를 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pro)백성들을 향해 대언하는 자일 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이며,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입니다. 선지자가 되기 위한 자격과 조건의 언급이 없고, 여호와의 말씀을 받기 위한 수단과 방법의 언급이 없고, 선지자의 권한과 혜택의 언급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선지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면 전할 말이 있을 뿐입니다.

 

3. 도피성

도피성(21:12~14, 35:6~15)끌어 들이는 도시들이라는 뜻으로 비고의성 살인자를 위해 피해자의 피의 복수를 사회적 제도가 중재를 맡아 복수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하여 제정하였습니다. 도피성의 효력(35:15, 26~28, 20:6)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며 이스라엘의 대 제사장이 죽기까지 도피성에 머무르면 죽음을 면할 수 있습니다. 도피성의 위치(19:2~6, 20:7~8)는 요단 동쪽에 골란, 길르앗 라못, 베셀 세곳과 요단 서쪽에 게데스, 세겜, 헤브론 세곳 등 총 여섯 곳입니다. 도피성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없습니다. 여하튼 살인자이기에 형벌의 의미로 열악한 시설, 주변인과의 차단 등의 조치가 없습니다. 도리어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와 같이 살인자가 빨리, 쉽게 피난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 각종 규례 (20~22)

 

1. 전쟁 준비

전쟁은 일반적으로 장수와 군사들이 나서며, 좋은 전략과 무기가 승패의 결정적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쟁에 나갈 때 장수가 아닌 제사장(20:2)이 나서고 전략을 수립하는 대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 하나님이 싸울 것과 구원하실 것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이스라엘에 발생하는 전쟁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계시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으며 이길 수 없기에 승패는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모든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쟁을 위하여 가능한 많은 군사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위하여 가능한 사람을 배제합니다.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 심지어는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들까지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합니다(20:5~8). 그제사야 군대의 지휘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하니 전쟁 준비라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2. 평화선언

하나님이 주실 가나안 땅의 경계가 수차에 걸쳐 반복되기에 이스라엘이 행할 전쟁은 영토확장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전쟁을 할 때에 우선 화평을 선언하고 상대방이 수용하면 전쟁을 하지 않습니다. 화평을 거부할 때에도 가나안의 족속들은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 것이요, 기타의 성읍들은 남자를 죽이고 여자와 유아들과 가축들과 재물들은 탈취물로 삼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국가로서 더 큰 나라, 더 넓은 영토, 더 번성한 경제를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샘플로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원리로 모두가 하나님의 복락을 누리는 모습을 구현하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3. 하나님의 윤리

하나님의 윤리는 기록된 대로 준행해야하는 규범윤리가 아니며, 상황에 맞게 기준과 적용이 달라질 수 있는 상황윤리가 아니며, 인간을 위한다는 진리입니다. 무죄한 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안 될 것이며, 이스라엘 가운데 무죄한 피가 있어도 안 될 것이며(21:8), 포로도 적절한 예우를 할 것이며(21:14), 부모의 일로 인하여 자녀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며(21:17), 대신 패역한 아들에 대해서는 엄히 경고합니다(21:21). 부모 공경이 강조되는 이유는 자녀의 근본이 부모의 은혜임이 인간의 근본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죽을 죄를 범한 자도 그 날에 장사하는 등 모든 것이 인간의 존귀가 상실당하지 않도록 하시는 조치들입니다.

율법에는 예상 외로 남녀문제, 부부문제, 성문제에 대한 조항이 많이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자의 권익이 보장되지 않을 때에 이스라엘인이든, 이방인이든, 심지어는 포로일지라도 여인 특히 아내에 대한 보호 규정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부장적이거나 여성 혐오적이라는 오해를 벗어나게 해 줍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늘 과부와 나그네, 객과 고아를 긍휼히 여길 것을 권면하시되 그 근거로는 힘없고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도 애굽에서 노예와 나그네 되었음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강자와 약자의 구분, 주인과 종의 구분을 전제하고 강자의 자비와 구제를 권면하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동일한 신분, 출신임을 기억하며 현재 자신의 자신됨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여 서로 연합과 일치를 구현, 유지, 지속하게 하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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